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경제칼럼]출구전략과 시대정신
[김국주 경제칼럼]출구전략과 시대정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수가 항상 옳지는 않아
73842_80658_2853.jpg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제주의소리
회복 단계에 들어선 세계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출구전략의 시행시기, 즉 각 나라가 정부지원을 언제 거두어 들이는가에 관한 것이다. 일년 전 이맘때의 대공황 재발에 대한 공포를 상기해 보면 이 정도의 안정을 되찾은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시장기능이 정지되고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이 꽁꽁 얼어붙었던 긴박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금리인하와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두 가지 수단을 구사해 ‘대란’을 막았다. 양적 완화란 중앙은행이 국채를 포함한 채권들을 마구 사들이는, 이를테면 통화증발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재정정책, 즉 민간이 돈을 풀지 않으므로 나라가 빚을 내어 돈을 쓰는 수법을 과감하게 실시했던 것이다.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세계 주요국들의 민간 소비지출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초저금리 환경은 정부의 적자 재정운영을 크게 뒷받침해주었다. 은행들이 연 1%의 싼 금리로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려 높은 이자의 국채(예; 3.8%짜리 미 재무성증권)를 대거 사들였는가 하면 영국의 경우는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중앙은행이 직접 사주기도 했다. 정부가 ‘북치고 장구치고’ 한 셈이다.

다수가 항상 옳지는 않아

이 마당에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금리인상 그 자체를 넘어 정부의 적자재정의 밑받침이 사라진다는 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치적인 부담은 가중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출구전략의 조기시행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는 1911년 이래 중요한 정책을 주민투표로 결정하여 왔다. 서부개척이 한창일 당시 그곳의 정치는 “공화당도 민주당도 없고 오직 남태평양철도(South-Pacific Railway)만 있다”고 할 정도였다. 정치가와 의회민주주의를 불신했기에 직접민주주의 방식에 기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근에도 의회보다 주민투표를 통해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재정은 현재 파산 직전이다. 주민들이 학교나 병원의 공공 서비스는 높은 수준의 질을 요구하면서도 이에 필요한 세금 증액에는 번번히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주민투표의 출발은 길거리 서명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가 따로 없다. 양자택일을 하라면 나중은 어떻게 되더라도 우선 가까운 이득을 취하게 된다. 또한 의안 설명서는 대개 그 분량이 수백 쪽에 이른다.

각자 생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직접민주주의의 한계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멀게는 아테네가 소크라테스의 사형을 결정했던 재판정의 배심원 수가 오백 명이었다. 가까이는 영국의 저명한 인터넷 포털이 “이란 핵시설을 지금 폭격해야 하는가”에 대한 온라인 포럼을 진행하면서 독자들의 찬성과 반대를 실시간으로 집계하여 발표하고 있다.

전문가의 시대가 대중의 시대로 대체되어 가는 현상 그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전문가의 부재 또는 정치의 무능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또한 시대의 정신이 무엇인가도 중요하다. 새 천년에 들어서서 인류 발전에 대한 믿음을 흔드는 사건들이 이어졌기 때문인가, 인류의 장래를 밝게 보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가 나뉘어 지고 있는 감이 든다.

일찍이 19세기 헝가리의 문호 마닥 임르(Madach Imre)의 서사시 ‘인류의 비극’에 나오는 주인공 아담은 자기의 후손인 인류에 대한 절망으로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후자에 속했다. 한편 ‘이상(理想)을 잃지 않고 성인이 되는 길’의 저자 수잔 나이먼(Susan Neiman)은 전자에 속할 것이다. 지금은 이 두 가지 유형의 정신이 혼재하고 있는 시대인 것 같다.

발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더 높은 기대치에 부합하려고 노력하는 국민에게 발전의 기회는 더 많이 주어질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많은 나라들의 경우 출구전략의 조기 시행은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이들과 시기를 맞출 필요는 없다. 중국도 최근에 은행의 지불준비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기 시작하고 있다.

인류의 내일을 밝게 보는가?

각국의 출구전략 시행속도에 따라 당분간 환율 및 교역조건의 파장이 불가피하겠지만 이것은 단기간에 그칠 것이다. 출구전략의 목적은 새로운 거품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데 있다. 닷컴 거품, 집값 거품에 이어 차기의 가장 두려운 거품후보는 재정적자의 거품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G-20 국가 중 형편이 나은 편에 속하지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2
돌섬 2010-01-22 10:36:56
맞는 말씀입니다. "사람중심 진짜경제". 그러나 말처럼 쉬운 과제는 아니겠지요.
의견과 지혜를 모아야지요. 그래서 "통합과 소통, 그리고 설득의 리더십"이 어느때보다 더 요구되는 시대인가 봅니다.
113.***.***.118

로드 2010-01-18 15:56:40
하지만,재정으로 일으킨 경제의 과실이 서민에게 오는 것인가?
항상 이것이 문제입니다.4대강 사업에서 누가 이익을 취합니까?
건설족이나 지방토호족 그리고 투기꾼들이 다 가져가고,청년들은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민생은 항상 뒷전이고...
1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