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6) 제주해군기지 문제 겉과 속

▲ 2005년 해군이 배포한 홍보자료에서 해군은 동해시를 해군기지로 발전한 대표적인 지역으로 소개했었다.
 부대조건 달래? 15억 받고 통과시킬래?

  지난 글에서 제주 해군기지가 국책사업이라는 정부논리는 다름 아닌 국가권위주의 논리임을 주장하였다. 즉, 국가가 하는 사업이니 만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해군기지를 추진하는 도나 찬성도민들은 ‘국책사업=범정부사업’이니 만큼, 획기적인 지원책을 기대해 왔다. 그리고 지금 ‘특별법’으로 표상되는 요구는 그것이 절정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앞 글에서 언급했지만, 정부는 애초부터 해군기지 건설 댓가를 지불할 생각이 없었다. 크루즈항 연계론이 나올 때 국토해양부 관계자를 만난적이 있는데, 국방부 사업에 왜 우리가 돈을 대냐는 식이었다. 자신들의 고유사업만 가지고도 모자란 예산타령 해대는 판에, 다른 부처의 사업을 위해 예산을 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작년의 일이다.
 국회 예산심의가 한창인 무렵, 강정마을 주민 대표 몇 분과 신부님, 필자는 해군기지예산 국회심의와 관련해 국회를 방문했다. 주민동의 논란등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군기지 건설예산 심의를 신중하게 해달라는 의사를 관련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우리는 이를 위해 주민동의절차를 다시 밟는 조건으로 예산을 통과시키는 안과 최소한 예산을 집행하더라도 당시 예정된 공동생태계 조사와 문화재 조사 이후에 해 줄 것을 부대조건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예결위에 참여하는 적지 않은 의원들이 이러한 의견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항만건설공사비가 포함된 해군기지 예산은 작년 12월 12일, 아무조건 없이 통과되었다. 정부가 당시 예결위원이던 김재윤 의원에게 막판 협상을 시도해 온 것이다. 그 내용이란, 부대조건없이 통과시키되, 국토해양부 일반예산 15억을 받겠느냐? 아니면, 그걸 포기하고 부대조건을 달길 바라는냐 하는 것이었다. (이는 나중에 김재윤 의원에게 들었다). 이에 김의원은 크루즈항만 설계비조로 반영된 국토부 예산 15억 편성하는 조건에‘우리도 모르게’합의해 버렸다. 김의원은 “비록 15억에 불과하지만, 설계비 항목이고, 그것도 일반예산이므로 차후에도 이를 근거로 국토해양부 예산을 끌어올 수 있지 않겠냐”는 논리로 이를 해명하였다. 그러나, 당시 김재윤 의원실에서 농성을 벌이던 강정주민등과 법환 해녀들에 의해 김의원은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굳이, 작년 정황을 인용하는 것은, 김재윤 의원의 해명에서 보이듯 해군기지 사업에 따른 부처의 일반예산을 끌어오는 것은 매우 쉽지 않은 일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의도하진 않았지만 반대여론의 ‘푸쉬(push)'가 최소한의 정부예산을 조금이라도 끌어오는 동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해군기지 문제에 관해 국가논리에 충실한 도의 행보가 갈등해소는 물론, 최소한의 이익을 위한 일에도 도움이 못되었던 것인데, 최근 특별자치도 제도개선 추진 논리로 도의회에 계류 중인 의안을 통과시켜달라고 조르는 도의 태도에서 이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 기동전단급의 제주해군기지, 처음에는 함정 20척이 정박하는 '부두'라고 했었다.

 ‘간이부두’가 ‘국책사업’이 되기까지

  해군기지 건설이 최초로 알려진 지난 2002년만 해도 해군은 ‘기지’가 아닌 간이역 성격의 ‘전용부두’라고 했다. 물론, 이지스함이나 항모입항도 가능성은 언급했지만, 사실상 이를 부인했었다. 그러다가 2006년 12월 14일, 국무조정실과 해군, 공군이 공동으로 참석한 도의회 설명회 과정에서 처음으로 제주해군기지가 이지스함 2척을 동반하는 전략기지라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당시 도의회 설명회에서, 국무조정실 오균 국장은 "예산규모가 커서 국책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며 "방위사업 자체가 대통령이 승인을 받아야 하며 현재 재가를 받도록 추진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국책사업임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국책사업’이라는 해군기지 사업이 불과 몇 년사이에 ‘간이부두’에서 ‘국책사업’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한 나라의 대규모 사업이 진행되는 방식은 한 마디로 ‘졸속’이라고 스스로 달고 다닌 꼴이다.

   처음에는 함정 20척이 계류가능한 ‘부두’사업이라고 해놓고, 뒤늦게 이지스함이 배치되고 항공모함이 입항하는 전략기지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과정을 놓고, 어떤 국민이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이른바 ‘경제효과론’논리도 그렇다. 국가안보를 위한 기지건설 사업을 하면서 이를 내세워 호도하는 것 자체가 과연 온당한 태도인지 하는 것이다. 2005년도에 해군측이 내놓은‘제주도민과 해군이 함께 건설하는 화순항’이란 자료집에서는 ‘경제적 혜택’을 강조하며, 단적인 자료로 해군기지 1함대가 있는 동해시의 사례를 들고 있다.    1980년의 동해시 모습과 2004년의 동해시 모습을 비교한 사진을 실어놓고, 이를 해군기지로 인한 대표적 지역발전 사례로 제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2007년 3월, 제주도 해양수산본부가 현지조사를 통해 제시한 「해군기지 관련 경제영향 분석 기초조사자료」만 봐도, 동해시를 포함한 국내 해군기지 소재 지역은 하나 같이 경제적으로 오히려 퇴조현상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20여년 동안 한 도시의 발전양상을 놓고 이를 해군기지 효과라고 단정하는 식의 홍보를 앞세우는 식은 그간 해군기지 추진과정의 ‘비정상성’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평화의 섬 문제도 이와 같다. 과연 해군기지가 평화의 섬 정책과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2005년도 해군기지 재추진이 가시화되면서 가장 큰 쟁점이 되었다. 2007년 2월 12일 당시 한명숙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에서 “제주 해군기지는 평화의 섬과 양립 가능하다.”과 밝혔다. 이에 우리는 이틀 뒤, 14일 총리의 답변에 대해 공개질의를 하였다. 어떤 근거에서 양립가능한지를 밝혀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날까지, 답변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국의 총리가 ‘양립 가능하다’고 선언하면, 군사기지와 평화의 섬은 양립가능하게 되는 걸까?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군비경쟁이 첨예한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민감한 제주에 이런 전략기지가 들어서는데 양립가능하다는 결론은 어떻게 도출된 것일까? 평화의 섬 지정에 따른 국가적 실익은 무엇이고, 군사기지 건설에 따른 실익은 무엇인지, 어떤 보완관계가 가능한지, 이를 위해 어떤 검토과정들이 있었는지 등등을 물었으나 메아리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해군의 추진방식이 오늘 날 도민들의 불신과 갈등을 불러온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 나라의 국책사업 추진이 이런 식이라면 과연 국민의 지지를 받고 성공하는 사업은 몇이나 될까? 생각할수록 씁쓸하다.

   한 마디로, 해군이 오래전부터 이런 저런 이유로 숙원사업으로 여기던 해군기지 사업을 추진하게 되니까, 국방부나 총리실, 청와대 등이 뒤늦게나마 당위적으로 힘을 얹어주게 되면서 국책사업이 되고 마는, 뭐 이런 식으로 추진돼 온 게 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실체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갈수록 강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필자가 정부관계자나 국회 관계자 등을 만나는 과정에서는 제주 해군기지사업에 국방부 조차 별 관심이 없더라 하는 얘기를 빈번하게 접할 수 있었다.
 ‘꼭 필요한 사업’이기 보다는, ‘국가가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국민의견과 상관없이 기어코 성사시키고야 마는 것이 이른바 오늘 날 ‘국책사업’의 진짜 의미인 것이다.

 지난 2007년 일본 오키나와를 다녀온 분이 전해 준 얘기는 인상 깊다.
 오키나와 헤노코에 10년째 추진 중인 미 공군기지도 지역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0년째 주민들을 설득하러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적당히 여론수렴했다고 해놓고, 결국 공권력으로 밀어붙이는 우리나라의 국책사업 추진방식에 비추어 대조일 수 밖에 없다. <계속> <제주의소리>

<고유기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