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지방균형과 제주도 산남북 균형

                            
            I. 지방균형

 여전하다. 변화가 없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오히려 그 때문에 제주시로의 인구 쏠림은 계속되고 있다. 서귀포시 인구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줄고 있다. 제주시로의 인구집중 문제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라는 듯, 지난 4년 동안의 인구변화 추이에 대한 통계가 별 주목을 받지 않고 그냥 보도 기사로 처리되고 있다. 제주시로의 인구 쏠림 이면에는 교육, 의료, 문화 등과 같은 삶의 기반 차이가 산남북간에 자리하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터이다. 더욱이 제주시로의 인구집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난한 과제일 뿐만 아니라 긴 시간을 요하는 장기적 문제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강구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냥 관성처럼 지나치는 측면이 있다. 

  2009년 12월 현재 노형동 인구는 50,223명, 이도2동이 41,984명, 그리고 연동은 40,535명이다. 이 세 지역의 인구가 제주시 전체 인구의 근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제주도 전체의 인구 증가가 그 내용을 보면 구제주시, 이 가운데서도 노형-연동으로의 인구 쏠림에 다름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평소 구제주시로의 인구 쏠림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었지만, 2009년 12월 기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인구변화 추이를 통계로 다시 한 번 직접 확인하게 되면서, 무언가 대책을 강구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시종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경제에만 해당하지 않고 인구 변화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인 만큼이나,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해법 찾기와 대안 제시가 뒤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균형이란 본시 자연적 흐름을 거슬리려는 인간의 창조적인 가치 추구의 프로젝트이다. 여기서 자연적 흐름이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미국은 선견지명을 갖고 전국 차원에서 행정수도 워싱턴과 경제수도 뉴욕의 분리를 포함하여 각 주에도 행정주도와 경제거점을 분리해 놓음으로써 지방균형의 묘미를 잘 살려나가고 있다. 그냥 놔두면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은 자연적인 경향성을 띠기 때문에, 정부는 이러한 부익부 빈익빈을 끊임없이 조정해 나가기 위해 의식적인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노무현 정부의 지방균형 추구는 성장제일주의의 기치 하에 중앙집중적 효율성으로만 지내온 지난 40년의 수도권 편향성을 조금이나마 조정해 나가려는 정부 차원의 시도인 것으로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다만 노무현 정부의 지방균형은 수도권으로부터 지방으로의 인적-물적-제도적 이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내용적으로 수도권의 반발을 불어올 수밖에 없는 한계를 내재하고 있었다. 이는 향후 지방균형은 수도권의 것을 지방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서 새로이 활기찬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과정이어야 할 것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러한 창조적 과정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요청되는 사안이다.

  지방균형과 지방분권을 추진하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특히 집중을 통해 효율을 추구하고자 하는 측에서는 많은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국민이 민주적으로 뽑은 정부가 지방균형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데에 마냥 반대하기만 하기는 쉽지 않았다. 세종시특별법은 그러한 찬반의 정치적 타협으로 나온 것이었다. 기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제논리도 일면 타당한 것이기에, 지방균형은 항상 효율성 문제와 타협을 하면서 추진해 나가야 할 사안일 것이다. 그러나 2010년 현재 논쟁 중인 세종시 문제는 이와 같은 균형과 선택-집중이라는 두 방식을 절충하려고 하기보다는 수도권 지역의 기득권 지키기와 이를 이용하는 정치권의 계산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는 지방균형이 머리 수 싸움으로 변질되는 ‘욕망의 정치’의 작동으로 인해 지속가능을 담보하기가 어렵게 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는 인구수에 따라 지역별로 국회의원을 뽑는 단원제 국회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도합 약 2천만이 거주하는 서울-경기 지역의 집단이기주의를 순치하기가 쉽지 않다. 탱크를 동원해서라도 수도이전을 막겠다고 언명한 바 있던 서울시장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더더욱 지방균형은 전국적 수준의 목표 가치가 아니라 수도권 지역의 욕망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지역이기주의로 둔갑해 버렸다. 여기에는 서울-경기 지역 단체장들의 재선과 차기 대권을 향한 고려도 한 몫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김문수 경기도지사 모두 한편으로는 2천만 수도권의 지역이기주의를 매개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도권의 보수적 주류언론의 지원을 받으면서, 세계적 수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세계화의 효율성 추구로 지방균형을 대체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향후 지방균형의 진전은 미국처럼 양원제 도입을 통해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의 상원처럼, 인구 1천만의 서울이나 경기든, 인구 56만의 제주든, 16개 광역자치단체에게 골고루 6명씩 상원을 배분하는 것이다. 이렇게 96명으로 구성된 상원에서는 각 지방자치단체별 의견과 이익들이 보다 더 균형이 되게 다루어지게 되지 않겠는가. 물론 현재의 단원제 국회에서 패권을 누리고 있는 수도권과 영남권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지방균형 성격의 상원 도입을 선뜻 응하리라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역별로 동등하게 할당되고 참여하는 방식의 상원 도입은 앞으로 남북한 통일 내지는 국가연합 단계로 가게 될 때에야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으로만 남아 있다.

  어떻든 지금처럼 인구수에 비례하여 단원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는 지방균형은 수도권의 반발로 인해 무망하다는 것을, 최근의 세종시 논쟁은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점에서 원칙을 강조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세종시 원안+알파를 주창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행보는 차기 대권주자에 어울려 보인다. 어쩌면 지방균형은 이렇게 노무현의 비전과 박근혜의 원칙을 통해서 반걸음이나마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무현이나 박근혜의 발걸음 이면에는 대권 쟁취에서의 유리함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겠지만, 그럼으로써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이들의 행보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II. 산남북 균형

  다시 제주로 눈을 돌려보자. 2009년 12월 말 기준으로 제주도 인구는 562,663명이다. 이 가운데 제주시 인구는 414,116명(72.9%)이고, 서귀포시 인구는 152,285명(27.1%)이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인구 변화 추계를 보면, 제주시는 연평균 0.7%씩(약 3,000명 전후) 증가하는 데 비해 서귀포시는 0.1%씩(약 150명 전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두 개의 행정시로 구성된 제주도는 조만간 인구 80%의 제주시와 20%의 서귀포시로 점점 더 비대칭화 하여 갈 것이다. 비대칭화가 갈수록 어떻게 인구를 빨아들이는가는,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서울과 제주도의 구제주시가 이미 입증해 준 바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반짝 산남북 균형이 제기된 바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들 손 놓고 있는 형국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세종시 문제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제주도도 서귀포시 가운데 구서귀포시가 아닌 남제주군 어느 지역에 행정중심복합도시 형태의 대대적인 제주도청 이전을 고려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를 국제과학기업도시로 바꾸고자 하는 것을 보면서, 행정을 일부라도 옮긴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제주시로의 인구 쏠림을 완화시키고 서귀포시도 조금이나마 자족도시로의 위상을 갖추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제주대학교를 옮기면 어떤가 하고 얘기를 했다간, 동료들로부터 혼날 것이고. 혹 제주대 구성원들이 찬성한다고 해도 이미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 현 제주대 부지를 다른 곳에 만들어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을 누가 대줄 것인가의 현실적 문제도 적지 않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방균형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의 하방이 아니라 지방에서의 창의적 도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에서 보듯이, 결국 제주도 산남북 균형을 위해서는 공공의 신규 투자는 예외 없이 산남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산남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그 대표적 사안이다. 마침 2009년 동안 제주공항 국내선 이용객이 1,302만 명으로 김포공항의 1,287만 명을 추월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제주관광의 매력도가 높아갈수록, 제주 신공항의 가능성은 더욱 커 보인다. 그래서 지난 1월 22일 한나라당 제주도당 2010년 국정보고대회에서 정몽준 대표가 “용역결과가 나오면 제주도민들이 원하는 장소에 신공항이 조속히 건설되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기대가 크다. 당대표의 언명이 얼마나 유효한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기대하고 싶다. 제주도 산남에 24시간 운영되는 신국제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산남 지역의 경제활성화와 그로 인한 삶의 기반 확충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그냥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으로만 치부하고 싶지 않다.

  다른 측면에서 서귀포시의 위상 강화와 이를 통한 산남북 균형은 빼앗긴 자치권을 되돌려 받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제주시-서귀포시 2시와 남제주군-북제주군 2군의 자치구조를 없앤 제주특별자치도 행정구조를 다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많은 제주도민들이 공감하고 있는 바이고 또 올 2010년 지방선거에 즈음한 <2010 시민매니페스토 제주본부>의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전문가들은 1순위로 ‘행정시 폐지와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손꼽고 있으며 이어서 ‘제주시 도심집중화 현상 완화와 산남‧산북 균형 발전’을 들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기초단체 부활과 산남북 균형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다만 제도의 변화를 보다 쉽게 추진하다는 측면에서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2행정시에 자치권을 돌려주는 방식을 더 선호하고 싶고, 그리고 서귀포시의 자생적 발전을 보다 창의적으로 추진해 나갈 리더십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자치단체를 없앰으로써 제왕적 도지사로 귀결되고 만 지난 4년의 폐해를 더 이상 인내로 참아내서는 안 된다는 공론화가 절대 요청된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물론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균형발전이 시장을 선거로 뽑기만 하면 해결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치권 회복은 그 하나의 시작이다. 어떻게 자치권한이 없는데 주도적 발전이 가능하겠는가. 도지사가 임명하는 2년짜리 행정시장에게 어떻게 서귀포시의 미래 가능성을 맡길 수 있겠는가. 선출된 서귀포시장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임기 4년 동안 그리고 일 잘하면 8년, 12년 동안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서귀포시의 발전을 위해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일하지 않겠는가. 4년간의 폐단을 경험하고도 이를 시정해 나가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 있겠는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자치권 회복에 올 6월 지방선거 아젠다를 집중시켜 나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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