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돌하르방을 평화 상징으로

           I. 로렐라이에 장가간 돌하르방

  돌하르방이 제주의 대표적인 상징물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래서 제주는 기회 있을 때마다 돌하르방을 밖으로 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주를 알리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제주의 그 누구보다도 아무 말 없이 어디에선가 딱 버티고 서서 제주를 홍보하고 있다. 이쯤 되면 세계 속에 제주를 알리는 ‘국제교류 전도사’가 따로 없어 보인다.

  제주도에 따르면, 2002년 시작된 돌하르방 장가보내기는 전 세계 9개 도시에 17번에 이른다. 평균 1년에 2기의 돌하르방이 외국으로 나간 셈이다. 그 동안의 제주도정의 수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 2배 정도의 속도로 돌하르방이 외국으로 나가 제주를 알리고 기억을 되살리는 데 역할을 하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조만간 90개 도시에 170개 돌하르방이 제주와 세계를 연결 짓는 가교 역할에서 첨병이길 기대해 본다.

  최근 제주시가 독일 로렐라이시에 돌하르방을 세웠다고 해서 여기저기서 축하의 소리가 들린다. 중학교 시절 배웠던 로렐라이 언덕에 대한 노래로  쉽게 감미로운 상념에 빠져들 수 있는 우리로서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대신 돌하르방이 그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그 언덕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제주를 알린다고 하니 기특하고 흐믓하다. 만일 한국인이나 제주도민 가운데 누가 그 곳에 갔다가 제주 돌하르방을 보면, 마치 이웃집 친척을 만난 것처럼 반가우리라.

  로렐라이시에서 진행되는 돌하르방 제막식에 참가하느라 강택상 제주시장이 행정감사에 불참했다고 도의회 의원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를 보면 참 행정도 쉽지 않아 보인다. 행정감사도 받아야 하고, 돌하르방 제막식에도 참석해야 하고. 결국 행정도 선택이고 우선순위의 문제인 듯하다. 다만 보다 진정어린 마음으로 사전에 돌하르방 제막식의 중요성을 의원들에게 잘 설명해 양해를 얻었다면, 그렇게 행정감사 기간에 외유를 떠났다고 질책을 덜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결국 행정도 마음과 자세인 듯싶다. 그러나 여전히 누구를 향한 또는 누구를 위한 마음이고 자세이냐의 문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로렐라이시에 돌하르방을 세우면서 이제 제주시는 중국 계림시와 래주시, 미국 샌타로라시, 일본 산다시와 동경 아라카와구에 이어 6번째로 돌하르방을 통해 제주를 세계와 연결 지어 나가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중국 래주시인 경우는 래주시 꽃인 월계화를 제주시 신산공원에 3,000여 본을 심어 제주시와 래주시 간의 우호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 나가고 있다. 로렐라이시 경우도 로렐라이요정(인어상)을 제주시 해변에 세워 제주 돌하르방과 로렐라이 요정간의 만남을 통해 상호교환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돌하르방을 보내고 인어상을 받아오는 것과 같은 일련의 우호협력과정이 모아지면, 그만큼 제주 섬과 세계를 한 데 연결 짓는 점들이 선으로 이어지고, 언젠가는 이 선들이 피륙을 짜듯 면으로 확대되어 나가리라 보아도 되지 않겠는가. 세계평화의 섬 제주는 이렇게 하나 둘 모아나가는 것이지 선언이나 지정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요즘 따라 더 강하게 든다.

             II. 환태평양평화공원에 대한 돌하르방의 기대 

  돌하르방을 어디론가 계속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올 여름 어느 신문에서 보았던 기사가 생각났다. 서귀포시 대정읍에 <환태평양평화공원재단>(비영리재단)이 환태평양평화공원을 추진한다는 것인데, 이는 블라디보스토크(1994년 러시아), 샌디애고(1998년 미국), 옌타이(2001년 중국), 타후하나(2004년 멕시코), 팔라완섬(2009 필리핀)에 이어 6번째로 제주(2010 예정)에 조성되는 평화소공원이다. 제주도청 평화사업과에 따르면, 이를 위해 500평 정도의 사유지를 이미 구입해 두었고 이제 필요한 것은 제주 지역의 여러 봉사단체들의 노력봉사와 자발적인 물적 지원을 통해 한 30일 정도 걸리는 공원 만들기라고 한다.

  봉사와 지원은 말하기는 쉬우나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운 것임은 누구나 주지하는 바이다. 그래서 모처럼 자발적으로 그리고 생태문화와의 접합을 통해 평화소공원을 만들어 보자는 시도가 어떻게 잘 마무리 될 지 걱정도 든다. 그렇지만 문득 돌하르방을 떠올리면서 그 가능성에 기대를 가져본다. 돌하르방이 아무 말 없이 그냥 버티고 서 있음으로 해서 제주를 상징하고 있다면, 제주인도 바로 돌하르방처럼 아무 말 없이 그냥 평화소공원에 와서 무언가를 위해 서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그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가 한창 일 때지만, 제주가 중심이 되고 국내외로부터의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대정읍 상모리에 모여 그들의 손때가 묻고 땀이 얼룩진 30일을 모아 바친 결실이 바로 제주 환태평양평화소공원일 것이다. 제주를 찾은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사진을 한 장 찍으면서 진정으로 제주다운 평화소공원의 토착적 자연성에 기분 좋은 시간을 몇 분이라고 갖는다면, 이 또한 제주문화생태관광의 한 요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그러면서 혹 환태평양평화공원 재단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다면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을 상기시키면서 기존의 5개 환태평양평화공원에 혹 자리가 조금 남아 있다면 그 곳에 돌하르방을 갖다 세우면 안 되겠느냐고. 이러한 제안은 돌하르방을 하나라도 더 많이 세계로 보내는 것이 세계평화의섬 제주를 조금이라도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점에서 제주이기주의의 발로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제주가 언제든 로렐라이 요정상이라든가 래주시의 월계화정원 같이 다른 나라의 상징이나 기념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는 전형적으로 개방적 국제교류라 보아 무방하지 않을까.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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