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바다의 종합 선물세트와 같은 국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제주의 향토음식 선호도를 조사해 보면 가장 무난하게 추천하는 음식으로 ‘해물 뚝배기’가 꼽힌다. 구수한 된장 국물과 제주산 해물이 만나서 독특한 맛을 만들어 내는데 누구나 친숙한 된장의 맛 때문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오분자기와 성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우러나오는 특유의 국물 맛은 된장의 맛을 고급스럽게 끌어올린 맛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래서 외지인들은 물론이고 제주 토박이들조차도 즐겨 찾아먹는 음식인데 의외로 이 음식의 유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드물고 일반적으로 제주의 전통음식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과연 그럴까? 제주의 향토음식으로 자리잡은 해물뚝배기가 과연 제주의 전통음식일까?

  얼핏 생각해 보면 해물 뚝배기는 제주전통음식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선 된장만으로 국물을 풀어내는 것이 일반적인 제주의 국과 닮았고 제주바다 갯바위에서 잡힌 신선한 재료를 단순하게 끓여내는 조리방법, 그리고 칼칼한 매운맛은 풋고추를 조금 썰어 넣을 뿐 별다른 멋내기도 하지 않고 자극적인 양념도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주전통음식으로서의 특징을 제대로 나타내는 음식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조차 해물뚝배기는 제주의 전통음식임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음식이 제주전통음식이 아니었음을 나타내는 요소는 그 음식을 담은 그릇에 나타나고 있다.

▲ 해물뚝배기. ⓒ양용진

  바로 ‘뚝배기’라는 질그릇이 제주의 음식문화에서 상용화된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뚝배기라는 그릇은 타 지역의 경우 이미 고려시대부터 비롯되어 조선시대에 활발히 사용되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나 제주의 경우에는 이 그릇을 사용하여 음식을 조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제주옹기에서는 뚝배기가 발견되지 않는다. 외지 사람들이 드나들던 일부 관아에서나 기방 등에서는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반가의 음식에서는 뚝배기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 그릇이나 백자 그릇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이 또한 일반화 되지는 않았을 것임을 추정해 볼 수 있겠다.  90세 이상 연세 드신 어르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해방이후 간간히 보이긴 하였으나 실제로 일반화 된 것은 불과 2~3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러한 증언의 근거로 뚝배기의 활용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주로 충청 내륙등 중부지방과 강원, 경상지방의 동해안에서 그 쓰임새가 전해오고 있는데 찌개나 지지미를 끓일 때 또는 설렁탕·육개장·삼계탕과 같은 것을 담을 때 쓰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히 ‘뚝배기찌개’란 것이 있는데 뚝배기에 쌀뜨물을 부어 된장을 풀어서 뚝배기에 걸맞게 탁하게 끓인 음식이라 전하는데 강된장과 된장국의 중간정도의 농후한 찌개로 요즘의 청국장찌개와 유사하다 하겠다. 또한 뚝배기는 냄비처럼 빨리 끓지 않고 쉬 식지 않아서 오랜 시간 가열하는 기름진 음식이나 순두부찌개 등 농후한 음식에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과 일단 뜨거워진 것은 쉽게 식지 않으므로 겨울 추위가 매서운 지방에서 찌개 ·설렁탕 등 따끈한 음식을 담아 식사하는 동안 보온의 효과를 유지하는 용기로 활용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뚝배기의 활용도로 추정해 볼 때 제주의 전통음식에서는 이 그릇을 활용할만한 ‘탕’이나 ‘찌개’와 유사한 음식이 없었으며 된장 또한 국으로 활용할 때 외에는 날된장을 먹었으므로 당연히 이 뚝배기를 쓰지 않았음을 추리해 낼 수 있겠다.

  그렇다면 해물뚝배기는 과연 제주의 향토음식이라 할 수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해물뚝배기는 분명 제주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다.  앞서 거론했듯이 해물뚝배기는 제주음식 조리법의 특징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에 토속적인 색채가 짙은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는데 현재의 향토음식은 전통성보다 토속적인 부분을 더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통적인 향토음식이 아니고 변형된 향토음식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면 해물뚝배기의 역사는 불과 2~30년에 불과하다는 말인데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이 겨우 그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에는 모자란 감이 없지 않을까싶을 것이다.  과연 제주해물뚝배기에 전통성을 부여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해물뚝배기라고 명명된 것은 70년대 후반의 일로 기억된다. 80년대 초반 관광 붐을 타고 특히 많은 신혼여행객들이 제주를 찾으면서 택시관광이 피크를 이루는데  택시기사님들이 뭔가 제주도다우면서도 거부감 없고 가격부담도 적은 음식을 소개하기위해 알음알음 찾아낸 곳이 바로 서귀포의 ‘J식당’이었고 그 곳의 음식이 해물뚝배기의 전신인 ‘오분작뚝배기’였다. 이후 유명세를 타면서 급기야 전국적으로 소문난 유명식당이 되었는데 이 음식을 여러 식당에서 쫓아 만들어 팔면서 좀 더 푸짐하게 보이기 위해 다양한 해물을 넣으면서 자연스럽게 해물 뚝배기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 바릇국 ⓒ양용진

  그러면 그 이전에 제주사람들은 해물뚝배기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어떻게 조리 해 먹었을까? 구워서, 삶아서, 생식을 하기도 했지만 뚝배기처럼 국물요리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바로 ‘바릇국’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국이 그것이었는데 ‘바릇’이란 ‘바다의’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직역하면 ‘바다의국’이라는 뜻이다. 제주의 다른 국은 주재료가 한가지인데 반해 바릇국은 바닷가에서 채집할 수 있는 재료들은 모두 넣어 끓인 국이었다. 미역과 오분작, 보말, 구살(성게), 조개, 깅이(방게)등 갯바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을거리는 모두 들어가는 바다의 종합 선물세트와 같은 국이었다. 청장으로 간을 하거나 된장을 풀어서 끓이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 국이 바로 해물뚝배기의 원조가 되는 전통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바릇국에서 미역을 빼고 된장을 좀 더 많이 풀어서 끓여냈는데 손님들이 따뜻한 상태로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바릇국을 뚝배기에 담아낸 향토음식이 바로 지금의 해물뚝배기인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유사한 음식이 마산에 기원을 두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해물된장뚝배기라고 부르는 음식인데 그래서 해물뚝배기의 원조는 아구찜의 원조이기도 한 마산 공동 어시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용기를 기준점으로 보면 합당한 주장이겠지만 그 내용물을 기준으로 본다면 제주해물뚝배기의 원조는 바릇국임에 틀림없다. 마산 뚝배기의 내용물은 제주해물뚝배기와 다른 일반적인 해물이기 때문에 전국어디에서나 누구나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제주해물뚝배기는 제주의 신선한 해물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물뚝배기를 막연히 제주전통음식으로 알고 있었다면 이젠 좀 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겠다. 이 음식을 즐겨 찾는 관광객들은 제주의 해물 뚝배기에  제주의 전통문화가 담겨있기를 원한다. 비단 이 음식뿐만이 아니고 향토음식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음식들을 접하는 사람들은 그 음식의 근원을 알고 싶어하며 그 음식에 담겨있는 스토리를 함께 먹고 싶어한다.  음식은 그냥 음식이지만 그 음식의 근원을 담은 스토리는 곧 문화상품이 되는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제주의소리>

<양용진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