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부터 이틀간 미국 피츠버그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는 여러 해 전부터 매년 모여오던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들의 모임을 이번의 범세계적 금융위기 발발을 계기로 국가원수급으로 격상시킨 것으로서 작년 11월 워싱턴에서 첫 모임을 가졌고 금년 들어서는 지난 4월 런던 모임 이래 이번이 두번째가 된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 장치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개선의 절박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대개 일치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나라마다 이견이 없지 않다. 영국과 미국은 정부 재정지출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독일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은 규제강화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계 금융기관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과도한 보너스 지급의 규제를 강조하고 미국은 적정자기자본비율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 정도의 차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월 스트리트에서의 연설을 통해 이번 금융위기 원인 중의 하나는 소비자금융의 남용이었으며 이것을 막지 못했던 것은 통합 감독기구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유관기관들을 통합하여 금융소비자보호국을 설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보이는 손(정부) 개입 불가피

지난 주말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라는 주제의 한 조찬포럼에서 조 순 박사는 “자본주의를 구한 것은 보이지 않는 손(자유주의)이 아니라 보이는 손(정부)이었다”며 “앞으로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정부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미국 주택가격지수를 개발했던 예일대학의 로버트 쉴러 교수도 소비자보호를 위한 통합기구를 지지하고 있다. 주택가격 거품을 지적했던 그의 여러 차례의 경고가 ‘담당자’에게 전달되지 못했던 경험 때문이다.

앞으로 한동안 시계의 추는 시장의 자율보다는 정부 개입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손은 무디고 효율적이지 못하다. 정부에게 너무 많은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언젠가 또 다른 후회를 잉태할지 모른다. 시계추의 한쪽이 정부, 다른 한쪽이 시장이라고 한다면 그 두 개의 힘과 나란히 인식되고 강조되어야 할 또 하나의 힘은 시민사회의 힘이 아닐까 한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따르면 시민사회란 강제력을 전제로 존립하는 국가와 상업성을 띄는 시장, 이 둘 사이에 위치하면서 사회 작동의 한 축을 형성하는 시민의 자발적 단체 및 기구들을 말한다고 한다.

시민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그 결과에 따라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는 주체가 된다. 금융에 있어서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항목에는 환경 및 근로자 인권 보호 그리고 반부패에 더하여 고객의 투자를 선의로 관리할 책임과 스스로 ‘망하지 않을 책임’ 즉 다수 주주 내지 투자자의 부(富)와 시민 일반의 세금을 축내지 말아야 할 책임이 첨가된다 할 것이다.

월 스트리트 최악의 해인 2008년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650억 달러에 달하는 희대의 금융사기를 자행한 버나드 메이도프(Bernard Madoff)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기밀유지, 나 홀로 잘살기에 다름 아니었다. 나스닥(NASDAQ) 증권거래소 초대 이사장이자 월 스트리트 최대 증권 브로커 중의 하나였던 메이도프는 새로 가입하는 고객의 투자원금을 재원으로 기존 고객들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수법으로 어렵지 않게 고객을 모았다.

이 회사의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의 직원은 고작 3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남들에게 소문날세라 쉬쉬하며 꼬박꼬박 들어오는 높은 배당을 마치 자기들의 특권인양 즐기고 있었다. 껍데기만 보고 속을 보려 하지 않는 이런 소비자 행태는 국가도 시장도 도울 수 없다.

첨단 금융공학을 활용한 난해한 금융투자상품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어느 은행이 부실자산을 축적해가며 당기 이익을 내고 있는지는 감독 당국도 알아채기 어려운 노릇이다.

시민사회의 역할 강조되어야

그러기에 더욱 소비자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말썽 많았던 자칭 ‘환 헤지 상품’ KIKO와 같은 경우 간명하면서도 성실한 상품설명서를 금융소비자의 절실한 입장에서 공개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시민단체의 존재가 얼마나 아쉬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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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국가의 기능과 시장의 역할이 커져 가는 가운데 이러한 시민사회의 존재는 어느덧 무색해지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시장이나 국가 이전에 소비자 그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아야 할 때가 우리나라에도 도래하고 있는 것 같다. / 전 제주은행장 김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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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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