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8) 제주브랜드 가치의 시험 - 재래종 흑돼지 되살리기

  근래에 이르러 제주의 흑돼지는 관광 상품으로 전국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제주하면 떠오르는 음식 또는 문화코드에 흑돼지는 빠지지 않고 한자리를 차지한다. 그만큼 지명도가 높은데 이는 누가 먹어봐도 흑돼지는 일반 돼지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흑돼지로 만드는 제주 특유의 음식들은 분명 문화적 가치가 높은 관광 상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흑돼지는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음식이야기가 아닌 음식의 재료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흑돼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몇 해 전 우연한 기회에 경기도 모처에서 중앙지 문화담당 기자들 십 수명을 대상으로 흑돼지 시식회를 가져보았는데 전국 유명 맛 집을 찾아다니는 그들의 입에서 아낌없는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샤브샤브와 돔베수육과 생구이로 상을 차렸는데 어느 메뉴 한 가지도 타박 받는 것 없이 골고루 극찬을 받았다. 그만큼 고기자체의 품질이 탁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래종 흑돼지는 마치 소고기처럼 지방과 살코기의 경계가 분명하며 구웠을 때도 지방이 탱탱함을 유지하고 검은 털이 박힌 것은 물론이고 부위별로 조금 다르지만 껍질자체도 약간 갈색을 띈다. 재래종에 가까울수록 몸집이 작고 귀가 쫑긋이 서있으며 간혹 흰점박이도 나타난다.

  그러나 지금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흑돼지들이 모두가 이렇게 찬사를 받을 수 있는 품질인지에 대해서는 의심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제주산 재래종 흑돼지가 그 품종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경제성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서양태생의 거대 흑돼지들의 혼혈종으로 생산, 사육되고 있으며 시중에 유통될 때는 그냥 제주산 흑돼지라는 이름을 걸고 소비자들 앞에 나서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부분 제주에서 과거 보아왔던 흑돼지가 아니라 서양의 몸집 큰 종자들이 제주에서 사육했다는 이유만으로 제주 흑돼지로 불리어진다는 것이다.        

  보통의 서양태생의 비육돈이 180일정도의 사육기간에 120kg 정도로 성장하는데 반해 재래종 흑돼지는 다자란 성돈이 고작 80kg 정도에 불과하고 이나마도 240일에서 길면 300일 정도는 길러야 하며 심지어는 성돈이 60kg정도가 될까 말까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똑같은 사육조건에서 이러한 성장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분명히 경제성의 논리로 본다면 경쟁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한동안 제주에서는 재래종 흑돼지가 사라졌었고 종의 보존이 안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의 생활의 질이 높아지고 음식이 단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에서 문화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기호상품으로 둔갑하면서 재래종 흑돼지의 수요가 일기 시작했고 몇몇 선구자들에 의해 재래종 흑돼지와 유사한 종이 복원되었다. 이 또한 옛것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일인데 그 와중에 약삭빠른 상술로 묻어가려는 자들이 속출하면서 오히려 제주 흑돼지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한다. 몇 달전 한 언론사 소비자 고발프로그램에 소개 되었던 가짜 흑돼지를 유통시킨 업자들도 그 한 예 인데 이를 제주특별자치도 차원의 철저한 품질관리에 대한 확고한 의지표명과 양돈, 유통업자들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집중함으로서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랬으나 철저한 단속을 약속하는 선에서 흐지부지 되어버린 인상을 주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 흑돼지 생구이 한국인이 돼지고기를 조리하는 방법중에 으뜸은 역시 구이다. 고기의 품질이 좋을수록 아무런 양념없이 생구이로 먹는 것이 진정한 고기맛을 즐기는 방법이라 하겠다. ⓒ양용진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흑돼지들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외래종을 기본으로 개량한 종자와 재래종 돼지를 기본으로 개량한 종자이다. 재래종을 기본으로 하는 경우 재래종 돼지와 외국산 버크셔 종을 혼합한 개량종으로 재래종의 비율을 높여 육질은 재래종에 가깝고 성장속도는 경제성이 있도록 앞당긴 품종인데 보통 빠르면 210일에서 240일 정도에 출하된다고 하며 마리당 100kg이 밑돈다. 반면 외래종을 기본으로 하는 경우에는 외래종의 비율을 높여 성장속도를 가속화 시킨 돼지를 말하는데 보통 일반 돼지와 마찬가지로 180일에서 길면 200일 이내에 출하 시키는데 마리당 120kg이상이 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육질이 다를 수밖에 없고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도축되어진 상태로 접하기 때문에 모를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더 큰 문제는 근친교배의 문제이다. 흑돼지의 종의 보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영세한 양돈업자들은 교배대상을 고르기가 쉽지 않은 상태이고 그러다보니 근친교배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는데 이는 도덕성의 문제도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도 기형의 우려가 높고 실질적으로 육질의 변성의 우려도 높아 제주 흑돼지의 상품가치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야기된 것은 모두가 흑돼지 종의 보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공적인 차원에서의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탓이라 할 수 있다. 재래종 흑돼지의 종자 보존을 통한 품질관리는 결국 또 하나의 제주만의 브랜드를 지켜낼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영세한 민간업자들에게만 그 일을 맡겨 둘 수는 없음에도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에서는 뒷짐을 지고 바라보기만 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러한 종의 보존을 위해서 노력한 사례가 이웃나라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흔히들 일본의 흑돼지를 말할 때 제주와 전통문화가 유사한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오끼나와를 떠올리곤 한다. 물론 오끼나와에서도 흑돼지를 제주사람들 만큼 선호한다고 한다. 특히 몇 해 전에는 오끼나와 자체 생산량으로는 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제주의 흑돼지를 수입해가려고 바이어가 직접 방문한 적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때 수출 협상에 임했던 한 기업체의 대표에 의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80kg을 넘지 않는 흑돼지였고 결국 우리 양돈업자들 입장에서는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육을 포기해 버린 재래종 흑돼지의 수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결국 오끼나와에서는 개량종이 아닌 재래종 품종을 지속적으로 유통시키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해 준 셈이다.

▲ 흑돼지샤브샤브 잡냄새없고 담백한 맛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흑돼지샤브샤브는 제주 돼지고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메뉴이다. ⓒ양용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흑돼지로 유명한 곳을 물어보면 우리가 알고고 있는 오끼나와가 아니라 가고시마를 첫 손 꼽는다는 사실이다. 가고시마 흑돈은 이미 70년대부터 일본에서는 최고의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오끼나와는 조리방법에서 제주와 같이 껍질을 벗기지 않고 삶아서 먹는 조리방법 때문에 유명한 곳이고 흑돼지 자체는 가고시마가 그 원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가고시마가 흑돼지의 원조가 된 것은 중앙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방정부의 각고의 노력의 결과였다고 전한다. 1촌 1품 운동이 벌어지던 70년대에 가고시마 현청에서는 가고시마의 재래종 흑돼지의 종을 복원시키기로 하고 양돈업자들과 협의하여 현에서 운영하는 종돈장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종돈이라는 것이 그 품질이 우수한 것은 마리당 수 억원도 호가하며 그 종의 품질을 지켜내는 비용 또한 수십억원이 소요되는 사업인지라 일반 양돈 업자들은 사실상 꿈도 꾸기 힘든 사업인데 지방정부에서는 십년이상의 장기 계획을 세우고 수백억의 예산을 쏟아 부으며 멸종위기에 있었던 재래종 흑돼지의 종을 복원시킴은 물론 그 개체수를 늘려서 결국 일본 제일의 브랜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한 정부차원의 노력에 힘입어 가고시마 양돈 농가들은 지금도 철저한 인증제를 통하여 품질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가고시마 흑돈의 사례는 우리 제주의 흑돼지가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늦은 감은 있지만 몇 해 전 부터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지원 정책을 시작하여 민간에서 운영해 오던 종돈장을 지원하고 품질보전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모색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이 소극적인 지원으로는 마구 범람하는 외래종 계량 흑돼지의 폐해를 막기는 역부족이며 종의 보존을 기원하기는 사실상 많이 힘든 상황이다. 감귤 중심의 1차 산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다양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으나 양돈 산업, 특히 제주의 고유브랜드로 확실하게 인식된 흑돼지에 대한 지원은 좀 더 집중력을 가져야 하며 결국 제주 흑돼지의 원형을 복원하고 그와 관련한 명품 브랜드를 확고히 다지는 사업은 민간업자들 몇 사람의 몫이 아니라 지방 정부나 중앙 정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개입과 직접적인 사업추진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안주하고 있는 이 시간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 몇몇 양돈 농가에서 제주 흑돼지와 유사한 재래종 흑돼지의 개체수를 늘리고 있고 실제 산청군의 지역 특화 브랜드로 흑돼지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제주도 하면 떠올리던 흑돼지의 뿌리가 지리산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곳의 흑돼지는 지금제주에서 유통되고있는 재래종 흑돼지와 비교하면 좀 더 원형에 가까운 흑돼지이기 때문이다.

▲ 돔베고기 돔베에 놓여있지 않으니 그냥 수육이라 하는 것이 옳겠으나 요즘의 제주사람들은 돼지수육을 썰어놓은 그 자체를 돔베고기라 부르기도 한다. ⓒ양용진
 

  제주 흑돼지의 종자 보존은 제주사람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제주에서 재래종 흑돼지는 수눌음 정신을 상징하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제주의 음식문화를 상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주의 흑돼지는 제주사람들의 공동의 이벤트를 상징하며 협동생활의 필요성과 낭푼밥상과 함께 현대적 의미의 평등과 나눔의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로 사회적 의미 또한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한 예로 일단 제주의 돼지고기는 인간의 통과의례 가운데 결혼을 상징하는 행사용 음식으로서 축제의 의미를 갖는다. 혼례를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 돼지를 추렴하는 일이었고 이일을 통하여 한 집안의 행사가 온 마을의 축제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기준점이 되었으니 이 또한 공동체 생활에서 의미 있는 상징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시골에서 벌어지는 잔치의 첫날을 잡는 날이라 칭하고 있고 이날부터 마당 한 켠에 걸린 가마솥에서 삼일 내내 돼지를 삶고 그 국물에 순대를 삶고, 국을, 혹은 고사리 육개장을 만들어 동네사람 누구나 하루세끼를 같이 한솥밥을 먹으며 자신의 일인 양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주는 풍습은 참으로 정겨운 축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돼지 한 마리는 그냥 돼지가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을 화합하는 매개체였으며 모두의 관심과 축복을 한곳으로 모아 녹여내는 촉매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주의 흑돼지는 원형 그대로의 흑돼지로 살아남아있을 가치가 충분한 존재인 것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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