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음식이야기] (7) 겨울 한라산의 별미, 꿩

제주의 겨울은 꿩 사냥의 계절이다. 한라산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 장끼와 까투리들이 해안 마을까지도 날아와 먹을 것을 찾는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는데 불과 2~30년 전만 해도 시골 동네 아이들조차 너무도 손쉽게 꿩을 잡곤 했다.

요즘은 전문적인 사냥꾼들이 수렵 허가기간에 엽총을 들고 산으로 나서서 잡아오지만 꿩의 습성을 너무도 잘 아는 제주의 아이들은 꿩이 늘 다니는 길목의 덤불 서너 곳에 ‘꿩코’라는 덫을 놓아두기만 하면 하루에 한두 마리씩은 잡을 만큼 꿩 사냥의 고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많이 잡아도 개체수가 줄어들지 않을 만큼 한라산과 제주도는 꿩들이 살기에 천혜의 환경이기도 하였다.

꿩의 서식지를 살펴보면 한반도 전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내륙지방의 산악에는 모두 서식했던 것으로 볼 수 있겠으나 유독 한라산에 단위면적당 개체수가 많아서 대부분의 백과사전이나 동물도감 등에는 제주를 대표적인 서식지로 기술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꿩은 분명히 제주를 대표하는 특산물임에 틀림없는데 유독 겨울의 별미로 꼽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꿩은 사시사철 볼 수 있다. 그러나 봄에서 여름을 지나는 시기에는 산란기로써 고기 육질의 맛이 현저히 떨어지고 찬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들면서 꿩고기의 육질의 맛이 살아나 겨울철 보양식으로는 견줄 것이 없는 으뜸이라고 하니 한해가 저물어가는 지금이 제철인 것이다.

꿩엿 꿩엿은 엿을 고는 사람에 따라 농도가 다르다. 대부분 야간 흐르는 정도의 되기를 선호했는데 사진처럼 약간 되직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래전에는 겨울에 중산간 마을에서 꿩을 잡으면 저장 해 둘 곳이 없어서 눈 위에 그대로 두어 꽁꽁 얼렸다가 귀한 손님이 오면 가슴살로는 육회를 만들어 먹고 나머지는 포를 떠서 찬바람에 말려 육포를 만들어 먹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4.3을 겪으면서 산간 마을들이 폐허가 되고 모든 사람들이 해안마을로 정착하면서 산간에서 만들어 먹던 꿩 육포도 만드는 이가 없어져 이제는 기억조차 흐려진 음식이 되어버렸다.

거기다가 한동안 중산간 도로공사 등으로 꿩의 서식지도 많이 축소되어 개체수도 많이 줄었고 한때 꿩 사육장이 몇 곳 생겨서 꿩을 쉽게 접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고 대부분의 꿩 사육장이 문을 닫아버린 상태이다.

그런데 오히려 경기도와 충청도 내륙의 일부 산간지역에서 제주산 꿩을 사육하며 꿩 요리를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업소들이 근래 몇 년 새에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것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소개되고 있다고 하니 또 하나의 제주다운 특산물을 빼앗긴 형국이라서 적잖이 속이 상한다. 더 늦기 전에 가장 제주다운 겨울 음식으로 꿩의 가치를 인정하고 한라산이 선물한 대표상품으로 정책적인 뒷받침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꿩엿 오래전 꿩엿은 옹기단지에 넣어 벽장속에 보관하곤 했는데 요즘은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먹는다. ⓒ제주의소리

  제주사람들에게 꿩은 그냥 음식의 재료로서의 가치보다 엿을 만드는 재료로 더 친숙하다. 전국 어느 지방이나 특유의 엿이 있기 마련인데 제주의 ‘꿩엿’은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음식이다. 추운겨울 동물성 단백질을 꾸준하게 복용하는 방법으로 매우 훌륭한 음식이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엿을 꿩과 함께 고아서 걸죽해진 상태로 단지에 넣어 두었다가 매일 한 수저씩 복용하며 추운겨울에 필요한 열량을 보충하던 할머니 할아버지. 또 그 곁에서 한입 더 먹겠다고 칭얼대던 손자 손녀의 모습들은 매해 겨울 집집마다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그만큼 꿩엿은 매우 친숙한 저장식이었고 제주음식 중에서 가장 당도가 높았던 간식이었다.  지금은 모 업체에서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그 제품의 식품으로서의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단순한 관광상품으로만 인식되고 있어 이 또한 안타까움을 금할길 없다. 

  꿩엿과 함께 꿩요리로 유명한 것은 ‘꿩 메밀 칼국수’이다. 이 음식은 꿩 한 마리로 온 집안 식구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 먹었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꿩고기와 뼈를 같이 우려낸 국물에 약간 두껍게 무채를 썰어 넣고 메밀반죽을 밀어 면을 썰어 넣는데 사실상 면이라 부르기 보다는 무채와 같이 짤막한 길이여서 젓가락으로 집어먹기보다는 수저로 떠먹기에 적당한 칼국수라 하겠다. 그리고 이 음식은 일부에서는 ‘칼국’이라 불리기도 했을 만큼 국수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결국 칼국수라 이름은 붙었지만  꿩메밀조배기(수제비)가 조금 진보한 수준의 음식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꿩메밀칼국수 국수라고 보기에는 한참 짧은 국수가락을 수저로 떠먹기도 했는데 면을 칼로 썰어 넣는다고 칼국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요즘의 꿩요리 전문점에 가보면 가장 일반화 되어있는 음식으로 꿩 한 마리코스 요리로 샤브샤브를 볼 수 있는데 샤브샤브가 일본 요리로 알려져 있어 이 음식 또한 일본음식으로 얘기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꿩샤브샤브’는 제주에서는 오래전부터 먹어온 음식이다. 제주에서는 ‘꿩토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토렴’이라는 방식은 조리방법을 이르는 것으로 재료를 끓는 물에 데쳐먹는 방법으로 샤브샤브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다만 명칭과 함께 곁들여 찍어먹는 소스를 요즘은 일본식의 폰즈소스와 고추냉이를 많이 활용하면서 일식처럼 여겨지게 된 것인데 우리의 음식문화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샤브샤브의 역사를 말할 때 징기스칸이 전투 현장에서의 식사방법이 일본으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토렴이라는 조리법은 이미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조리법이므로 우리의 고유한 조리법을 지켜내기 위하여 요리 명칭을 바로잡고 소스 또한 우리의 고유한 양념을 이용한 소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이밖에도 꿩으로 만든 음식으로는 꿩만두를 들 수 있는데 이 또한 과거에는 주로 메밀 반죽으로 만두피를 만들어 이용한데 반해 요즘은 밀가루 만두피를 이용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하겠는데 이 또한 과거처럼 메밀꿩만두로 어필한다면 제주의 대표상품이 될 것이다. 

  근래 제주의 향토음식들이 주로 바다의 재료들로 형성되고 있는데 반해 꿩은 앞서 거론한대로 새로운 관광 외식상품으로 제주의 겨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거듭날 소지가 많다. 주로 일본인 관광객과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은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서 먹는 음식인데 여전히 개발되어야할 소지가 많은 아이템이고 닭고기를 선호하는 우리나라사람들의 성향에 비추어 볼 때 비교적 거부감 없이 받아 들여 질 수 있는 음식재료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리 제주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하다. <제주의소리>

<양용진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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