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부천시의 화장장과 제주의 해군기지

   해군기지 문제로 연일 제주가 뜨겁다. 올 연말로 착공에 들어가기 전에 알뜨르 비행장 무상양여 등 정부로부터 합당한 보상을 받아내는 동시에 적법한 절차로 해군기지 착공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도민공감대가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제주도정이 막무가내로 해군기지 일정을 추진해 나가려고 하자, 이에 반발하는 도민 여론은 급기야 2010년 지방선거에서 현직 김태환 지사를 선호도에서 4위로 밀어놓고 있다. 이러한 도민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제주도의회는 환경영향평가 심사를 보류하는 등 해군과 제주도정의 해군기지 ‘속도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제주도정의 마이동풍식 태도에 분개한 제주지방변호사회와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발전적 해결 및 도민대통합을 위한 추진위원회는 더욱 공세를 강화시키고 있다.

  제주도민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쓰는 저간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곰솔회가 떠오른 건 제주의 원로들은 해군기지와 관련 2009년 10월 지금에도 어떤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지사와 교육감, 총장을 지낸 분들이 가끔 모인다고 하니 분명 해군기지 문제가 거론되었을 것인데, 그 때 어떤 얘기가 오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지사 주민소환이 진행 중이던 지난 8월 도민통합을 위한다며 소환운동을 중지해 줄 것을 요청하던 기개를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언명한 것처럼, 곰솔회가 “해군기지 후보지 선정과정에서 썩 매끄럽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 주민소환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해군기지와 관련해서도 정부와 제주도정에 대해 무언가 한마디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제주도의 국회의원 세분은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정부에 어떤 입장의 의견을 전달했을까, 아니면 수수방관하면서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직은 국회의원 선거가 많이 남았으니 전국적인 사안을 갖고 국회에서 열심히 일하면 되지, 득표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지역 사안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또 내년 지방 선거에 출마한다고 거론되는 10명 내외의 예비후보자들은 해군기지와 관련해서 어떤 입장을 밝히는 건 선거공학적으로 무모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유력 정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을 때까지는 괜스레 쟁점 사안에 휩쓸려 표류하기보다는 몸조심하면서 내년 선거 전에 해결되기만을 바라는 게 더 현명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부천시의 화장장 건립을 둘러싸고 현역 국회의원과 시장 출마 유력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설립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경기도가 지난 8월 17일 국토해양부에 제출한 화장장 설치와 관련하여, 임해규 의원(한나라당)은 “부천 춘의동과 인접한 구로구와 협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출된 것으로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했고, 원혜영 의원(민주당)은 "화장장 입지 선정과 관련한 주민 협의체 구성 및 주민 참여를 통한 갈등조정 절차 도입에 관한 제도적 개선방안이 확정된 만큼 부천지역 주민과 구로구 주민의 참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지방선거 출마가 예상되는 길영수(54) 씨도 ‘문화도시로 갈 것인가, 제2의 벽제로 갈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 "현재의 건립부지 그린벨트 지역은 부천의 마지막 남은 유일한 녹지공간이자 향후 부천의 미래를 좌우할 천혜의 보고이자 심장인 곳"이라고 역설하면서 부천시 화장장 설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부천시는 화장장(추모의 집) 건립이고 제주는 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 사안이 다르기 때문에 제주의 원로나 국회의원, 지방선거 출마예상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까. 고희범 출마예상자만 나름대로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을 뿐, 도민여론조사 때마다 포함되어 있는 제주도지사 예상후보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해군기지와 관련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은 듣지 못하고 있다. 부천시와는 달리 ‘제주특별자치’를 이끌고 가야할 선장이라면 더 더욱 ‘남다른’ 면모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일까. 설마 우호적인 여론에 편승하였다가 정부에 밉보여 나중에 혹독한 선거법 적용으로 낙마하게 되지나 않을까 지레 겁먹은 것은 아닐 게고. 아직도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건 더 더욱 아닐 테고. 부천시의 국회의원과 출마 예상자의 한 목소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양길현 제주대(국민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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