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상대회서 만난 사람] 러시아사할린 '우리말방송국' 김춘자 국장
대정 출신 교포2세, 이민자의 딸로 러시아서 제주인 긍지높여

동토의 땅, 러시아 사할린에서 ‘사할린 우리말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 김춘자 국장(58)은 “성공한 제주출신 상공경제인들을 보면서 고향에 대한 긍지심을 느낀다”며 “제주를 떠나 있지만 고향 제주의 이름을 세계 속에서 떨치고 있는 제주인들을 보면서 자부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고향방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지난 27일부터 사흘간의 일정으로 치러진 제1회 글로벌 제주상공인대회에 참석한 김춘자 국장을 만났다. 김춘자 국장 외에도 해외 5개국에서 활동 중인 제주출신 상공 경제인 90여명이 지구촌 곳곳에서 오직 ‘제주인’이라는 이름으로 고향 제주를 찾아왔다.

해외 참가자 한명 한명이 모두 각자 생활하고 있는 나라에서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제주인으로서의 긍지를 키워나가고 있는 소위 민간외교관에 다름 아니다.

▲ '사할린 우리말 방송국' 김춘자 국장. ⓒ제주의소리
그 중에서도 우리말 방송국을 운영하면서, 러시아 사할린에 한국의 전통문화와 한류바람을 이어가고 있는 제주도 대정읍 출신의 ‘사할린 우리말방송국’ 김춘자 국장은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은 감격이 남다른 듯 처음 만난 제주출신 상공경제인들의 손을 오래도록 놓지 못하고 밤이 깊도록 인사를 나눴다.

러시아 동포 2세인 김 국장은 아버지(故 김윤국)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출신이다. 일제시대 일본을 거쳐 러시아 사할린으로 옮겨간 이주민의 딸로 태어난 김 국장은 바이칼호가 있는 이르쿠츠크 외국어대학 영문학과를 마치고, 지금은 ‘말이 곧 혼’이라는 신념으로 4만명의 교포들의 입과 눈과 귀가 되어주는 우리말방송국을 이끌고 있는 자랑스러운 제주의 딸이다.

지난 2003년 친척을 찾아보겠다며 대정읍을 방문했던 그녀가 6년 만에 다시 고향 제주에 왔다. 교포 2세이긴 하나 우리말방송국 국장답게 한국어에 능숙했다. 그는 고향이 다시 온 소감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쁘다. 아버지의 고향이 제 고향이기 때문에 고향 제주에 온 것만으로도 한없이 감개무량하다”고 들뜬 심경을 밝혔다.
 
김 국장은 지난 2003년 제주방문에서 어렵사리 수소문 끝에 6촌 오빠를 만났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도 찾을 수 있었다. 난생 처음 조부모 묘에 성묘하고 흙 일부를 사할린으로 가져가 그해 8월15일에 아버지 묘에 덮어드리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단다.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만리(異國萬理) 땅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아버지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사할린 TV.R국영방송공사 부설 사할린 우리말방송국의 TV채널은 지난2004년 8월15일에 시작, 올해로 5년째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가 아버지 묘에 고향 제주의 흙을 덮어드린 날도 그렇고, 유난히 8월15일을 강조하는 김 국장에게 ‘왜 유독 8월15일에 집착하느냐’는 우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8월15일은 우리나라가, 우리민족이 해방을 맞은 가장 중요한 명절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특히 해외교포들은 광복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라며 “광복의 그날이 없었더라면 우린 아직도 일본치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고향땅을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올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우리말방송국은 동토의 땅 러시아 사할린에서 힘든 삶을 살았을 이주민이나 강제징용 1세들의 삶만큼이나 순탄치 않았다. 재정난으로 폐국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4만 여명의 교포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겠기에 문을 닫을 수 없었다. 지금은 정상화를 이뤄낸 보람과 기쁨은 형언하기 어렵단다.

김 국장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특히 재정난을 겪으면서도 그동안 우리말방송국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고국동포들의 온정어린 도움의 손길 덕택이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김 국장은 “현대홈쇼핑에서 지난 5년 동안 매년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덕택에 우리말방송으로 한민족의 얼을 지켜나가고 있다”며 “그밖에도 KBS는 물론 방송위원회 등에서도 콘텐츠와 방송장비 등을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있어 고국의 깊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TV방송 개국 이후 가을동화, 대장금, 세잎클로버 등 우리 드라마는 한민족 외 현지 러시아인과 소수민족 사이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국장이 운영 중인 사할린 우리말방송국은 러시아 사할린 섬 유즈노사할린스크 꼼소몰스까야에 위치해 있는 사할린 국영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에 속해 있는 한국어 방송국이다. 현재 사할린 유일의 소수 민족 언어 방송국이다. 1956년 10월 1일 조선어 라디오 방송국이란 이름으로 설립된 후 1991년 현재의 사할린 우리말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됐고, TV방송은 2004년 8월 15일에 시작됐다. 주 청취 대상은 사할린 섬에 거주하는 한국인이지만, 100여개의 소수민족이 모여살고 있어 한국인 외 러시아 소수민족 등 폭넓은 시청자와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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