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제주해군기지, 올 것이 온 것인가

           I. 올 것이 온 것인가

  올 것이 왔다. 언젠가는 그렇게 막가파로 결정이 날 줄 몰랐다면, 그건 바보다. 왜냐하면 해군기지 추진에서 민주적 절차를 도외시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이미 편법과 탈법으로 가득 찬 제주해군기지 추진에 대해 새삼스레 적법 절차를 외치는 것 자체가 세상사를 모르는 순진한 착상일 것이다. 세상의 일이 적지 않게 이렇게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걸 몰랐다면, 그걸 모르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것일까.

  내년 1월이면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착공된다고 한다. 지난 6년간 제주도정이 도민을 위한다며 그렇게 심혈을 기울이며 손꼽아 기다리던 사업이 마침내 시작되었으니, 제주도민들이 모여 축하 잔치를 벌여야 할 것인가.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안보가 더욱 튼튼해지고 제주경제가 살아나게 되었으니, 김태환 지사에게 고맙다고 절을 올려야 도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에 위로를 해야 할 것이고, 결국은 해 내는 강단과 일수불퇴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마땅해 보이기에. 

  노무현정부 때 시작된 이른바 국책사업 가운데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도 전혀 수정보완이 없이 오히려 더욱 가열 차게 추진된 제주해군기지는 참 말이 많았다. 그렇다고 2009년 12월 17일이 지나면서 사실상 2000년대 10년 내내 제주사회를 갈등으로 휩쓸리게 한 지역사회의 최대 현안이 하루아침에 그냥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인가. 일부에서 헌법소원을 낸다는 보도도 있지만, 결국 제주해군기지는 힘의 논리로 추진되어 나갈 전망이다. 다만 160여일 이후 치러질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해군기지를 둘러싼 여파가 어떻게 작용할 지를 둘러싼 도민 여론의 정치적 파급은 정중동으로 진행되리라 볼 것이다. 

  해군기지 문제에서 중앙정부의 논리는 크고 제주의 미래비전은 너무 작게 처리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이 컸다. 힘의 논리에 기반을 둔 안보지상주의에 덧붙여 지역경제 살리기에만 올인하는 제주도정의 성장만능주의가 21세기에는 세련되게 다듬어질 줄 알았는데, 미래지향적 변화가 너무 적어 보이는 이명박정부와 김태환도정은 고리타분 그 자체이다. 생태 관련 국제회의를 유치하고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하는 전시성으로 지속가능성을 대신하려는 20세기형 도정 운용으로는 미래가 별로 밝아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방식으로 21세기 쟁점을 다스리려는 정부-한나라당 제주도당-제주도정의 일방적 밀어붙임은 결국은 2009년 12월 파행과 편법으로 얼룩진 도의회 자화상을 낳고 말았다.

  힘의 논리에 의거하여 안보를 중시여기는 현실주의적 국제정치 시각에서 보더라도, 제주해군기지를 통한 대양해군의 발동이 얼마나 대한민국의 안보를 공고히 해 줄 것인지는 누구도 쉽게 단언하기가 어렵다. 세계 최강의 미국도 9·11 테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교류협력을 통한 따뜻한 대외관계 구축이 전제되지 않는 채 힘만으로 평화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거의 예외 없이 일순간에 무너지기 쉬움을 역사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바다. 다만 중국과 일본, 북한 등 동북아 국가들의 군사력 강화에 동일 수준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그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군사력을 강화시킬 필요성이라는 안보 논리에서 보면 제주해군기지가 대한민국의 안보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파악될 소지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까지도 힘의 논리로 동북아의 평화를 추동해 나가는 일련의 군비강화에 편승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의 문제제기는 유효하다. 제주도의 지정학이 대한민국의 안보에 긴요한 것으로 재규정되는 가운데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공군탐색부대까지 들어설 요량이고, 그래서 향후 세계평화의 섬은 외교나 국제교류 등과 같은 평화적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힘의 논리에 의거하여 평화를 추동해 나가는 전략기지로 화하는 것 같아, 이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II. 구성지-김용하-부상일 논평

  2009년 12월 17일 이후 제주해군기지문제가 파국으로 치달은 데 대해 제주도의회 김용하 의장과 구성지 부의장 그리고 한나라당 제주도당 부상일 위원장의 기자회견 및 대담을 지켜보면서, 그 누구도 제주도의 미래비전과 관련하여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얘기하지 않아 실망이 컸다. 정부가 해군기지를 제주에 건설하려는 데 어찌 도의회와 한나라당 제주도당이 시간만 질질 끌 수 있느냐의 중앙정부의 시각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제주지방정치의 미래가 퍽 안스럽게 생각되었다. 제주지방정치가 한국중앙정치의 종속 변수임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향해 어떤 때는 ‘아니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구성지-김용하-부상일의 발언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자신이 십자가를 졌다는 구성지 부의장은 스스로를 해군기지 반대론자라고 했다. 다만 정부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만큼, 이를 마냥 반대하는 것은 한나라당 도의원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싶다. 결국 한나라당 도의원이라는 자리가 구성지 부의장으로 하여금 의사봉 대신 손바닥으로 춤을 추게 한 것으로 추론된다. 그래서 무난히 2010년 한나라당 공천은 받겠지만, 그 당선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본인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안 한 것이라 강변하고 있지만, 그렇게 강변할수록 더욱 의사봉을 들기까지에는 김용하 의장에 대한 인간적 고려 못지않게 정치적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시사해 준다. 본인 말대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심판을 받겠다고 하지 않은가. 이보다 더 신념에 찬 정치적 판단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구성지 부의장이 말처럼, “해군기지 찬성한다고 해서 절대 ‘악’이 아니고, 반대한다고 해서 절대 ‘선’도 아니다.” 해군기지는 선과 악의 이분론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기에 그렇다. 해군기지는 제주도민들을 이해시키면서 추진해 나갈 국가의 사업이라고 보는 게 사리에 맞다. 그래서 구성지 부의장은 도민들을 이해시키는 데 많은 부족을 보인 제주도정에게 사과를 하라고 권고했다고는 한다. 그러나 그 스스로 손바닥 활극을 보인 데 대한 도민 사과는 없다. 그저 도민사회가 ‘불통’되어서는 안 된다는 충고만 늘어놓았다. 도민사회의 ‘불통’에 정부와 제주도정 그리고 제주도의회가 앞장섰다는 반성은 전혀 없다. 그저 만만한 게 언론이고 NGO인지, 여기에 책임을 묻고 있다.

  해군기지 의안 파행 처리에 대한 김용하 의장의 자세에도 진정성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의원간 마찰 등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도민 여러분께도 파행으로 비쳐진 데 대해 의장으로서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번민이 컸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김용하 의장의 사과가 가슴에 착 와 닿지 않은 이유는 파행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그의 변명 때문이다. 도의회 의장으로서 파행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의 입장 표명이 없이, 김 의장은 “국책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찬·반 양론을 언제까지 방관만 할 수 없다는 마음과 그동안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뤄졌다는 판단에서 일부 동료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처리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사과를 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다수결로 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상황론에 기대어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 정당한 일 처리에 왠 사과인가. 사과의 진정성이 부족해 보이고 그래서 예의상 사과하는 척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나라당 제주도당 부상일 위원장의 기자회견은 차라리 하지 않은 만 못했다. 평소 제주사회의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었던 차라 이번 그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나오고 사법고시 합격한 변호사 출신의 위원장으로서 “표현상으로 보면 날치기는 맞는 것 같다. 정상궤도는 아니다”고 얘기하는 데서 시작은 좋았다. 그러나 곧 이어 “위법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다”고 말해야 할 만큼, 그 역시 무엇을 위해서 정치를 하고 있는지의 철학 빈곤을 보이고 있다. 위법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 자체가 바로 위법임을 널리 공언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그의 정치적 감각도 의심스럽다. 그 스스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게 목적인 듯,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파국으로 치달은데 대해 고작 한다는 얘기가 “제주출신 국회의원 3명이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이라고 그 책임을 민주당 국회의원에게 돌렸을 뿐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도민과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는 얘기 한 마디 없이 “도의회가 해군기지 문제를 계속 표류시키는 바람에 중앙정부에서 제주도의 신뢰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는 협박성 얘기나 전하는 정치력으로는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워 보인다. 차세대 정치인답게, 의회 파행에 대해 사과하고 도민들에게 이해를 촉구하면서 강정마을 주민의 허탈함을 달래고 또 제주해군기지 추진에 따른 합당한 보상 찾기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지 못할 바에야, 무어 기자회견 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은 기자회견이었다.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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