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바위 위에 펼쳐진 '소금 보석'
너른 바위 위에 펼쳐진 '소금 보석'
  • 김순이 (-)
  • 승인 2010.01.22 09: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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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성 문화유적100] (4)소금에는 바다가 들어 있다 - 용담2동 어영소곰빌레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한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어영소금빌레 ⓒ김순이

소금은 음식의 맛을 살려주는 조미료의 역할을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주성분인 염화나트륨은 우리 몸에서 혈압과 혈액을 정상적으로 유지시켜주고 건강한 세포막을 형성시키며 신경물질을 원활하게 연결시켜 준다. 저 히말라야 티베트의 소금 우물에서도 제주도의 바닷가에서도 이렇듯 생존과 건강에 필수불가결한 소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지혜를 총동원 해왔다.

“티베트에서는 시간이 말과 야크가 걷는 속도로 흘러간다.”로 시작되는『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이용한, 2007)이라는 책에는 소금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티베트의 옌징(鹽井)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티베트는 히말라야산맥이 솟아 있는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원에 위치해 있다. 약 1억 년 전 해저였던 지금의 티베트 땅은 두개의 대륙이 부딪치면서 융기했고, 옌징의 소금우물이야말로 그 증거인 셈이다.

옌징 사람들은 소금우물에서 바닷물을 퍼내어 소금을 만들어온 지가 이미 수천 년이란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옌징의 원시적인 소금생산 방식이 제주도의 바닷가 암반에서 이뤄지는 소금생산 방식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용담동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바다 쪽으로 눈에 띄게 너르닥한 암반지대가 나온다. 그곳이 바로 어영마을 사람들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던 소곰빌레이다.

‘빌레’란 너럭바위를 일컫는 제주방언이다. 이 소곰빌레를 마을사람들은 구획을 나누어 사용했다. ‘판이’란 한 구역을 뜻하는 제주방언으로 어영소곰빌레에는 10개의 판이가 있었고, 보통 한 집 또는 두 집이 한 판이를 함께 사용했다. 판이와 판이의 경계는 진흙을 사용해서 두툼한 담을 손바닥 높이만큼 쌓았다.

판이가 완성되면 바닷물을 길어다 붓고 햇볕과 바람에 수분을 증발시킨다. 그래서 겨울에는 하지 않았다. 봄이 되어서도 춘분이 지나서 낮의 길이가 충분히 길어지는 때부터 시작하여 가을추석이면 끝이 났다.

바닷물은 물기가 증발하면 염분이 높아져 짜게 된다. 이런 물을 ‘곤물(鹽水, '곤'의 'ㅗ'는 아래아 표기(편집자주))’이라 했다. 계란이 동동 뜰 만큼 짜게 된 곤물을 나무바가지로 긁어서 허벅에 모아 곤물을 모아두는 곤물통에 저장했다. 곤물통이 차면 날을 잡아 무쇠솥에 넣어 졸였다. 졸이는 과정에서 위에 뜨는 회색빛 거품은 걷어두었
다가 배추를 절일 때 사용했다. 이런 제조방식은 애월읍 구엄리 소곰빌레에서도 행하여졌다.

어떤 사람에게는 바다가 휴식의 공간일 수 있다. 그러나 제주여성들에게 바다는 노동의 공간이요, 또 다른 형태의 밭이었다. 소금에는 바다가 들어 있다. 태양과 바람이 들어 있다. 어영소곰빌레에는 바닷물을 퍼 올리던 우리 할머니들의 땀과 눈물이 짙게 배어 있다. / 김순이 문화재청 문화재담당관

*찾아가는 길 : 제주시 해안도로→용담동 어영마을 바다 쪽 암반

지식정보 <제주의 소금 생산>

제주의 옛 기록에는 소금이 매우 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이유는 화산섬이어서 소금밭을 만들 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소금을 만드는 데 불리한 조건의 하나인 해안의 용천수는 염분 농도를 떨어뜨려 소금을 만드는 데 적합지 않았다.

제주에는 해안가마을을 중심으로 소금밭들이 있었다. 제주도 소금밭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소금의 제조와 생산이 이루어졌다.

제주사람들은 모래 소금밭을 ‘몰래 소곰밧’, 또는‘모살왓’이라고 부르며, 돌 소금밭을 ‘소곰빌레’라고 불렀다. 제주에는 적당한 넓은 해안이 없기 때문에, 소규모의 모래밭에서 혹은 널따랗게 형성된 용암바위지대를 이용해서 소금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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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 2010-01-22 23:23:44
기사는 너무나 볼품이 없군요. 엄청 기대하고 읽었는데, 구체적인 사실들은 모두 생략하고 감상문만 적고 있네요. 원래 나온 책도 그렇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더 길게 적어 주세요. 언제부터 이 소금빌레에서 소금이 생산되었습니까? 언제까지 생산되었습니까? 지금도 염전의 인부들은 대부분 남성인데, 어째 이게 여성의 문화유적입니까? 조선시대에는 소금에 게금을 매겼다는데, 제주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궁금한 게 너무나 많은데, 이놈의 기사는 아무 것도 가르쳐주는 게 없군요.
114.***.***.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