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여론조사로 해군기지 해법 찾기

         I. 해군기지 갈등조정 가능성 

  갈등조정을 통한 사회통합의 방향과 관련하여 장덕진 교수의 <한국 사회통합의 미래> 보고서(2009년 9월)는, 대한민국에서 갈등이 증폭되는 가장 큰 이유를 갈등조정 장치가 미흡하다는 데서 찾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3개국의 평균 이념분포를 분석한 결과 진보를 1, 보수를 10으로 봤을 때 전체 평균은 5.52이고 우리나라는 5.69이다. 대한민국의 이념분포 역시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덕진 교수는 “젊은 층과 소득 하위계층에 대한 정치적 비대표성의 문제와 일상적인 갈등조정 메커니즘이 없어 이념갈등이 극한적이고 물리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제주해군기지는 예외적으로 이념갈등의 전형으로 자주 거론된다. 왜냐하면 통상 제주해군기지는 안보-개발 대 평화-생태간의 가치관 내지는 이념간의 대치로 인해 이를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기가 어려워 장기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갈등이 개발논리와 생태논리간의 대치로 귀결되는 데에 비해 제주해군기지는 여기에 안보와 평화간의 대치가 더 추가되면서 더욱 해법이 쉽지 않은 것으로 널리 이해되고 있다. 만약 제주해군기지 논쟁에서 이렇게 이념갈등이 핵심이라면, 오히려 그 해법은 쉽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지배적 이념인 안보지상주의와 성장제일주의를 양축으로 삼는 제주해군지지에 대해 그 누구도 이를 계속 반대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우선 이 가운데 성장제일주의에만 한정해서 다시 장덕진의 보고서를 보면, 대한민국 국민 중 ‘개인과 국가 모두 성장이 중요하다’는 개발연대형 비중은 56.84%로 미국(45.93%), 스웨덴(39.17%), 일본(37.47%), 멕시코(35.18%) 등 비교 대상 4개국보다 훨씬 높다. 반면 탈(脫)물질주의적 가치를 우선하는 ‘유토피아형’의 비중은 6.55%로 미국(15.28%), 스웨덴(20.94%), 멕시코(22.10%), 일본(23.30%)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또 ‘국가는 탈물질주의 단계이나 나는 아직 성장이 필요하다’는 유보·추격형은 28.72%로 멕시코(18.87%), 일본(18.74%)보다 높다. 이렇게 강한 개발연대형을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제주해군기지가 제주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창되는 한,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생태 가치를 들어 마냥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해군기지 해법은 어떻게 생태파괴를 줄일 것인가의 타협책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길게는 2002년 이후 그리고 짧게는 2006년 이후 수년이 지나는 2009년 12월 현재까지도 왜 해법이 마련되지 않고 있을까?

           II. 과학적 탐색과 여론조사 사이

  중앙일보(2009년 12월 4일)의 한 기사가 눈에 띈다. 칠레 와인 ‘몬테스알파’ 공동 창업자인 더글라스 머레이가 제시한 와인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는, 인공위성센터의 도움을 받아 지질학 정보를 활용해 최적의 포도재배 장소를 물색한 데 있다는 것이었다. 최적정 포도재배지를 찾기 위한 남다른 땀이 첨단과학과 결합하면서 와인 성공이 가능했던 것이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말 많은 제주해군기지가 떠올랐다. 화순에서 위미로, 이어 강정으로 제주해군기지 후보지를 옮겨 나간 해군의 행보와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몬테스 와인 재배최적지를 찾듯이 제주의 어느 항구가 최적지인지를 사전에 찾아놓았다면, 여론조사로 해군기지 후보지를 결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군기지를 어디에 건설할 것인가는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양학과 군사학, 생태학 등의 과학적 탐색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인공위성센타까지 활용하여 보다 과학적인 방식으로 선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논쟁에서 그 해결을 위해 여론조사나 주민투표가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에 대해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를 도민에게 묻는 주권재민의 절차로서 합당한 것일 뿐이다. 제주도민 다수가 반대를 하면 안보상 필요로 하는 데에도 해군기지를 설치하면 안 되는 것인가의 안보논리에서의 이의제기는 아마도 여론조사나 주민투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하게 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보지상주의가 대한민국에서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논쟁은 그것이 평화든 생태든 장기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남북한대치가 현실이고 동북아시아 정세가 여전히 유동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논쟁은 해군기지를 설치하느냐 마느냐의 것이 아니라 피해지역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해 주느냐의 것에 국한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군과 제주도정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보상을 어떻게 줄 것인가에 대해서 전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이에 불만을 가진 측을 해군기지 반대쪽으로 밀어놓고 말았다.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된 이유가 이렇게 보상을 통한 해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정부와 제주도정이 피해지역 주민과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기피하는 고자세가 또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III. 도민에게 물어보자

  2009년 12월 시점에서 해법은 여론조사를 통해 찾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제주해군기지 후보지를 선정하는 데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이지만,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해법 모색에는 여론조사가 유용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 동안 해군기지 논쟁은 여전히 한편으로는 찬성과 반대의 대치가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1)해군기지 지원 특별법 제정 여부, 2)알뜨르비행장 무상 양여 또는 조건부 양여, 3)신공항 건설 조기 발주 또는 용역을 통한 추진, 4)강정마을에 대한 지원 주체와 지원액의 적정성 여부, 5)절대보전지구 해제의 조건 여부, 6)제주도 전체에 대한 국가보상의 수준으로 요약되는 몇 가지 쟁점에서 이른바 빅딜이 이루어지면 해군기지 건설이 가하다고 보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여론조사는 이 후자의 ‘합당한 보상을 통한 해군기지 유치’와 관련하여 제주도민들은 위의 5가지 쟁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에 맞춰 정부-제주도정-찬반 단체 간의 빅딜을 만들어 가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이러한 해법 모색은 부분적으로는 위의 장덕진의 보고서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대한민국 국민 다수는 개발과 성장을 더 선호한다는 현실 진단에 따른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분명 탈물질주의로 이행해 가고 있지만 국민 개개인은 여전히 성장을 더 선호하고 있다면, 제주해군기지가 제주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정부-제주도정의 사탕발림을 마냥 거부하기가 어렵다는 현실 추종은 불가피해 보인다. 사회운동은 한 발짝, 두 발짝 앞서 나갈 수 있지만, 정부와 도정은 잘해야 반 발짝밖에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임을 사전에 미리 수용해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 하나. 여론조사를 통해서라도 정부와 제주도정을 반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서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아쉬운 대로 해법 찾기로 나아가는 첩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양길현 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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