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겉과 속(4)

   김태환 지사가 해군기지 해결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또 다른 사례.
   작년 도내 어느 마을에서는 해군기지 유치를 위한 건의서를 정부와 국회 등에 제출했다. 물론, 이 마을에도 반대하는 주민들은 있다. 그러나 적어도 강정을 후보지로 정하는 과정이 강정마을 주민들은 물론이고 도민사회에서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할 기회로 작용했다.

  김태환 지사도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전제한다. 국가차원의 압력도 거세다는 것은 이미 여러 경로로 전해듣고 있었다. 또한 스스로 여론조사로 결정해 놨으니, 이를 번복하는 것도 명분에 금이 가는 일일 것이었다.
  그러나 2007년 중반 이후 해군기지 문제로 주민갈등이 날로 깊어지고, 이 문제 해결 없이 제주의 발전은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는 상황에서 모종의 ‘결단’도 도지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려될만 하다. 한 번 결정한 것을 번복하기에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도 실은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이미 여론조사로 ‘부결’된 영리병원은 특별히 달라진 이유 없이 왜 다시 추진했던가?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이름을 달리해 추진하지만, 해군기지도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이름이 바뀌지 않았던가. 그것도 도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서.
  
  그러던 중, 도내 한 마을에서 올린 유치건의서는 이런 상황에서 김 지사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유치를 희망하니 그 곳으로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가 봐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가 우선 되어야 한다. 이에 필자는, 이를 위한 절차를 제안하였다. 이 곳과 더불어 강정마을이 동시에 주민투표를 실시하자, 그리고 두 마을 주민투표 결과 찬성이 많은 곳을 후보지로 정하도록 하자.   주민투표를 공정한 과정에 의해 치룬다면, 어느 마을이고 주민들 스스로가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런 결과는 건의서을 제출했던 마을에서 ‘부결’될 경우, 강정마을도 후보지가 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이것이 제안의 요지였다. 강정마을도 주민투표 결과, 다른 마을보다 반대가 적게 나올 경우 지금까지의 반대를 ‘접고’, 기지건설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었다. 만일, 이것이 성사되었다면, 해군기지는 주민들이 원하는 곳에 건설되고, 어느 마을이 되든 주민갈등은 지금보다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나 정부의 부담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 방안은, 재작년 해군기지를 민항을 중심으로 하는‘기항지’ 개념으로 개발할 것을 주문한 국회 예산통과 부대조건 이후 추진된 여러 방안 중 최종적인 대안이었다. 이미 이전에 해군기지 조건이 기항지 개념으로 달라졌으니, 다시 후보지 유치신청을 받고 주민투표나 여론조사를 통해 새롭게 결정하자는 안을 몇 차례 제안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마다 도지사의 답변은 ‘재량권이 없다’거나, ‘고민해보겠다’는 답변과 함께 메아리로 끝나고 말았다.

  말하자면, 이 방안은 제주해군기지 문제와 관련, 특히 강정마을의 주민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고안해낸 대안이었던 셈이다. 이 방안에 대해, 당시 박영부 도 자치행정국장(현 서귀포시장)도 동의했다.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제안할 수 있도록 김 지사와의 면담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작년 말, 예산심의 문제로 국회를 방문 중인 우리를 만났을때 “강정마을 유치건의가 마을 내부의 잘못된 절차등에 의한 것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적어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후보지 선정절차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말로 들렸다. 그리고 그는, 만일 해법을 추진하게 된다면, 어느 마을이든 주민총의 절차를 확실히 밟았다는 관련 서류를 꼼꼼히 첨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하지만 결과는 또 다시 메아리가 되었다. 필자는 작년 어느 날, 김지사를 2시간 가까이 ‘독대’하면서 이를 제안하였지만, 또 다시 ‘고민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메아리로 돌아왔던 것이다.

  해군기지 입지결정, 최초의 법적절차

  앞서의 방안은 온전히 도지사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 이전, 제도적으로 후보지 문제를 재검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사전환경성검토가 그것이다. 강정마을 주민갈등이 기본적으로 후보지 선정절차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니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처방은 후보지 문제를 재검토하는 것이다.때문에 사전환경성 검토는 이를 법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절차인 셈이다.

  2007년 5월 여론조사결과나 작년 9월 11일, 정부차원에서 있었던 제주해군기지 사업 공식발표도 ‘정책’일 뿐이었지 어떤 법적구속력을 갖는 것도 아니었다.(더구나 작년 정부발표상에서는 ‘강정’이 언급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민군복합협강정미항’으로 명명되었으나, 발표과정에서 ‘강정’부분이 빠진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하루 전 날 청와대 담당행정관과의 면담결과가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작년 정부발표는 정책적으로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었다. 입지문제를 법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사전환경성검토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를 서둘러 발표해버렸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6일, 환경부 방문과정에서 환경부 관계자도 이의 문제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사전환경성 검토제도는 환경정책기본법에 의해 각종 개발시설 과정에서 사전에 입지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이다. 이는 지난 2004년 전략환경영향평가 도입 논의과정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는 대신 기존의 사전환경성검토제에 ‘입지타당성 평가’항목을 신설하기로 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사실상 모든 사업에서 입지타당성 여부를 결정하는 최초의 법적절차가 된 것이다.

  더구나 강정마을은 이미 사업예정지 일대가 모두 ‘문화재지역’으로 돼 있고, 생물권보전지역인데다 도가 정한 절대보전지역이다. 후보지 선정과정에서 해군은 이에 대한 검토보다는, 사업자 입장에서 오로지 자신의 사업입지조건, 즉 수심이나 확장가능성 등 군항으로서의 조건만을 우선 중심으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큰 데, 사전환경성검토 과정은 이를 제도적으로 바로잡는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미 여론조사로 후보지를 결정했다손 치더라도, 도지사 입장에서 “주민들이 유치를 원해서 건설예정지로 선정됐으나 법적절차에 따른 사전환경성검토 결과 후보지 변경이 불가피 하다”는 식으로 다시 절차를 밟는 다면, 김지사가 우려하는 명분을 해치지 않으면서, 법적인 과정이므로 정부에도 당당하고 갈등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방안도 김지사에게 직언을 통해 전달했다. 그러나 역시 메아리였고, 이 때 들은 대답은 “재량권 밖”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후보지 재검토의 법적기회가 되었던 사전환경성검토는 작년 10월 30일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로 끝나버렸다.

  필자가 이런 사례들을 굳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언급하는 것은, 김태환 지사가 얼마든지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다. 또한, 진실로 해군기지 문제해결 의지를 가져왔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이 기회들을 접어버렸던 것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작년 9월 10일 필자와 천주교 신부님, 강정주민대표는 청와대의 박영모 담당 행정관을 만난 일이 있다.(지금은 바뀜) 당시 박행정관이 “정부 입장에서 어느 지역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한 언급을 분명히 기억한다. 10월 30일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도 입지와 관련해 유사한 언급을 한 바 있으며, 임태희 여당 정책위의장실에서조차 “도, 국방부, 해군의 의견을 확인했다.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도지사의 입장”임을 강조했던 것을 확실히 기억한다.  단지 도지사 재량권의 문제였을까? <계속>

 

 필자는 제주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지난 2005년부터 「제주군사기지반대도민대책위」집행위원장을 맡아오고 있습니다.(2007년부터는「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을위한범도민대책위」공동집행위원장) 이제부터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 을 글로 써서 도민들게 알리고자 합니다. 필자는 이번 글을 통해 해군기지 문제의 중심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까지 드러내려 합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했던 인물들에 대해 실명을 사용할 것이며, 가급적 사실중심으로 풀어내지만 그 관점과 견해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 이에 대한 반론이나 이견도 경청하겠습니다.    아울러, 필자는 이 글에서 저의 직책을 표기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제 글이 기본적으로 한 국가의 국책사업이 이렇게 허술하게 추진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의문을 펴는 과정일 따름입니다. 이 글들이 이후 있을지도 모를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한 여러 후술에 참고할만한 근거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앞으로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쟁점들, ▲ 갈등 ▲ 환경 ▲ 국책사업론 ▲ 평화를 주제로 각각 몇 편의 글을 사실중심으로 쓸 것입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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