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의 데스크칼럼] 한 총리의 마지막 결자해지를 보고 싶다

한승수 총리가 오늘(11일) 제주에 온다.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하고 이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지 한 달 만이다. 지난 3월엔 제주에서 처음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를 직접 주재했다. 총리가 제주를 자주 찾는다는 건 그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정부 장차관 14명을 이끌고 제주에서 국무회의나 다름없는 지원위원회를, 그것도 6개월만에 다시 연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행사도 아닌 지원위원회의에, 장차관을 대거 이끌고 온다는 것이 타 지역에는 유례가 없다는 점에서도 총리의 애정을 느끼게 한다. 그것도 후임 총리가 이미 내정돼 사실상 임기가 끝난 시점에서, 와도 그만, 안와도 그만인 그가 왔다는 자체가 파격적이기 때문에 총리의 마지막 발언에 제주도민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11차 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의에서는 이미 알려진 대로 올 정기국회에 정부입법으로 제출할 특별자치도특별법 개정안(이른바 특별법 4단계 제도개선과제)에 대한 마지막 조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찬반갈등이 워낙 심해 민감도 1위인 영리병원과 관광객전용카지노 도입 여부에 대해 딱 부러진 답변은 없겠지만 그래도 정부 생각의 일단은 읽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찬반논란이 불가피한 쟁점정책은 그렇다 치더라도 제주특별자치도가 명실상부 제주도민들이 체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자치도’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정부의 지원이 이뤄지는 자리가 되기를 당부한다.

오늘 회의 주재가 마지막이 되는 한 총리에게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풀기 위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아니, 총리가 마지막으로 반드시 해결하고 나가야 할 마지막 숙제가 바로 제주해군기지 갈등임을 강조한다.

총리는 물론 지원위원회에 참석하는 모든 장차관이 알고 있다시피, 제주사회는 해군기지로  이미 터질 대로 터진 상태다. 3년여에 걸친 찬반갈등을 넘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광역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도 했다. 해군기지 찬반을 떠나, 주민소환에 대한 이견(異見) 따질 것 없이 제주사회 곳곳에 진한 아픔의 상처가 배여 있다. 주민소환투표는 무산됐다. 소환투표 과정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투표가 해군기지 찬반투표가 아니더라도, 해군기지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다.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가 맞느냐’는 가치관이나 신념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겠지만, 그 갈등을 다시 겪기엔 제주사회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 너무 크고, 제주도민들이 짊어져야 할 멍에가 너무 무겁기에,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몫을 한 총리가 마지막으로 짊어질 것을 요구한다.

해군기지가 제주도민이 선택한 게 아니었기에, 정부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어딘가에는 반드시 설치해야 할 국책사업이었기에, 내부 요인이 아닌 외부에서 주어진 충격 때문에 겪고 있는 아픔이기에, 이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야 할 책무가 정부에 있음은 이를 강조하는 자체가 사족일 뿐이다. 

치유의 중심엔 강정마을이 있다. 누가 뭐라던 해군기지 갈등의 최대 피해자는 강정마을 주민들이다. 해군기지를 찬성했던 반대했던 강정마을 주민 모두 깊은 내상을 입은 지 오래다. 마을 공동체는 완전히 붕괴됐다. 이웃사촌은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까지 서로 등을 돌렸다. 같은 집안 형제들 사이에서도 반목하고 미워하는 당혹스런 삶을 살고 있다. 그 어느 마을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목했던, 그리 풍족하다고는 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부족함 없이 스스로 잘 살아왔던 강정마을은 이제 종친회나 친목회 동창회 등 모든 공동체가 오로지 하나 해군기지에 대한 찬반 입장으로 철저히 무너졌다.

‘그럴 줄 몰랐냐. 그리니 왜 반대했냐’라고 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너무 야비하다. 정부가 할 도리가 아니다. 정부가, 한승수 총리가 해야 할 일은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해야 한다. 그들의 상처에 정부도 함께 아파하고 있음을 진정성 있게 보여줘야 한다. 강정마을주민들이 국가 안보를 외면한 ‘이기주의자’가 결코 아니었음을 한 총리가 국민들에게 말해야 한다. 정부의 미숙함이 그들에게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줬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실리를 챙기면 되지 않느냐’는 현실론자도 있지만, 갈등해결이 어려운 것은 이미 상처가 나버린 자존심 때문이다. 한 총리가 허무하게 땅에 떨어진 주민들의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워줘야 한다. 그게 제주해군기지 갈등해소의 첫 단추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빛을 갚는다는 평범한 지혜를 되새겨 주길 바란다. 

어제(10일) 강정마을 종합발전계획(안)이 발표됐다. 앞으로 10년간 총 8696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안을 제주도와 서귀포시가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제시했다. 아직 강정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격한 탓에 설명회는 파행으로 흘렀다.

지금 이 안(案)이 잘됐다 못됐다, 실현가능성이 있다 없다는 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성급한 일일 것이다. 언젠가는 여기에 강정마을 주민들의 뜻이 담긴 계획안으로 만들어 질 것이다. 한 총리는 오늘 제주도-서귀포시-강정마을 주민들이 만들어 낼 종합발전계획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겠다는 확고하고도 분명한 의지를 밝혀야 한다. 한 총리뿐만 아니라, 발전계획을 지원해야 할 행정안전부와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국방부 등 관련부처 장차관도 정부차원에서 지원을 약속해야 한다. 그래야만 도민사회가 정부를 믿고, 발전계획안에 공감할 것이다.

국가를 대신해 갈등의 정점에 선 제주도정을 정부가 더 이상 민망하게 해서는 안된다. 제주도정이 정부 정책을 자신감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도의 계획에 정부가 힘을 실어주는 신뢰의 자세를 먼저 보여야 한다. 정부가 안 밀어주는데 제주도정이 뭘 믿고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제주도민들에게 자신감 있게 나설 수 있겠는가.

▲ 이재홍 대표기자/편집국장
이제 제주사회가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놔야 할 때가 오고 있다. 그 출발점이 오늘 지원위원회 회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개인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총리 혼자서, 그것도 퇴임 막바지에 결정할 수 없는 일임을 잘 알면서도, 한 총리가 제주를 사랑하기에 이 이야기만은 무겁게 받아주길 바란다. 잠시 후 공직을 떠나게 될 한 총리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우리 제주도민들은 기억하고 싶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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