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일중학교 24회 한라산 등반기

2009년 1월부터 7월까지 19번에 걸쳐 제주도 한 바퀴 도보여행을 마치는 동안 그럴싸하게 맑은 하늘은 도통 보지 못했건만 역시 가을은 가을인 걸까? 비췻빛 하늘은 높고 높은 데다 따사로운 날씨다. 우리 귀일중학교 24회 동창들은 언제부터인가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이면 오름 등반에 나선다. 선두지휘를 맡은 영준이는 시행착오가 발생하지 않게끔 답사며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런 그를 우리는 등반대장이라 부른다. 그렇게 오름 등반을 마치고 온 날이면 즐거웠던 일이며 산행 중에 찍은 사진을 카페에 올리고 수다를 떨며 정을 나눈다. 이 오름 등반에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은 신엄중과 애월중의 동기 중에서도 원하면 같이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74 연합’이란 표현을 쓴다. 나도 지난 8월부터 동참하게 되었다. 이번 10월엔 추석 연휴가 끼었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창민이가 카페에서 넌지시 의견을 던져왔다. 오름이든 한라산이든 그때 맞춰서 갈 수 있으면 같이 가고 싶다고.

등반대장인 영준이는 우도봉과 한라산 두 군데 중 표를 모아 정하자 하였고, 모두 갈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도 40대의 마지막 해를 한라산 다녀오는 걸로 기념하자며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의견은 모았지만 모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름쯤을 남겨두고 카페엔 갈 수 있을까, 주저주저하는 글이 올라왔고 창민이는 몸 다지기를 위한 워밍업 방법을 올려놓았다. 우린 일행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며 열심히 준비 운동에 들어갔다.

바리메 오름에 오르던 날, 헉헉거리며 ‘이렇게 하고 한라산 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나에게 남편은 제발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렇지만, 난 갈 거라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별수 없다 싶었는지 남편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6킬로의 거리를 걷자며 준비 운동을 시켰다. 그렇게 열흘이나 했을까, 비가 오고 추석이 겹치는 바람에 며칠은 건너뛰고 드디어 D-Day다. 잠을 설치고 약속한 장소로 나가 10분 정도를 기다리니 창민이와 그의 아들을 태우고 봉석이가 왔다. 제주 여고 입구에 도착하여 기다리자니 신제주 로터리에서 만난 친구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어 성판악 도착 8시 35분. 거기서 우린 단체사진을 찍고 화장실까지 들러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심호흡을 했다. 나의 목표는 오로지 낙오자가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 처음엔 순이랑 나란히 걸었는데 어느 순간에 순이는 뒤로 처졌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속도를 유지하며 걸었다. 간혹 가을의 느낌을 감지하는 예민한 나무들이 단풍 맞을 채비로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아직은 푸른 숲이다.  

   
성판악의 아직은 푸른 숲 ⓒ 고봉선

걷다 보니 앞서가던 행진이와 수정이를 만났다. 중간 쉼터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이 쉬고 있었다. 난 쉴 겨를도 없었다. 오로지 거리를 확보해 두어야만 했다. 잠시 우리 셋은 그늘에 앉아 물 한 모금을 마신 다음 다시 걸었다. 날개 달린 듯 사뿐사뿐 걸어가는 행진이는 지칠 줄도 몰랐다. 그렇게 행진이 앞서 가고 수정이와 나란히 걷다가 어느 순간에 수정이도 뒤로 처지고 말았다. 가방을 부리고 주저앉아 잠깐 쉬고 다시 걷고 그렇게 반복하다 진달래밭 휴게소에 다다를 무렵, 빨갛게 익은 주목을 만났다. 열매 몇 개 따먹다 휴게소에 다다르고 보니 웬걸, 뒤에 처져 있을 거로 생각했던 일행 모두 도착하여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내가 주목 열매 따 먹는 동안 모두 도착했단다. 가지고 온 과일을 나눠 먹으며 쫑알대는 우리에게 아직은 활력이 넘쳤다.  

   
진달래밭에 있는 주목 ⓒ 고봉선

갈 길이 바쁜 터라 마냥 앉아있을 수는 없을 터, 일어서며 나는 먼저 걷겠노라 앞장섰다. 성기와 나란히 걷다 앞으로 내달리고 뒤를 돌아보며 한 컷 눌렀다. 오로지 낙오자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카메라 셔터 누를 기회도 없었거니와 엄두도 안 났다. 차츰 성기하고는 저만치 거리가 멀어졌다. 

   
진달래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먼저 출발한 성기와 일행 ⓒ 고봉선

안경도 귀찮았고 카메라도 다 귀찮았다.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등에 진 가방에선 잠시 빌리고 온 아들 녀석의 핸드폰이 자꾸만 요동친다. 성가셔 열어보니, 걱정 되는지 남편이 잘 올라가고 있느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민호가 다가왔다. 나를 보고 따라왔노라며 어여 가잔다. 난 아무래도 좀 쉬어야겠다며 먼저 가라고 했다. 뒤를 돌아보니 보이는 일행은 없다. 아마 그들도 나처럼 버거운가 보다 생각하며 다시 부지런히 걸었다. 드디어 백록담이 눈앞이다. 암벽을 타야 될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예상을 깨고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전부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힘내어 하나 둘 셋…. 오르다 잠시 쉬고 또 오르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있던 일행들이 어여 와라며 반긴다. 궁둥이 붙일 겨를도 없이 백록담을 만나야 했다.  

   
아, 백록담! ⓒ 고봉선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일일등반을 나섰던 그때가 아련히 떠올랐다. 그 친구 중에서 몇몇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때에 비하면 백록담에 물도 조금은 고여 있고 갈라진 바닥도 보이지 않았으며 푸름도 더하고 있어 한층 한량이 되어 있었다.

차근차근 도착하는 친구들 모두 모였다. 가지고 온 뜨거운 물과 사발면, 바리바리 싸고 온 밥이며 반찬을 꺼내 놓았다. 누구는 사발면 국물을 버릴 곳이 없다고 억지로 마시다 보니 배가 불러 밥을 못 먹겠단다. 한라산이 깨질 정도로 소리지르고 오겠다던 군자는 걷노라 힘이 다 빠졌는지 어디에 있는지 찾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조용했다.  

   
정상에서 점심 먹는 친구들 ⓒ 고봉선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창민이 아들 경찬이에게 추억을 심어주기 위해 나는 친구들이 밥을 먹는 동안 데리고 여기저기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 주었다.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경찬이 ⓒ 고봉선

점심을 다 먹고 영필이는 쓰레기를 전담하여 치웠다. 하산 출발 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모두 모였다. 창민이가 서울에서 내려오며 현수막을 만들고 왔단다. 안 그래도 현수막 하나쯤 있어야 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해 오던 친구들인지라 감탄하며 내걸고 한 컷 눌렀다. 단체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라 누군가에게 셔터 눌러 줄 것을 부탁해야만 했다. 일행 중 누군가 정상에 막 다다르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순간, 안 된다고 내가 소리질렀다. 모두 의아한 표정이다. 힘들게 걸어온 터라 숨이 차서 카메라가 흔들린다는 게 내 이유였다. 모두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만 조금은 멋쩍었다. 하지만 어쩌랴, 조금이라도 우리의 기념사진을 선명하게 남기고 싶은 내 마음인걸. 기념촬영을 끝내고 현수막은 등반대장인 영준이게 넘겨지며 끈 하나는 봉석이에게 건네졌다. 이유인즉슨, 등산화 밑창이 떼어져서 궁여지책으로 해결할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수막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느냐고 농담을 던지며 또 우린 박장대소를 터트리고 잠시 즐거웠다.

   
정상에서 기념 촬영 단체사진 ⓒ 고봉선

 

   
백록담을 지키는 것 같은 바위, 공룡도 닮았고 사자도 닮았다. ⓒ 고봉선

관음사 코스로 내려오는 길, 손바닥 위에 보석을 올려놓은 듯한 구상나무가 싱그럽다.

   
구상나무 ⓒ 고봉선

내려다보는 경치에 숨통이 다 트인다. 그 멋진 풍경을 지나칠 수가 없어 창민이가 한 컷 누르잔다.

   
연휴를 이용해 내려온 창민이 ⓒ 고봉선

한라산 등반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또 하나의 풍경 고사목을 만났다. 한라산 등반길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풍경이라 여겨져서인지 무척이나 반가웠다.

   
관음사로 내려오는 길에서 고사목 ⓒ 고봉선

등산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섬매발톱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었다.

   
섬매발톱나무 ⓒ 고봉선

가파른 계단을 내려설 때마다 힘들다는 생각을 저만치 떨쳐버리게 하는 병풍바위는 비경 중의 비경이었다.

   
가파른 계단에서 바라다본 병풍바위 ⓒ 고봉선

우리의 보스 등반대장 영준이가 내려서고 있다. 황홀한 풍광에 빠져 잠시 넋을 놓았던 땅콩 정옥이는 계단 몇 개를 남겨놓고 그만 발을 헛디뎌 구르고 말았다. 무릎이 까지고 피가 흘렀다. 부디 별일 없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등반대장 영준이 ⓒ 고봉선

용진각 구름다리를 건너고 우리 일행은 마련되어 있는 식수를 한 모금씩 마셨다. 신선한 물맛은 지금껏 마셔보지 못한 그런 물맛이었다. 비어 있는 생수병을 채우고 뒤돌아보는 바위가 웅장하다. 이제 곧 붉은 치마를 갈아입은 여인네들의 무희를 보며 더더욱 위엄을 떨겠지.

   
용진각을 건너고 뒤를 돌아보며 왕관능 ⓒ 고봉선

그래, 고등학교 시절 등반길에 만난 삼각봉은 붉게 타는 단풍에 싸여 있었고 고리 모양의 흰 구름을 꿰고 있었지. 그곳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뒤처진 일행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한 컷 눌렀다. 군자와 미애는 그랬지, 냄새는 좀 나지만 앉아서 저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볼일 보는 그 기분은 최고일 거라고. 서쪽 하늘로 이지러지는 저녁해가 삼각봉 봉오리에 걸릴 듯 말 듯하였지만, 그 해는 잡아내지 못했다.

   
삼각봉을 뒤에 두고 뒤에 처진 일행 ⓒ 고봉선

낮은 키로 하늘을 우러르는 금방망이가 손짓하고 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가을의 소리를 듣고 있음이리. 이제 곧 이 산은 붉게 타오르겠지. 정상에 오를 때까지만 하여도 에너지가 충만했던 친구들은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난 오로지 낙오자가 되지 않겠다고 기를 쓰고 오르던 때와는 달리 여유가 있었는지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앞서지도 처지지도 않게 내려오다 순이와 미애, 정옥이와 나란히 하게 되었다. 군자와 국명이 수정이는 이미 저만치 뒤로 쳐졌고 등반대장 영준이와 창민이도 그들을 인솔하노라 뒤로 빠졌다. 서두르지 않아도 막차는 넉넉히 탈 수 있으리라 여유를 갖고 있었는데 영준이가 따라붙고 있었다. 뒤에 있는 친구들은 창민이에게 맡겨놓고 앞에 가서 교통정리를 좀 해야겠단다. 3.5KM 남은 지점, 서둘러야 된다고 해서 우린 마구 뛰었다. 하지만 남은 거리는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일 만큼 멀고도 멀었다. 아! 드디어 도착했다. 백록담에 도착했을 때만큼이나 기뻤다. 연휴라고 뭍에서 내려와 있던 대현이가 연락을 받고 뒤에 쳐진 친구들을 데리러 관음사에 왔다. 그렇게 그들을 남겨두고 쫑알거리며 달리던 여자들 우리 넷은, 지금 이 순간이 두고두고 못 잊을 추억이 될 거라며 막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금방망이 ⓒ 고봉선

11월 첫 주는 영실  →  윗세오름  → 어리목 코스로 단풍구경을 계획 중이라고 등반대장 영준이가 언질을 주었다. 그래, 그때도 이번처럼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체력을 다져둬야겠지.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등반을 마칠 수 있었던 건 영준이와 창민이의 철저한 준비성 덕분이었다. 힘들었지만 산행을 마친 기쁨 또한 크다. 그 산행을 축하한다며 동창회장 기봉이가 동참하여 저녁을 같이했다. 뒤따라 버스를 못 탔던 친구들도 도착하였다. 그렇게 모두 모여 육개장에 곁들인 막걸리 한 사발의 맛은 기가 막혔다. 2차로 기봉이가 막걸리를 산다고 하였지만 다들 너무 지쳤기에 다음으로 미루자며 헤어졌다. 아침에 데리러 왔던 것처럼 봉석이가 나를 집앞에 내려놓았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한라산을 정복하고 보니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붙었다. 오늘 밤은 그야말로 단침을 삼키며 쿨쿨 꿈의 세계로 빠져들겠지. 등반대장 영준이, 그리고 현수막까지 만들며 내려온 창민이, 그리고 여러 친구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었노라고 이 글로 감사의 마음 전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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