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교과부가 죽어야 교육이 산다"

                                

            I. 황당하고 민망한 제주대 총장임용 사태

  황당하고 민망하다. 제주대 총장임용을 둘러싼 파행 사태를 지켜보면서 갖게 되는 느낌이다. 제주대 교직원이 어렵사리 선출하여 확정한 1순위 총장후보에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함이 없이 부적격자로 판정내리는 교과부를 보면서 갖는 첫 번째 생각은 황당이었다. 제주대 교직원의 집단적 의견수렴을 이렇게 쉽게 무시할 수도 있는 것인지 하는 어이없음이 그것이다. 교과부의 처신으로 황당해 하고 분노하다가 총장 재선거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는 제주대 교수로서 부끄럽고 창피하고 민망할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제주대 총장 사태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교과부에 있다. ‘왜 강지용 1순위 후보자가 총장 임용 부적격자’인지를 교과부가 좀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제주대 총장 임용 문제가 꼬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에 재선거를 하는데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제주대의 많은 구성원들은 제주대 교수회와 총추위(총장추천위원회)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사유를 제공해 주지 않은 채 자신들의 애초 결정만 내세우는 교과부의 안하무인과 방자함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제주대의 많은 구성원들은 왜 재선거를 해야 하는지의 의구심을 보유한 채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감흥도 없이 주어진 일정에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교과부의 일차적 책임과는 별도로 제주대 총장 임용 또는 재선거 문제를 보다 지혜롭게 풀어나가지 못한 데에는 제주대 교수들에게도 이차적 책임이 있다. 필자를 포함하여 우리 교수들은 어쩌다 서로 자리를 같이 할 때마다 말은 많지만 행동은 없다. 교과부의 막무가내에 좌절하고 교수회와 총추위의 자기 멋대로와 무능함에 한탄만 하고 있을 뿐이다.  

            II. 2009년 1월부터 10월 현재까지
 
  제주대 총장 재선거 문제의 발단은 2009년 1월 제주대 교직원이 1순위로 추천한 강지용 교수에 대해 교육과학부가 2009년 6월 부적격 판정을 내리면서부터였다. 1순위 총장후보에 대한 교과부의 임용거부에 대해 당사자인 강지용 교수가 반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동시에 제주대 교수회도 임용거부를 교과부의 교권 침해이자 대학 길들이기 일환으로 파악하면서 총장 재선거를 거부하였다. 이로 인해 제주대 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교과부의 재선거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현실순응론과 제주대 교직원이 1순위로 뽑은 강지용 교수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린 공식 사유가 경미하기 때문에 교과부의 재선거 요구를 거부하고 제주대 교직원의 선택을 존중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는 교권수호론이 대치를 보게 되는데, 이렇게 입장 차이가 발생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제주대 교직원들이 의견이 갈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인데, 여기서부터 교수회의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가 사태를 어지럽게 만드는 데 한 몫 했다. 교과부의 재선거 요청과 같은 중대한 사안에서 의견이 크게 갈릴 경우는 전체 교수회 비상총회를 열어 총의를 모으는 게 일반 상식이다. 그러나 교수회는 임원진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대학자율권수호특별위원회’ 구성이라는 강수로 너무 일찍 입장을 정해 버렸다. 전체 교수의 다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교권수호특위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2009년 7월 교과부로부터 강지용 교수에 대한 총장임용 1순위 후보 재추천이 반려되자 이를 수용할지 여부를 놓고 제주대 사회가 또 다시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7월 22일 강지용 교수는 서울행정법원에 ‘총장임명제청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에 발맞춰 7월 23일 총추위는 이 소송결과 이후에 재선거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4일 후인 7월 28일 총추위는 재선거 여부와 관련하여 23일 결정을 번복하고는 전체 교직원의 직접투표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총추위가 23일과 28일에 걸쳐 오락가락 행보를 보임으로써 사태를 꼬이게 만들었다. 28일 결정은 23일 결정보다 보다 민주적 의사수렴 과정을 택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한 것이지만, 기존의 23일 결정을 번복하는 왔다갔다 행보로 인해 총추위의 행보는 신뢰를 상실하게 되었다. 

  2009년 8월 총장 재선거 여부 찬반투표에서 81.8%가 재선거를 찬성함에 따라 2009년 9월 22일 재선거를 치르기로 하였다. 그러나 기호1번 김부찬-기호2번 허향진의 양자대결 구도로 진행되던 총장 재선거는, 9월 17일 제주지방법원이 고경표 교수회장과 김두철 자연대학장이 제기한 ‘9월 22일 재선거 공고처분의 효력정지신청'에 대해서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중단되었다. 제주대 총장선거 규칙에 교수회장이나 각 단과대학장, 보직교수 등이 총장에 입후보하려면 선거일 전 60일 이전에 보직에서 사퇴해야 피선거권을 갖는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법원은 총추위의 재선거 의결 결정이 이 규정을 어긴 것이라는 고경표-김두철 교수의 문제제기에 손을 들어주었다. 돌이켜 보면 총추위의 9월 22일 재선거 일시 결정이 보직교수들이 총장 재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의로 한 달도 안 되는 시일 안에 재선거 일정을 정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래서 총추위의 9월 22일 재선거 일정 고시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재선거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제출된 것을 뒤늦게라도 알게 된 바로 그 시점에서 고경표-김두철의 피선거권을 고려하여 긴급회의를 열고 선거 일정을 재조정해야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어떻든 제주대 총장 재선거는 2009년 12월 9일에 다시 치르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고경표-김두철은 피선거권이 박탈당했다며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재선거 일정이 조정되면 출마하겠다고 각서를 썼고, 그래서 법원은 9월 22일 재선거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고-김 두 교수는 12월 재선거에 출마하지 않았고, 그래서 12월 재선거는 다시 김부찬-허향진 양파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총장 출마는 전적으로 본인들의 선택이기에 왜 출마하지 않느냐고 닦달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권리 침해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고-김 두 교수의 자기권리 주장은 정당하다. 다만 여전히 그로 인해 다시 총장 부재 사태가 지속되고 1억 원의 선거비용이 지출되는 것 이외에도 이렇게 재선거 일정 하나 못 챙기는 제주대 교수들의 무능으로 인해 제주대가 입게 된 이미지 손상--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가장 큰 손실이다--이 너무 커 보여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III. 교과부가 죽어야 대한민국 교육이 산다

  1년 내내 제주대 총장 임용 사태를 보면서 갖는 생각은 분노와 슬픔이다. 교과부의 횡포에 분노하고, 여기에 끌려 다니는 대학사회의 무능에 가슴 아프다. 총장 하나 제대로 뽑지 못하면서 제주도 사회를 이끌어갈 지성인들의 전당이라고 어떻게 부끄러워서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제주에 사실상 하나밖에 없는 종합대학이라 다른 대학으로 눈을 돌릴 수도 없고, 그래서 제주대를 애정의 눈빛으로 봐주는 도민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항상 늦었다 할 때가 빠른 법이다. 늦게라도 제주도민의 뜨거운 사랑에 조금이나마 부응하는 제주대의 몸짓이 요청된다면, 이는 제주대 교수들의 남다른 처신일 것이다. 결자해지가 요청되고, 자성이 요구된다. 새로이 각오를 다지면서 이제라도 지혜롭게 제주대 총장 사태를 잘 마무리 지어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제주대가 언제든 도민들이 부르면 달려가 ‘백지장도 맞들면 낫도록’ 일익을 담당하는 것일 게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마음을 가다듬고 이제부터라도 잘 해 보고자 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불만은 어쩔 수가 없다. 교과부의 안하무인과 막무가내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울분과 무기력감은 설혹 12월 이후 총장 임용 문제가 해결되어도 오래 갈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교육정책 흐름을 보면서 과연 교과부가 있는 게 좋은지를 의문시할 때가 많았던 필자로서는, 이번 총장 사태를 지켜보면서 ‘교과부가 죽어야 대학이 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정말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교과부가 죽어야 대한민국 교육이 산다’고.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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