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10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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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제주의소리
새로운 천년은 상상 속의 동물인 용(龍)의 해로 막을 열었다가 이제 그 첫 10년을 마감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지 타임(TIME)의 지난주 머리글은 이 기간을 “지옥 같은 10년(The Decade From Hell)”이라고 불렀다.

석연치 못한 대통령선거(부시 vs. 고어)로 막을 열더니 급기야 9·11사건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0~2001년의 닷컴 버블과 2007~2008년의 집값 거품은 세계적인 경제침체의 진앙이 되었다.

바로 전 10년(1990~1999) 중에는 다우지수가 2810에서 출발해 그 4배가 넘는 1만1497로 마감했는데 이번 10년은 1만4164(2007년)와 6547(금년 3월)을 오가다가 최근에 겨우 1만 포인트를 회복했다.

한때 국내에서만 60만명 이상을 고용하던 GM은 오늘날 7만5000명을 먹여 살리고 있을 뿐이다. 국민의 15%가 기초적인 건강보험마저도 없이 불안하게 살고 있다.

지옥 같은 10년이었다고?

같은 기간 아시아 국가들은 어땠는가? 우리나라 주가는 1990년 대략 700포인트에서 출발해 90년대를 900포인트 선으로 마감했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1998년의 저점 297을 통과하면서 내놓은 성적이었다. 그것이 최근 1천600포인트를 넘고 있으니 그리 나쁜 성적이 아니다.

홍콩과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로 이번 10년의 성적이 나쁘지 않다. 중국의 상하이 주식시장은 1990년에 재개장, 90년대를 1300포인트로 마감하더니 지금은 3000포인트를 상회하며 막을 내리고 있다. 거의 6000포인트까지 올랐던 거품이 미국 발 금융위기 덕(?)으로 제거되고 난 후의 수준이 그렇다.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1990년 3만7000포인트로 출발한 니케이 지수가 90년대 말에 1만8000대로 하락했고 이번 10년을 거치며 다시 1만포인트 선으로 추락하고 있다.

타임지는 지옥 같은 10년을 맞은 원인으로 몇 가지 항목을 열거하고 있다. 이슬람 테러 집단의 위험에 대비하지 못했던 ‘태만’, 월 스트리트의 ‘탐욕’, 자동차 산업에서 보여 주었던 ‘집단이기주의’ 등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런 것들은 어느 개인 또는 집단에게 항상 있었던 것 아닌가?

100년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구호로 외세배격에 나섰던 중국의 의화단(義和團)이 열강 8개국의 연합군에 의해 섬멸됐다. 이어 1901년의 신축조약(辛丑條約)은 중국제국의 유린과 약탈을 가속화했다. 우리나라도 영일 동맹(1902). 포츠머스 조약(1905), 가쓰라-태프트 밀약(1906)을 거쳐 1910년 일본에 병합됐다.

1세기 전의 세계사는 서구 열강(여기에 일본이 합세한다)에 의한 동양 강점의 역사였다.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나무는 스스로 병약할 때 해충이 번성하여 고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나 문명이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필연이다. 다만 어느 문명은 남보다 더 높이, 그리고 오래 솟았다가 쇠락할 뿐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문명의 흥함은 양차 세계대전을 거쳐 냉전에서의 승리로 이어졌다. 지금은 국지적인 분쟁이 있을 뿐 군사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미국에 대적할 국가나 문화 집단이 없다. 바로 이것이 한 제국의 흥망성쇠의 한 고비에 적합한 조건을 형성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구문명의 빠른 쇠락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세계사의 주역이라는 역할을 이제는 동양과 서양이 분담할 것을 기대한다. 서로가 도전과 경쟁의 상대가 되어 주는 것이 발전을 위하여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하기에 넉넉하고 우리 국토의 위치와 기타의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일차 이차의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의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백범일지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김구 선생이 원하던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상(理想)의 낮음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훌쩍 커버린 동양의 한 작은 나라. 백범의 바람이 허장성세가 아니라고 믿으면서 새천년의 두번째 10년을 맞이하고 싶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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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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