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9)어울림과 알뜰함의 극치 - 몸국

한국 사람의 밥상에서 밥과 함께 궁합을 맞추는 음식이 국이다. 그 가운데 일부는 국이라고도 하고 “탕” 또는 “탕국”이라고 이름붙이는 국도 있다. 그러나 탕이라 부르는 국의 특징을 보면 그것은 육류가 주재료가 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특히 뼈를 장시간 고아내는 조리법을 쓰는 경우를 일컬어 탕이라 부른다. 영양학적으로는 뼈속의 콜로이드성분을 우려내어 약간 걸죽하고 진한 느낌의 국물로 섭취하는 것인데 예컨대 갈비탕, 곰탕, 설렁탕, 추어탕, 매운탕, 도가니탕, 우족탕 등이 모두 그렇고 그 밖의 된장국, 콩나물국, 미역국, 재첩국, 나물국 등이 탕이라 부르지 않는 예이다.

그렇게 본다면 제주의 국은 탕이라 부를 수 있는 국이 극히 드문 독특함을 보인다. 대부분의 국이 생선이나 채소를 이용하여 된장이나 청장을 이용하면서 단시간에 끓여내는 것으로 장시간 가열하는 국을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적인 한국음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다른 제주만의 독특한 특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 속에서도 오히려 탕이라 부를 만한 국이 있다면 그 나름의 의미가 깊지 않을까?

  유난히 가지 수가 많고 다양한 제주의 국 중에서 유독 ‘탕’에 가까운 국을 찾는다면 제주사람들은 ‘몸국’과 ‘고사리 육개장’을 꼽을 것이다. 고사리육개장은 그 이름에서 고사리를 많이 이용하는 국임을 짐작할 수 있겠으나 국은 처음 듣는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음식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독특한 이름부터 별스러운데 국물을 우려내는 과정을 보면 소의 여러 부위를 넣고 끓여낸 설렁탕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몸국은 그 재료가 돼지라는 것이 다르며 제주사람들이 ‘몸’이라 부르는 해초인 ‘모자반’을 활용하는 점이 매우 독특한 조리법이라 할 수 있겠다.

▲ 몸국 요즘 전문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몸국속의 모자반은 타지에서 들여온 매우 부드러운 모자반이라 씹히는 느낌이 덜하다. ⓒ양용진

  또한 몸국이 제주의 국 가운데 특별한 국으로 분류되는 또 다른 이유는 모든 국이 일반적인 식사에 다양하게 활용된 반면 몸국은 특별할 때에만 만들어 먹은 국이기 때문이다. 잔치나 초상을 치르는 등 많은 손님을 치르는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에 한하여 특별히 만들어 먹었는데 이 특별한 국은 귀하디귀한 돼지고기를 남김없이 이용하는 알뜰 조리의 본보기이며 적은 량이나마 온 마을 사람들이 나눠먹고자 애쓴 어울림과 나눔의 노력이 만들어낸 음식이며 그리고 이 국의 주재료가 돼지고기이기 때문에 평소 접하지 못했던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할 수 있는 고마운 음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제주도의 모든 가정에서 결혼 등의 잔치를 치르거나, 초상을 치르는 등 큰일을 치를 때는 항상 온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동참하는데 모든 큰일의 진행은 돼지를 잡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혼례식의 예를 보면 최소한 3일 동안 잔치가 벌어지는데 첫날을 “돗 잡는 날”이라 하여 돼지를 추렴하면서 마을사람들에게 잔치가 시작됨을 알리게 되는데 마을마다 어르신 중에 고기를 장만하고 분배하는 역할을 맡는 도감 어르신과 동네 총각들이 돼지를 잡아 마당 한켠에서 가마솥을 걸어놓고 부위별로 고기를 삶아 내는 것이다. 내장 등 부산물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삶다가 먼저 익는 살코기를 건져내고, 족발, 머릿고기 등은 충분히 삶아 건져내고 또 다른 뼈에 붙은 살코기를 발라내고 뼈는 다시 육수를 우려내기위해 가마솥에 집어넣고 내장 등 부산물을 삶아내는데 특히 일명 미역귀라고 부르는 장간막은 삶은 후 잘게 썰어 다시 육수에 집어넣고 또 다른 먹을거리인 제주 전통 수애(순대)까지 삶아내고 나면 비로소 고기국물다운 고기국물이 된다.

  그렇게 돼지를 부위별로 삶아내고 순대까지 모두 삶아낸 후 하루가 지나면 국물이 진국이 되는 데 이 국물에는 옆구리 터진 순대 자투리와 뼈에 붙어있다 떨어져 나온 고기조각, 장간막 등 내장의 일부 등 약간의 건더기가 잔재하게 되는데 여기에 겨울에 채취해서 말려놓은 모자반을 물에 불려 토막토막 썰어 넣고 푹 끓여내면서 메밀로 묽은 반죽을 만들어 물조베기(묽은 수제비)를 풀어 넣으면 몸국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간은 청장으로 맞추지만 일반적으로 몸국에는 신 김치를 잘게 썰어 넣는 것으로 간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제대로 된 몸국은 잔치 이틀째인 “가문 잔치 날”에 비로소 맛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몸국이 완성되면 비로소 손님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 손님이란 멀리서 찾아온 지인들은 물론이고 온 마을 사람들이 포함되는데 사실 마을사람들은 손님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모두 자기 일처럼 일손을 거들고 인정도 나누면서 잔치가 끝날 때까지 매끼 식사를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 몸국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대로 끓인 몸국에는 장간막이나 창도름 등 부산물도 보이며 신김치로 간을 맞추어 느끼함이 없다. ⓒ양용진

  결국 몸국은 이러한 격 없이 어우러지는 어울림과 알뜰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음식인 것이다. 국물 한 방울이라도 버리는 일 없이 온 동네사람들이 모두 고기 맛을 볼 수 있도록 진하게 우려내고 제주바다 거친 갯바위 어디에서나 누구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해초를 이용하여 느끼한 맛을 담백하게 변화를 주고 그 량을 넉넉히 불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한편 몸국의 주재료인 모자반은 제주의 겨울 바다에서 흔하디흔한 해초인데 제주에서는 톳과 함께 가장 많이 식용으로 이용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역 다시마 등 해초를 식용으로 활발하게 이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라는 사실이다. 처음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서양 사람들은 해초를 먹는 것을 상당히 희한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김이나 미역 등을 쉽게 먹으려 들지 않는다. 그네들의 고정관념에는 해초는 물고기의 먹이로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양학 적으로 해초는 알긴산과 섬유질 덩어리로 성인병 등 생활 습관 병에 탁월한 예방효과가 있는 건강 보조 식품으로 특히 소화기계통에 이로우며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모자반은 주로 여린 것을 식용으로 많이 이용하는데 때에 따라서는 여린 모자반은 평소에 나물처럼 무침을 만들어 먹고 국을 끓일 때는 비교적 나중에 채취한 억센 모자반을 주로 사용했는데 약간 질긴듯 하면서도  쫄깃거리며 톡톡 터지는 듯 씹히는 느낌이 매우 독특한 음식이다. 그런데 요즘 몸국 전문점을 찾아 맛을 보면 십중팔구 제주산이 아닌 동, 남해안의 모자반을 이용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제주산의 경우 오래전부터 일본으로 수출이 되면서 물량이 달리다보니 지속적으로 구입하는 것이 가격부담이 크고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는 잘 먹지 않아서 제주와는 달리 저렴하게 구입 할 수 있는 경남지역의 모자반이 많이 반입되고 있는 것이다. 영남지방에서는 모자반을 ‘몰’이라 부르며 새콤달콤하게 초무침을 해서 먹는데 다른 방법으로 조리하는 예가 없고 제주 근해의 바닷가 갯바위에서 억센 파도 속에서 자라는 모자반과 달리 동해안과 남해안의 갯바위에서 비교적 부드러운 해류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다자란 모자반도 매우 부드럽다.

그래서 예전처럼 약간 억센 제주산 모자반으로 만든 몸국을 맛보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거기다가 대부분의 몸국 전문점들이 모자반을 예전처럼 듬뿍 넣어주는 곳이 매우 드물어 더더욱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차라리 가격을 조금 올리더라도 예전 시골 잔칫집에서 몸 반 국물 반이었던, 그래서 밥을 말면 국물이 금새 졸아서 밥과 모자반을 입안 가득 물고 오돌오돌 씹어 먹던 그 느낌을 다시 살려낼 만큼 모자반을 넉넉하게 담아주었으면 좋겠다.  

▲ 몸무침 모자반은 몸국 이외에도 무침으로도 많이 이용했는데 젓국에 무치거나 신김치를 씻어 같이 무쳐먹기도 하였다. ⓒ양용진

  몸국의 주재료인 돼지고기와 모자반의 음식재료로서의 궁합을 따져본다면 돼지고기는 약산성인데 반해 모자반은 알칼리 식품이기 때문에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서 사람들이 가장 맛있게 느끼는 중성의 맛을 낼 수 있고 영양흡수가 용이해진다는 이점을 갖게 된다. 특히 모자반은 자체의 열량이 매우 적고 섬유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체내에서 내장지방을 일부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어 지방함량이 비교적 높은 국물인 돼지육수와 곁들이면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지방 섭취에 대한 고민을 덜어 줄 수 있는 현명한 음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환상의 궁합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지방에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해 전 서울과 울산 등지에서 몸국을 만들어 시식회를 했었는데 돼지고기 자체의 누린내 때문에 육수를 내면 국물도 냄새가 나며 기름이 많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신 김치로 간을 맞추지 않은 상태로 시식했을 때는 모자반의 거친 듯한 시각적인 느낌과 국 그릇 가장자리로 조금씩 보이는 기름기에 질겁을 하며 수저를 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제주 향토음식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렇게 화려하고 먹음직스러운 느낌이 없고 거칠고 투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 김치와 고춧가루로 간을 맞춰주니 독특하고 맛있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몸국은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오롯이 드러내지 않고 투박하고 거친 모습으로 감춰져있기 때문에 인기를 얻을 수 없었으리라는 결론에 접근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제주다운 제주사람들만의 특권과 같은 음식으로 존재해 온 것이 아닐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주의 바다와 육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몸국은 다른 음식과 달리 사철 동일한 맛을 낼 수 있어 오히려 산업화하기 수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식당들이 어설프게 선을 보이면서 오히려 그 가치를 잠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는 점이 없지 않다. 제주의 몸으로, 제주 도새기로, 제주 몸밀로 만들어지는 푸짐한 몸국 한 그릇은 타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제주만의 표현인 ‘배지근하다!’라는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전통음식이 분명할 것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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