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해군기지 해법과 도민통합

    I. 고마운 제주지방변호사회 

  제주지방변호사회가 나섰다. 제주 현안에 대해 변호사들이 집단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흔치 않은 지라 반가웠다. 법률 전문가이자 지성인으로서 제주도민의 삶과 그 터전을 아끼는 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기에 흐뭇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해군기지를 둘러싼 저간의 변칙적 진행이 이를 계기로 조금이나마 제주도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II. 2006년 5월 1일 이후 오늘까지   

  수년전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 즈음하여 후보 검증과 평가가 뜨겁던 2006년 5월 1일 김태환-진철훈-현명관 후보들은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후보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도민공감대 형성’ 또는 ‘도민합의’를 전제로 해군기지가 국가안보에 필요하다면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도지사 후보자 중 그 누구도 도민공감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제시한 적은 없다. 참여정부도 5년 내내 도민합의를 전제로 해군기지를 추진할 것이라는 언명만을 수차례 했을 뿐, 도민합의의 내용과 절차가 무엇인지를 제시한 적이 없다.  

  이렇게 도민공감대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책임 있는 당국자의 의견이 제시되지 않은 채, 지난 4년 동안 해군기지 문제는 제주도민 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자리했다. 해군과 제주도정 그리고 개발과 안보를 중시하는 일부 제주도민을 한 축으로 하고,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 강정마을주민 그리고 환경과 평화에 강조를 두는 일부 제주도민을 또 한 축으로 하여 긴 논쟁과 싸움을 벌여왔다.

  그래서 해군기지는 도민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 전형적인 쟁점 사안이라고 널리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도민사회 분열을 더욱 조장한 건 해군이고 제주도정이다. 왜냐하면 해군과 제주도정이 보다 겸손하게 민주적으로 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제주도민들의 견해 차이를 조정하려고 애썼다면, 도민공감대는 보다 순조롭게 혹은 보다 일찍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해군기지를 둘러싼 논쟁에서 우리 모두는 제주도를 아끼고 제주도민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달랐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적대하거나 원수처럼 살 이유는 전혀 없는 한 마음의 제주도민들이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제주도민들 간의 제주사랑 싸움은 기실 도민의견 수렴의 과정이기도 하고 도민공감대 형성 과정이기도 하다. 제주도정이 편파적이지만 않았다면, 4년의 논쟁을 거치면서 보다 생산적으로 도민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도지사 주민소환까지 갈 정도로 도민공감대 형성에서 제주도정의 편파성은 극심했다. 제주도민의 제주사랑 경쟁이 제주도정의 편파성과 해군의 무대뽀로 인해 편 가르기의 싸움으로 진행되어 버린 데 대해 안타깝고 아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2009년 마지막 남은 몇 달만이라도 제주도정이 진정으로 제주도와 제주도민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길 부탁해 마지않는다. 최근 해군기지 수용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도민공감대 형성의 하나로 적법한 절차로의 추진과 합당한 보상이 제기되고 있음에 보다 많은 관심을 촉구하고 싶다.
  
        III. 2009년 9월 현재 도민공감대의 내용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도민공감대 형성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또 도민공감대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국내외 정세와 사태전개 추이에 따라 변화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더 사리에 맞다고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9월 현재 해군기지와 관련하여 제주도민의 최소공약수적으로 동감하고 있는 공감대가 무엇일까 하는 논의의 단초를 9월 29일자 제주지방변호사회의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문제제기와 대책강구로부터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해군기지와 관련 제주지방변호사회는 “추진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그 가장 대표적인 최근 사례의 하나로 9월 26일 환경영향평가심의회의 ‘졸속심의’를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탈법과 변칙 상황에서는 설사 해군기지가 국가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수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적법한 절차로 추진해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이어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제주도민의 희생을 조금이나마 보상해 주는 차원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여기에 덧붙여 9월 28일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발전적 해결 및 도민대통합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해군기지를 제주에 건설하고자 할 경우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제주도와 제주도민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 주라고 요구하는 게 전혀 떼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택 미군기지와 경주 핵방폐장에서 보듯이 정부가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로 인한 희생을 보상해 주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군기지로 인해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강정마을 주민에게 만족할 만한 지역발전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해 달라는 것이 전혀 무리가 아니며, 또 원래 제주도민의 땅이었던 알뜨르비행장을 무상으로 양여해 달라는 것도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제주관광의 접근성 강화를 위해서 조만간 과포화 상태에 있는 제주공항을 보완하기 위해 신공항을 서귀포 지역에 건설해 달라는 것도 당연히 때가 되면 정부가 해 주어야 할 것을 조금 앞당겨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기에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요구사항에 불과하다.

  이렇게 9월 28일과 29일 양일 사이에 제기되는 해군기지 보상론이 결국 돈 받고 제주를 팔아먹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하면서도 집단성명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바로 해군기지가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마지막 제주도민의 자존심 지키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4년 동안 제주도민들끼리만 싸우다가 그렇게 쉽게 해군기지가 들어오고 만다면 도민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더욱 커지고 불신과 불만은 그대로 남겨진 채로 지난 2000년대의 10년을 그냥 넘기고 말 것이라는 긴박함이 있다. 제주도민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그럼으로써 제주도민의 통합을 이루어 2010년대의 다음 10년을 보다 환하게 맞이하려면, 해군기지를 둘러싼 정부와 제주도정의 남다른 행보와 발빠른 행보가 더욱 요청된다.

          IV. 도민통합의 길
 
  해군기지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모두가 제주를 사랑하는 방식에서의 차이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해군기지를 넘어서는 도민통합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우선 누가 더 제주를 사랑하는 지의 키재기를 여기서 잠시 멈추자. 이제는 누구의 방식이 더 제주사랑에 적합한 것이라고 사전적으로 재단하지 말기로 하자. 일단 정부가 안보상 제주가 필요하다고 하니 믿고 따라가 보자. 다만 조건이 있다. 정부는 제주도민들이 정부를 믿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행보를 보이라. 제주지방변호사회가 호소하는 바와 같이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신뢰를 주라. 

  지금까지 해군기지를 놓고 찬성과 반대를 하던 도민들 모두 한 발작씩만 양보하자. 해군기지 반대 측은 그렇게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해 눈물이 나겠지만, 안보상 제주가 필요하다니 눈물을 훔치며 알았다고 해 주자. 다만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자. 무대뽀는 안 된다고. 이렇게는 안 된다고. 제주도민의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달라고.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해군기지 찬성 측은 종국적으로는 해군기지를 수용하는 전제 위에서 적법 절차로의 추진과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최근의 도민공감대에 힘을 실려주어야 할 것이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불만을 감싸 안으면서 정부로부터 합당한 보상을 받아오는 데 발 벗고 나섬으로써 반대 측의 불만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배전의 노력이 요청된다. 해군기지 해법을 통한 도민통합은 이렇게 시작된다.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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