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도민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민주주의

   2009년과 2010년 한국과 제주를 가로지르는 최대 쟁점 동네는 세종시와 강정마을이다. 물론 세종시와 강정마을은 너무나 다르다. 하나는 어엿한 특별시이고, 다른 하나는 서귀포시 대천동의 한 작은 어촌 마을이다. 세종시는 대통령과 총리를 포함하여 이명박 정부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대표적 사안이다. 반면 강정마을은 김태환 지사가 국방부를 대신하여 총대를 메고 밀어붙이고 있는 제주 지역 최대의 현안이다. 세종시는 노무현 정부의 지방균형발전 기획을 무너뜨리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국제과학기업도시로 전면 바꾸어 나가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반해 강정마을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해 온 해군기지 건설을 이름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바꾸었을 뿐 그 내용은 최첨단 군사기지 그대로 추진되고 있다.

  세종시와 강정마을은 지역 주민의 반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반발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정부의 세종시 추진을 반대하는 충청 지역 주민들은 이른바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원안을 원하는 데 반해, 강정마을 주민들은 생태계 보고 가운데 하나인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차이가 있다. 특히 이 두 지역 주민의 반발을 무마시키려는 정부의 발걸음은 천양지차이다. 세종시에서 행정을 빼고 기업 유치로 나선 이정부의 무마책은 기업특례시로 손색이 없을 만큼 전형적인 비즈니스 프랜들리 기조를 담고 있다.

  충청 출신의 정운찬 총리가 취임 후 7번이나 충청 지역에 가서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충청 주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기업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세종시 추진과정에서 3.3평방미터당 60만원을 보상하여 수용한 땅을 아파트 택지 구입 건설사에게는 200-300만원에 팔다가 2010년 수정안에는 유치 대기업에게 36-40만원에 불하하는 것만큼 기업특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다. 그런데도 세종시 원안을 고집하면 ‘거덜난다’고 협박하는 정 총리의 발언은 서울대총장 경력을 내팽개치고 세종시 수정안에 목숨을 건 권력추구자로 전락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에 반해 강정마을 주민을 달래려는 제주도정의 움직임은 너무나 전시적이다. 소통을 통해 ‘도민대통합의 시대’를 열겠다고 외치는 구호에 비해 2009년 1월 18일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데에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는 것이 제주도정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선처를 요청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면 그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이 점에 관한 한 해군본부나 국방부에게는 아예 그 어떤 기대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정마을 주민은 다른 나라의 국민이다.

  정부가 세종시를 국제과학기업도시로 전환하기 위해서 애초에 행정중심복합도시에 책정된 8.5조원 규모의 투자에 다시 8조원을 추가하는 성의에 비교해 보면, 강정마을의 민군복합형 해군기지에 얼마나 추가 재원을 더 책정하고 있는지의 소식을 아직은 듣지 못하고 있다. 1조원 규모의 투자면 충분하다는 데서 한발작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은, 세종시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 친이계와 친박계의 대립은 물론이고 여-야간의 대치와 같은 중앙정치권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국적이고 중앙정치적 차원의 쟁점인 세종시와 제주 지방정치의 쟁점으로 치부된 강정마을은 지역 주민의 인구 차이만큼이나 관심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세종시와 강정마을의 닮은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명박 정부와 김태환 제주도정 모두 변칙행정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종시를 국제과학기업도시로 전환하여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회 동의를 거치는 민주적 절차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세종시 과학비즈니스벨트법이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는 2009년 1월 14일 삼성, 한화, 웅진, 카이스트, 고려대 등과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앞세워 토지공급과 개발계획을 담은 양해각서를 맺었다. 양해각서 내용에는 기업과 대학에 원형지 형태로 땅을 공급하고 세금 감면 등 경제자유구역 수준의 파격적인 인센티브 지원책이 들어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처럼 세종시가 국가백년대계가 되어야 하고 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미래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중대한 사업이라면, 더 더욱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법과 절차를 지켜가면서 그 타당성과 실효성을 곰곰이 따져보아야 하지 않는가의 민주주의적 입장의 고언은 그만큼 중요할 것이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추진과정에서 제주도정이 얼마나 일탈과 편법을 일삼았나 하는 것은 2009년 여름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투표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두려움의 정치’를 구사함으로써 주민소환운동을 넘어선 김태환 제주도정은 2009년 12월 제주도의회가 편법으로 해군기지 관련 절대보전지역 변경안과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에 대한 동의해 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해군기지 추진을 밀고 나가고 있다. 2009년 2월 5일 기공식에 이명박 대통령을 초청까지 하면서 해군기지 추진에서 일등공신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나 강정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법정 소송을 통해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절차적 하자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그래서 해군 측에 2월 5일 예정된 기공식을 해군기지 건설 관련 행정소송 판결이 나온 뒤에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외로운 투쟁을 어떻게든 보듬어 안아야 하기에는 제주도 내 리더십의 역량이 크지 않다. 세종시처럼 박근혜도, 이회창도, 정세균도 없다. 국회의원도 보이지 않고, 제주 지역 원로 가운데 누구 한 사람 나서는 사람이 없다.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만으로는 힘에 겨워 보인다. 그래서인지 해군과 제주도정의 발걸음은 막무가내로 2009년 1월 18일 해군기지 반대농성을 하는 50여명을 연행하는 데 거침이 없다. 해군과 제주도정은 자신들의 불법과 편법은 마냥 무시한 채 힘없는 주민들에게만 생뚱맞게 공무방해죄를 뒤집어씌우고 있을 뿐이다.

  세종시에서 연기군으로 내려가면 강정마을과 그렇게 닮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연기군이나 강정마을 모두 이른바 국책사업으로 인해 지역공동체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지역 모두 세종시와 해군기지로 인해 노무현 정부 때부터 8년에 걸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세종시에서는 2번에 걸친 위헌시비가 있었고 제주 해군기지에서도 2번에 걸친 후보지 교체가 있었다. 연기군 주민들에 대한 토지보상 과정에서 1,005세대의 소작농은 1억 미만의 보상을 받은 것 이외의 삶의 대안이 없어 고통이 심하다는 하소연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인가 연기군 대책위는 지금까지 5번이나 그 성격을 바꿔가면서 대책위를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연기군 주민들 대부분은 자격증 없는 세종시 박사가 되었다는데, 강정마을 주민들도 해군기지 박사이자 민주주의 박사이며 평화 박사가 되고도 남을 터이다.

  2009년 1월 18일 사회통합위원회 회의에서 김우창 위원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국토의 이상적 존재방식에 대한 비전이 건설과 부동산의 이해관계에 의해 차단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귀가 번쩍 뜨이게 하는 말이다. 이를 제주 해군기지에 적용하면, ‘안보의 적정성과 평화의 섬에 대한 비전이 건설과 부동산의 이해관계에 의해 차단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종시 문제로 한나라당 내 친이와 친박 간의 견해 차이가 있는 것과는 달리 해군기지 문제로 한나라당 제주도당 내에서 어떤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만큼 한나라당 제주도당에는 평화의 섬의 비전에 대한 전향적 의견 제시를 할 만큼의 인물이 없는 것인가. 그냥 이명박 정부에게 잘 보이고 또 김태환 제주도정과 사이를 좋게 해 두면, 그로써 공천 받고 당선되는 것으로만 아는 도의원 지망생으로 가득찬 것일까.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문자 그대로만 보면 지당한 얘기를 하였다. "국민들을 바보 취급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야단을 쳐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문제는 누가 국민들을 바보 취급하는 정치인일까? 국제과학기업도시로서의 세종시를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바로 정치논리로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는 정대표의 현실 규정은 맞는 것일까? 동의하기 어렵다. 세종시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서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정치인이 한 둘이 아니거늘, 어찌 세종시 문제만이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는지의 잣대가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시를 둘러싼 찬반 논쟁에서 국민들에게 무언가를 주문하고 또 ‘깨어있는 국민’이 바로 해법임을 일깨워 주는 정대표의 언명은 되새길 만한 고언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서민과 민생이 정치적 구호로만 머물 때가 많음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2010년 지방선거가 4달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강정마을 주민의 권리와 의사가 소수라는 이유로 덧없이 내팽개치는 현장을 그냥 지켜보아야 하는 도민들로서는 참담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참담함이 냉소나 무기력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데에 ‘깨어있는 시민’의 역할이 존재할 것이다. 도민들이 나서서 깨어있음을 조직화된 표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줄 때, 비로소 그 수가 적고 정치적 발언권이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강정마을 주민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해 주는 따뜻한 리더십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세종시에 비해 절대 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소수 강정마을 주민들의 아픔이 곧 제주도 전체가 갖는 자연적-정신적 가치를 대변하고자 하는 것임을 인식하는 ‘깨어있는 도민’이 그립다. 정부나 도정에 기대지 말고 ‘약자인 도민이 힘을 모아 약자인 도민 스스로가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민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민주주의’를 발진시켜 나갈 수밖에 없음을 새삼 인식하도록 하고 있는 게 2010년 1월의 대한민국 제주도이다. / 양길현 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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