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미의 제주여행(12)] 개발과 보존의 평행한 논리…신산-온평 해안도로

▲ ⓒ양영태
3월이 시작되고 벌써 보름이 되어 가건만 들리는 기상속보는 "산간지방은 대설주의보가 발효중임"이다
앞으로도 눈이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된단다.
올 겨울은 유난히 욕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인가?
엇그제는 보리밭에 보리가 이삭을 피었다는 소식이 신문지상에 올라있었던것 같은데 욕심을 많이 가지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 것 처럼, 이제는 눈도 지겨워지는 것일까?

   
성산읍 신산리에서 신양리까지 바닷가에도 해안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이제 제주도 해안가 대부분이 해안도로에 의해 둘러쳐져 있는 것이다.

   
이 신산-온평 해안도로에 가면 환해장성(環海長城)을 볼 수 있다.
환해장성(環海長城)은 말 그대로 바다를 따라 섬을 빙 둘러 쌓은 성이다.
제주섬은 예로부터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은 것이다.
환해장성(環海長城)은 제주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성산읍 신산리 환해장성은 제주도 기념물 제49-10호이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있고 일부만이 복원되어 있다.

   
복원된 곳에도 관광객의 손길이 어김없이 남아 있다.
무슨 기원할 것이 그리 많은지 보고나면 꼭 돌맹이로 탑을 쌓고 간다.
환해장성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제주도 해안선 300여리(약120km)에 쌓여진 석성(石城)을 말한다.
1270년(고려 원종11) 몽고와의 강화를 반대한 삼별초군이 진도에 들어가 용장성을 쌓아 대몽항쟁을 전개하였다.
삼별초군이 제주로 들어가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고려조정이 영암부사 김수와 고여림 장군을 보내어 쌓은 것이 그 시초이다.
이후 환해장성은 고려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왜구의 침입과 18~19세기 영국군함 등 이양선이 침범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보수 정비되었다.
현재 양호하게 남아 있는 곳 10개소(제주시 화북, 북제주군의 곤흘, 별도, 동복, 남제주군의 온평)가 제주도 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제주섬 해안선의 길이가 260여 km라고 하니 그 절반에 가까운 길이를 성을 쌓은 것이다.
아마 절벽이어서 배가 댈 수 없는 곳을 빼고는 다 성을 쌓았을 것이다.
그 시대에 살았던 조상들이 그 긴 성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렀을까?

   
"신산리 포구(안개)"

신산리의 옛 이름은 '귿등개, 그등애/末等浦'이다. 민간에서는 '귿등개, 그등개, 그등애' 또는 '신산이'라고 한다.
新山里는 속칭 '신산,신산이,신산모(아래아)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新山의 뜻은 한자표기 그대로 '새로운 산'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神이 선[立] 산'이라는 뜻인지 확실하지 않다. 후자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오창명, "제주도 오름과 마을이름"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신산리를 지나면 온평리가 나오고 그 곳에서도 환해장성을 볼 수 있다.
온평리 환해장성은 제주도 기념물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고, 황루알 해안에 일부 복원이 되어 있다.

   
온평리의 옛 이름은 '열온이' 또는 '열운이'이다. '열우-, 열오-'는 開 또는 結의 뜻으로, 婚姻池 전설(삼성신화의 주인공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열운이' 바닷가인 '황로알(황루알)'에 떠 내려온 나무상자에서 나온 세 처녀와 혼인지에서 결혼하고 사냥과 농사를 시작하였다는 전설)과 관련이있다.
곧 '열운이(열온이)'는 '연 곳' 또는 '맺은 곳(결혼한 곳)'의 뜻이다.
민간에서는 '혼연개(婚姻浦)'라고도 한다.
(오창명, "제주도 오름과 마을이름"에서)
복원된 환해장성을 조금 지나서 해안에 보면 '연혼포(延婚浦)'라고 새겨진 비(碑)가 서 있다.

   
"연혼포 앞 해안"

삼성신화는 많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고려사계(高麗史系)요, 다른 하나는 규장각(奎藏閣) 소장의 영주지계(瀛洲誌系)다.
삼성신화의 고려사계(高麗史系)는 <新增東國與地勝覽>, 李元鎭의 <耽羅志>, <東國通鑑>, 李衡祥의 <南宦博物> 古條, <海東繹史>, 金斗奉의 <耽羅誌>, 李秉延의 <朝鮮환輿勝覽>, 金斗奉의 <濟州島實記>의 기록 등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탐라현은 전라도 남쪽 바다에 있다. 고기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세 신인이 땅에서 솟아났다. 한라산의 북녘 기슭에 구멍이 있어 모흥혈이라 하니, 이곳이 그것이다.
맏이를 良乙那라 하고 다음을 高乙那라 하고 셋째를 夫乙那라 했다.
세 신인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해진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 오는 것을 보고 나아가 이를 열었더니, 그 안에는 돌함이 있고, 붉은 띠를 두르고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가 따라와 있었다.
돌함을 여니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과 송아지, 망아지, 그리고 오곡의 씨가 있었다.
이에 사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본국 사자입니다. 우리 임금께서 세 따님을 낳으시고 이르시되, 서쪽 바다에 있는 산에 神子 세 사람이 탄강하시고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시다고 하시며 신에게 명하시어 세 따님을 모시도록 하므로 왔사오니, 마땅히 배필을 삼아서 대업을 이루소서", 하고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가 버렸다.
세 사람은 나이 차례에 따라 나누어 장가들고, 물이 좋고 땅이 기름진 곳으로 나아가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점치니, 良乙那가 거처하는 곳을 第一都라 하고, 高乙那가 거처하는 곳을 第二都라 했으며, 夫乙那가 거처하는 곳을 第三都라 했다.
비로소 오곡의 씨앗을 뿌리고 소와 말을 기르니 날로 풍부해지더라.

   
연혼포 북쪽의 해안은 넓고 편평한 암반대지로서 '냇빌레'라 부른다.
마치 새까만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이 '냇빌레' 해안 옆에는 황근자생지가 있다.
지금은 잎이 모두 지고 볼품이 없지만 여름철 가지 끝에 달리는 노란 꽃은 참으로 아름답다.
길이 보존해야 할 자원이다.

   
"온평 해안도로"

   
"해안도로에 있는 당"

   
"온평포구(동개)"

   
"신양해수욕장"

온평리를 지나면 신양리까지 해안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도로는 '섭지코지'까지 이어져 있다.
신양리 마을을 끼고 해수욕장이 있는데,내만형의 깊숙한 지형 특성과 얕은 수심으로 인해 윈드서핑을 하러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붉은오름과 선돌(立石)"

"제주섬이 나무라면, '섭지'는 그 동쪽가지에서 뻗어나간 나뭇잎 모양의 땅이다.
잘록한 목을 지나 바깥으로 나갈수록 펑퍼짐하니, '섭지'는 나뭇잎을 빼 닮았다.
나뭇잎의 뜻을 지닌 제주어가 '낭섭'이다. 그래서 '섶' 또는 '섭'이라고 하고, '지'는 '코지'의 '지'처럼 땅이름에 붙는 말이다. 이 곳을 두고 '섭지', 어떤이는 '섭지코지'라고도 이른다.
[고광민, "제주도포구연구"에서]

   
"섭지코지의 현 모습"

영상물을 등에 업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시 지은 촬영세트 건물 너머로 그 옛날 섬을 지키기 위해 연기를 피우던 선조의 모습이 가물거린다.

   
섭지코지 언덕위의 "협자연대"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옛 선조의 삶을 돌아보고, 개발과 보존의 평행한 논리를 따라 다니는 길에도 어김없이 봄꽃은 피어 있었다.

※ 양영태님은 '오름오름회' 총무, 'KUSA동우회 오름기행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양영태님의 개인 홈페이지  '오름나들이(ormstory.com) 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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