[칼럼] 주민소환투표 되돌아보기

  1. 절반의 성공 : 나로호 발사와 주민소환

  2009년 8월의 제주도 주민소환투표는 미개봉으로 끝났다. 경기로 치면 김태환 지사측이 이기고, 주민소환본부가 졌다. 결과만 보면 그렇다. 김태환 지사를 소환한다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란 차원에서 보면 다르게 보인다. 나로호 발사를 떠올리면서 주민소환을 되돌아보자. 나로호 발사도 결과로만 보면 실패다. 그러나 우리는 ‘절반의 성공’으로 위안한다. 왜냐하면 나로호 1단 로켓은 성공적으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주민소환투표도 실패가 아니라 ‘절반의 성공’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주민소환 청구를 달성하여 김 지사를 직무 정지시키고 주민소환투표까지 진행시켜 나갔다는 절반의 성공이 존재한다. 이 절반의 성공도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만큼 제주도민의 풀뿌리 민주의식은 크다. 주민소환 투표를 의도했다가 중간에 좌절된 다른 지역의 경우가 수없이 많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 너무 허탈해 하지만은 말자. 

  제주도민은 앞으로 언제든 도지사나 도의원이 도민의사를 무시하는 경우 이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의지와 실천을 보여주었다. 이 점에서 2009년 8월에서 자랑스러운 측면도 있음을 기억하자. 당연히 나로호 발사의 실패 경험을 냉정히 점검하듯이 왜 주민소환이 실패했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주민소환을 할 필요가 없도록 제주도정이 소통과 민주주의를 잘 실천해 나가길 바라야 하겠지만, 동시에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제도적 차원과 의식적 차원에서 보완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나로호 발사와 주민소환에서의 ‘절반의 성공’은 우리들에게 남은 절반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실패이기도 하고 성공이기도 하는 현재진행형이다. 
 
  2. 67.7%와 11%의 차이

  주민소환 투표가 끝난 후 모두가 의아해 하는 것은 투표율이 왜 11%밖에 되지 않았을까이다. 주민소환 투표를 며칠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투표참여 48.0%와 아마도 투표참여 19.7%를 합쳐서 67.7%의 투표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하는데, 실제의 투표율은 왜 11%로 그쳤을까의 의문이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김태환지사를 소환하고자 한 이유를 보면 대표적으로 해군기지 추진을 포함하여 영리병원, 한라산 케이블카, 내국인 카지노 등에서 제주도정의 독선과 전횡을 일삼았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이고 공감이 가는 사유이기 때문에 67.7%가 투표참여 여부를 전화로 물어보면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었다. 전화 문의에 OK 사인을 보내는 데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다.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대답할 필요도 없고 투표장에 가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귀찮음도 없다. 그냥 투표하겠다고 대답만 하면 된다. 이렇게 전화 조사에 답하는 데에는 비용은 전혀 들지 않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김태환 지사를 물러나게 하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 남은 9개월이라도 좋지 않나 하는 막연한 이익만이 존재한다. 당연히 투표 참여 의사가 높을 수밖에 없다.

  2009년 8월 26일 주민소환투표인 419,504명 가운데 실제 투표는 46,076명만이 투표를 했다. 그 답은 전화로 답하는 것을 넘어서서 투표장에 갈만한 당장의 이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데서 찾고자 한다. 김태환 지사가 소환되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대표적으로 해군기지 사업이 과연 김지사가 소환되면 중단되는 등의 어떤 눈 앞의 실익이 있는 것일까? 김지사의 독선과 전횡을 응징한다는 카타르시스가 있겠고 제주도민의 위대한 민주의식과 직접행동의 영웅적 함의를 널리 알린다는 점에서 정서적 만족도도 높겠지만. 그것은 내가 굳이 참여 안 해도 다른 이웃 도민들이 대신 해주면 그에 무임승차하여 나도 향유할 수 있는 일종의 공공재이다. 공공재를 향유하는 데 내가 괜스레 나서서 비용을 치를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주민소환운동본부가 ‘관제선거’라고 칭할 정도로 주민소환투표에 참여하는 비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투표장에 가는 것 자체가 사실상 김태환 지사를 퇴출하는 것으로 투표 프레임이 짜여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옆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투표를 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투표장에는 곳곳에서 눈을 부라리며 투표 불참을 종용하는 압박이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본질적으로 투표는 귀찮은 것이고 괜스레 시간만 드는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투표 안 한다고 혹은 한다고 무어 크게 세상이 변할 것 같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돈 되는 일이 아니다.

  이번 제주도 주민소환 투표의 경우는 시기적으로 적합성이 떨어지는 것도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를 했다. 한 10개월 후면 도지사 선거를 하는 데 번거롭게 돈 들여가면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지에 대한 당면한 실익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김태환 지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주민소환을 하려고 하였다면 2008년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한 때가 적기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국회의원 선거 일시와 연결하여 주민소환 투표를 벌리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투표에 참여했다가 투표장에 간 김에 주민소환 투표에도 참여를 할 수 있음으로 해서 비용이 거의 안 들기 때문이다.

  소환투표와 선거는 다르다. 국회의원이든 도지사든 누구를 뽑는 선거는 출마한 후보자와 선거운동원이 총동원되어 투표 참여를 부탁한다. 선거관리위원회도 봉급 받은 만큼 일해야 하고 각 정당들도 자신들에 대한 정당 투표를 높이기 위해서 투표 참여를 독려한다. 그렇게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치러지는 선거도 재-보궐선거의 평균 투표율은 31% 정도이다. 그런데도 주민소환투표의 유효투표율을 1/3(33.3%)로 정한 것은 주민소환제는 도입하지만 그 운용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김태환 지사가 소환되면 당장 불이익을 받을 사람들은 많지만 당장의 이익을 볼 사람은 적다. 김태환 지사의 지사직 유지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김태환 지사 소환이 제주도민들에게 가져다주는 이익은 무형의 심리적 만족이며 장기적으로 미래에 나타날 이익이기 때문이다. 김태환 지사측은 국책사업인 해군기지 추진을 소환사유로 삼는 것은 주민의 월권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렇다고 김지사가 퇴출되면 해군기지 추진이 중단되고 철회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있는 한, 김태환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이 일반 제주도민에게 주는 실익은 더 적다. 제주도 주민소환투표가 비용은 많고 실익은 적은 것이라면, 11%의 투표율은 적은 게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인 수준인 것으로 바뀌게 된다.

   하남시 주민소환에서 31%의 투표율을 보였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제주도에서도 30% 전후의 투표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한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하남시 김황식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에서는 광역화장장을 유치하려는 김시장의 정책에 대해 이로 인해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이를 저지하려는 하왕시민들의 집단적 이해관계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 경우도 김시장을 소환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30%대의 투표참여율을 보였다. 그러나 제주도 주민소환에는 이와 같은 집단적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협박과 비용은 점점 더 커져갔지만, 이를 넘어서서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집단적 이해관계망이 형성되지 않았다. 선거와는 달리 주민소환투표에 참여가 11%인 것은 의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인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 점에서 주민소환 유효투표율 1/3 규정은 다시 국회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3.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자

 

▲ 양길현 교수 ⓒ제주의소리
  8월의 주민소환투표 이후 강정마을 주민들의 허탈함과 울분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많은 제주도민들이 무임승차로 주민투표에 임하고자 수수방관하는 사이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우리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우리는 제왕적 도지사에 대해 앞으로는 소통하는 도지사가 되어야 함을 직접 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도지사가 또 도민을 무시하고 안하무인 격으로 도정을 운영하면, 언제든 강정마을 주민들의 영웅적 행동과 같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다시 도전을 할 것임을 기회 있을 때마다 상기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미 마음과 몸이 다 지치고 지쳐 살 맛이 나지 않는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제주도정이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처럼 얼싸안아 주고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해 준다면, 이것이 바로 절반의 성공에 머문 주민소환의 나머지 반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채우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 양길현 교수(제주대 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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