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1) 제주 최대 물류 집산지 일도1동 동문시장

<제주의소리>가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연재를 시작합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역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를 시작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2009년의 동문시장 동문시장은 제주시에서 가장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고 제일 먼저 잠이 깨는 곳이었다 ⓒ김순이

어린 시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동문시장은 제주시에서 가장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고, 제일 먼저 잠이 깨는 곳이었다. 시골에서 곡식이나 채소, 과일을 실은 마차들이 새벽에 당도하여 짐을 풀었고 부두에서는 펄떡펄떡 뛰는 싱싱한 생선들이 구덕에 담겨 들어 왔다.

어물전 매일 새벽 부두에서 펄떡펄떡 뛰는 싱싱한 생선들이 구덕에 담겨 들어왔다. ⓒ김순이
장작장수, 숯장수, 채소장수 등은 도착하는 대로 열을 지어 앉았다. 그 사이를 돌며 아침 찬거리를 사러 나온 아주머니들이나 중간상인들이 물건을 흥정하기 시작하면 지게꾼들이 눈치 빠르게 따라붙었다. 무거운 것을 사면 지고 가기 위해서였다. 지게꾼은 그 시절의 택시였다. 동문시장에 붙어 사는 지게꾼이 70명도 더 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제주시가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재래시장 살리기’이다. 동문시장과 더불어 제주시에는 서문시장, 중앙시장 등의 재래시장이 있다. 이들 시장을 살리기 위해 이런 저런 부양책을 써 보고 있으나 그 효과는 별로요,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

동문시장은 일제강점기 이후 제주읍이 팽창하면서 가락쿳물과 산지물 사이에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공설시장으로 발전하였다. 동문시장이 유난히 번창하게 된 데에는 부근에 동회선과 서회선 정기버스 시종점이 있어서였다. 자연히 제주도의 모든 물류는 시외버스에 실려서 이곳으로 집합되었다. 또 산지항을 통하여 다른 지방의 물품들이 들어오면 가장 가까운 동문시장으로 들어와 도소매 형태로 거래되었다.

동문시장은 당시 제주에서는 최신상품이 선보이는 곳이었고 최고급 상품이 진열되어 여성을 유혹하는 곳이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시장은 여성의 마음을 빼앗는다. 혼사를 앞둔 어머니들은 동문시장 포목점 골목에서 혼수품을 장만했다.

잡화전 동문시장은 제주에서 최신상품이 선보였던 곳으로 최고급 상품 진열로 제주여성을 유혹하고는 했다. ⓒ김순이

그릇점에는 유기, 스텐레스, 알미늄, 본차이나 등 언제나 시대를 앞서 달리는 그릇들이 전시되어 어머니들의 그릇 욕심에 불을 지폈다. 아이들의 운동화와 꽃고무신, 비 오는 날 신는 장화 등은 눈길에 밟혀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제주근대화의 첨단에 위치한 동문시장은 새로운 신식 물건을 선보이는 곳으로 제주도내 모든 여성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선망의 공간이었다.

지금 우리 삶의 형태가 바뀜에 따라 장보기의 형태도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시장에서 장보기를 했으나 지금은 가족이 함께 자동차를 타고 마트로 간다. 카트에 아이를 태우고 남편과 함께 의논하며 물건을 고르고 산다. 또한 지갑에 돈 한 푼 없이도 카드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시대, 내가 오늘 얼마를 썼는지 영수증이 그날로 국세청에 입력이 되는 시대이다.

이런 저런 여건들이 동문시장으로부터 소비자의 발길이 멀어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동문시장 상인들은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려는 변신의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 김순이 문화재청 문화재감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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