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힘(8) 고상홍 재일본관동제주도민협회장

▲ 고상홍 재일본관동제주도민협회장. 재일교포 2세인 그는 위로는 1세대 선배들을 모시로, 아래로는 3~4대 후배들을 챙기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2010년은 재일본관동제주도민협회에겐 역사적인 해다. 3만여 재일제주인의 구심체인 관동도민협회가 만들어진지 50년이다. 반백년이란 세월이 말해주듯 제주인, 관동제주도민협회는  이미 재일교포사회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조국에선 제주가 1%에 불과하지만 재일교포 사회에선  경상도에 이어 두 번째 파워로 평가받는다. 힘든 시기에 재일제주인 1세대들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이제 재일교포사회도 3~4세대 시대로 빠르게 가고 있다.  조국과 고향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일본을 바라보는 문화까지 세대별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현상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선후배 사이를 잇는 가교가 돼야 한다. 재일교포 2세인 고상홍(54) 관동도민협회장이 그 다리 역할을 한다. 힘들고 궂은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고 회장 얼굴엔 항상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일본 와세다大-미국 보스턴大출신 엘리트지만 부친의 가업이는 진짜 제주인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엘리트다. 일본에 돌아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굴지의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재일교포이긴 하지만 일본사회에서도 실력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는 지금 아버지 가업을 잇고 있다. 그리고 항상 한국에 대한 자긍심과 제주인이라는 자부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재일교포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 역시 부모 교육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16살 때 제주에서 오사카에 왔는데, 그 때부터 고생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그러면서도 집안에서 우리는 한국사람이라는 교육을 항상 받았습니다. 특히 제사도 제주식으로 정성스레 지내왔기 때문에 ‘일본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그리고 부인까지 제주사람이다. 제주에 있는 할아버지가 일본에 건너간 고 회장 아버지를 결혼시키기 위해 ‘아버지 위독’이라는 거짓 전보를 쳐 제주에 오도록 한 후 고향 처녀와 강제(?) 결혼시킬 정도로 제주 혼이 짙게 배여 있다. 3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묘비에 ‘탐라 고씨 묘’라고 적어 놓을 정도로 제주에 집착하는 그이지만 3~4세대들, 그리고 이후 세대들이 자신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지만 인정한다.

 아버지-숙부에 이어 줄줄이 관동도민협회장...50년 역사 유일하게 연임할 정도 마당발

▲ 고상홍 회장 ⓒ제주의소리
“한국말을 배워 줄 (1세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한국말도 제대로 모르고, 일본 학교 다니면서 친구도 일본인인데,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귀화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죠. 우리 자식도 지금은 한국사람이지만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고 그들이 정하는 겁니다.”

고 회장 가족사는 관동도민협회와 함께 한다. 아버지(고봉준)가 6대 회장이었고, 숙부도 회장을 맡았다.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30대 중반부터 청년부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재일제주인사회 속내를 속속 알고 있는 탓인지 지난 3월엔 도민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 2년 회장에 연임됐다.
자신을 연임시켜준 선배와 후배들의 뜻을 잘 알기에 도민협회 주 활동도 3~4세대들이 고향을 잊지 않도록 제주와 교류할 수 있는 길을 확대하고, 갈수록 수가 줄고 있는 1세대 선배들을 위한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년까지는 30~40년 동안 고향을 찾지 못했던 어르신들을 제주에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권이 없는 분은 영사관에  서 임시여권을 만들 수 있도록 해 드렸고, 조총련계 분들도 여권을 만들어 고향을 방문하도록 했습니다. 이 행사는 몇 년동안 하면서 많은 분들이 고향을 다녀왔기 때문에 작년까지로 끝내고, 올해부터는 고등학생들이 젊은 시기에 자기 고향에 대해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고향방문 사업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3~4세대 고향 잊지 않도록 가교 역할, 1세대 선배들 모시는 일도 도민협회 주요 활동

1세대, 그리고 그들로부터 고향에 대한 교육을 받았던 2세대와는 달리 제주를 접할 기회가 없는 3~4세대들에게 고향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다는 게 고 회장의 의지다. 지난 8월에는 고등학생, 대학생 고향방문단을 이끌고 제주에 왔다.

후손들이 제주와 끈을 이어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은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도민협회 신년회에서도 드러난다. 대부분의 신년회가 아버지나, 고작해야 부모들의 모임으로만 끝나는 것과는 달리 관동도민협회 신년회는 가족을 동반하도록 한다.  “우리 자식들이 신년회란 자리에 참석해서 조금이라도 제주를 생각하고, 또 나중에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목적이지요.”
고 회장은 자녀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도와 제주대학교에 대해서도 3~4세대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주문도 해 본다. 

“어쨌든 많은 교류가 이뤄져야 합니다. 방문도 좋고. 또 제주대학에 유학 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제주대학에 재일교포 학생이 한 명밖에 없습니다. 도민회 재정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도민회 차원에서도 교류활동을 해야겠지만, 제주대학에 3~4세대들을 위한 어학당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번번히 약속 못지키는 제주에 섭섭함 사실...컨벤션센터에 이어 재일제주인센터도 표류

▲ 고상홍 회장 ⓒ제주의소리
제주는 재일제주인들에게 큰 빚, 아직도 갚지 못한 부채가 있다. 60~70년대 새마을운동당시 자신들의 일본 형편도 나은 것은 아니었지만 고향에 길을 넓히고, 전기를 놓고 수도를 놓는데 그들의 도움은 절대적이었고, 마을에 있는 학교 장학금사업, 특히 지금 제주의 생명산업이라 할 감귤산업에도 그들의 지원은 컸다. 그러나 제주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보다는 아직도 간혹 손을 내밀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재일제주인사회와 고향 제주에는 말 못할 ‘섭섭함’이 쌓여 있다.

“솔직히 말하면 섭섭하게 생각하는 선배들이 많이 계신 게 사실입니다. 고향에 기부한 분들도 많이 있고, 그 중에는 이젠 돌아가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는 (약속만 해 놓고) 일하지 않는 게 많습니다. 컨벤션센터만해도 (도민주를 받을 때 했던) 약속이,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가 안 이뤄지고 있습니다. 컨벤션센터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도 우리가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해 달라고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제주에 대해 무엇을 해 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에 계시는 어르신들이나, 청년들을 위해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나 생각하는 것은 우리 도민회 몫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제주대학이 약속했던 재일제주인센터 문제도 꺼내봤다.  제주대학교가 재일교포들에게 수억원의 기부금을 받아가며 약속한 재일제주인센터 건립이 계속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재일제주인센터는 빨리 착공돼야 한다고 봅니다. 진작 착공돼야 하는데, 우리의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제주대학교 자체 문제로 늦어지고 있어서...” 그의 이야기는 제주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이 아니라, 먼저 꺼낸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그리고 그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2010년 도민협회 창립 50년 역사적인 해...조총련계 인사 도민협회 가입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 고상홍 회장 ⓒ제주의소리
고 회장은 이제 한창 바쁜 일정을 보내야 한다. 다름 아닌 1년 앞으로 다가온 도민회 5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 해야하기 때문이다.

“50년 기념사업으로 우선은 50년 역사를 담은 책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 외 행사에 대해선 관동지역에 살고 있는 제주사람들을 위해 뭐를 해야 하는지 구상 중에 있습니다. 내년 가을로 예정된 50주년 행사에는 제주도지사와 도의회의장 등 제주지역 인사들도 초청해 50년 역사의 기쁨을 함께 나눌 예정입니다.”

다만 아직도 활동을 않지만 조총련에 몸담아 있는 제주사람들이 50주년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내심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조총련계 인사들도 도민회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도민협회 규약을 개정하는 것을 조심스레 검토하고 있다.

“먼저 젊은 사람들이 도민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지금까지는 북한국적을 갖고 있으면 도민회에 못 들어오지만 조총련계도 제주출신이면 들어올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하고 싶습니다. 물론 반대하는 분들도 많지만 그 필요성을 차분히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고 회장은 1년에 5~6회 제주를 찾는다. 그런 고 회장에게 제주에 대한 당부를 부탁했다.

“제주사람들이 너무 자부심이 강해서....(조언을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올 때마다 생각하는 게 제주는 공기도 좋고 환경도 좋은데 왜 그렇게 자동차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나닙니다. 자전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이 문제가 되고, CO2를 줄여야 한다고 하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이 모범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어떤 날은 자동차를 운전하면 안 된다거나, 자전거를 타야 하는 이런 것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주사람 자동차에다 관광객들이 오면 렌터카를 이용해야 하고 길이 꽉꽉 막히는데 제주사람들이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제주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선 제주사람들이 나서야"

▲ 고상홍 회장 ⓒ제주의소리
그의 대화에서 자전거는 하나의 예다. 핵심은 제주에 있는 제주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제주를 바꾸기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라는 게 메시지다. 

“아름다운 환경이 제주에 가장 큰 자원입니다. 그게 있으니 관광객이 오는 게 아닙니까?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제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점이 아직 부족하다고 봅니다.”

두 번째 예는 관광문제를 들었다.

“관광이라는 게 장사는 장사지만 여행사에서도 마음을 갖고 관광객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갔던 데만 가고, 돈이 되는 곳만 데려갑니다. 우리도 친구들에게 제주를 가라고 홍보해서 제주를 많이 찾는데 ‘어느 가게를 가자’고 하면 ‘그 가게는 멀어서 못간다’면서 자기네들이 알고 있는 곳만 갑니다. 돈벌이 생각만 해선 안됩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제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번 온 관광객들이 두 번, 세 번 오도록 하는게 여행사 종사자들, 제주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고 회장은 11월 제주에서 열리는 글로벌 제주상공인 대회에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제주를, 고향을 위해 열리는 대회인 만큼 앞장서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처음 여는 대회이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일본 관동도민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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