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미의 제주여행(13)] 우도 도보여행(1)

▲ ⓒ양영태
전포망도(前浦望島)

깨끗한 바다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속에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섬의 정취를 느껴 보기 위해서는 도보여행이 제격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면 평소 접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도섬의 해안도로는 약13㎞로 걸어서 3∼4시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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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에는 우도팔경이 있다.
낮과 밤(주간명월, 야항어범), 하늘과 땅(천진관산,지두청사), 앞과 뒤(전포망대, 후해석벽), 동과 서(동안경굴, 서빈백사)를 우도팔경이라 하여 우도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구좌읍 종달리의 두문포에서 우도를 바라보면 동쪽으로 앝으막하게 우도봉이 솟아 있고 서쪽 기슭을 따라 평평하게 섬의 중앙부가 이어지다 섬의 서쪽 끝은 수평선과 합쳐지면서 바다로 잠기어 버리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우도의 모습은 영락없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다.
전포망도(前浦望島)이다.
성산포항에 가면 새로 지은 선착장에서 우도를 이어주는 도항선이 다닌다.
우도는 구좌읍 종달리에서 동쪽으로 2.8㎞ 떨어진 해상에 위치(성산항에서 3.8㎞)해 있다.
면적이 607㏊(6.07㎢), 섬의 둘레가 17㎞, 섬의 직경은 2.5 ∼ 3.8㎞가 된다.
성산포항에서 도항선을 타면 맨 먼저 도착하는 곳이 동천진동 포구였다.
그런데 이제는 동천진동과 하우목동을 번갈아 다닌다.
성산포항을 출발한 도항선이 하우목동 포구에 닿았다.

▲ 하우목동 포구인 '사우통'.ⓒ양영태

우목동(牛目洞)의 옛 이름은 '우뭇개'이다.
'우뭇가사리(우무, 天草)가 많이 나는 개(浦)'로 풀이하는 설이 있고, 우도의 목동들이 이 곳에 모여 살았다 해서 '牛牧洞'이 '牛目洞'으로 와전된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서빈백사의 하얀모래를 '우도의 눈(雪)'으로 표현한 것이 소의 눈(目)으로 와전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 족은모살냇기.ⓒ양영태

하우목동 포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보면 해빈이 나타난다.
우도의 서쪽 바닷가에 있는 홍조단괴 해빈이 있다.
이 백사장은 두 곳으로 나뉘어졌는데 전체를 '왕모살냇기'라고 부르고, 좁은 곳은 '족은모살냇기', 넓은 백사장을 '큰모살냇기'라고 부른다.

▲ 홍조단괴.ⓒ양영태

홍조단괴(紅藻團塊)는 광합성 작용을 하며 물속에서 서식하는 석회조류 식물중의 하나인 홍조류가 탄산칼슘을 침전시켜 형성된 단괴이다.
우도 홍조단괴 해빈에는 직경 4∼5센티미터의 홍조단괴가 길이 수백미터, 높이 약 15미터 발달해 있는데, 홍조단괴가 해빈의 주구성 퇴적물을 이루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그래서 2004년4월9일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큰모살냇기.ⓒ양영태

눈이 부셔 잘 뜨지를 못할 정도로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이 도는 이 곳이 서빈백사(西濱白沙)이다.

▲ 까마귀 무리 너머로 보이는 소머리오름.ⓒ양영태

백사장의 사각거리는 감촉을 발자국에 남겨 놓으며 길을 재촉하면 하늘을 날아 오르는 까마귀의 무리 너머로 소머리오름이 보인다.
까마귀 무리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서천진동 포구이다.

▲ 서천진동 포구(똥내미구석).ⓒ양영태

우도 안에서 風藻가 가장 많이 밀려드는 후미진 곳이어서, 풍조의 썩는 냄새가 독하여 '똥내미구석'이라 이른다. '내미'는 '냄새'의 제주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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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이기라는 차를 버리고 이렇게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여행을 하면 삶의 모습이나 생활의 현장을 쉽게 볼 수 있다.

▲ 동천진동 탑.ⓒ양영태

서천진동을 지나면 동천진동 포구 가기 전에 탑을 하나 만난다.
이 탑이 언제부터 있었고 그 용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도로 한 쪽에 조용히 나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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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동은 원래 '한나루'였다. 天津洞은 한(큰,大)+나루(津)의 잘못된 한자 표기이다.
즉, '大津'으로 표기해야 하는데 '한나루'를 '하늘 나라', '하늘이'로 잘못 풀이하여 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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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진동 포구는 우도와 성산항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이다.

▲ 우도해녀항일운동 기념비.ⓒ양영태

1932년 한·일 합방에 대항하고 해녀 스스로 권익을 회복하기 위하여 궐기한 우도 해녀들의 고귀한 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천진동포구 광장에 1995년 건립하였다.

▲ 우도 표지석.ⓒ양영태

우도면은 조선조 숙종 23년(1679년) 국유목장이 설치되면서부터 국마 (國馬)를 관리, 사육하기 위해 사람들 왕래가 있었고 헌종 8년(1842)에 입경허가, 헌종 10년(1844)에 김석린 진사 일행이 입도하여 정착하였으며, 1900 경자년에 향교 훈장 오유학선생이 연평으로 명명하였다.
그후 입도한 주민들은 영일동과 비양동, 고수동, 전흘동, 주흥동, 우목동, 천진동 등 8개동으로 분산하여 동네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 섬은 물소가 머리를 내민 모양(우두형)으로 명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또한 이곳을 물에 뜬 두둑이라는 뜻에서 연평리로 정하여 구좌읍에 속해 있었는데 1986년 4월 1일 우도면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
동천진동항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부근의 경치가 제일 아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이를 천진관산(天津觀山)이라 한다.

▲ 등머흘.ⓒ양영태

동천진동항에서 톨까니로 가는 시멘트포장도로가 있고, 해녀탈의장 옆으로 올라서면 둥글고 작은 돌들이 쫙 깔려 있는 해안을 보게 되는데 여기가 바로 '등머흘'이다.
'등'은 사람의 등과 같이 넙적하다는 뜻이고 '머흘' 또는 '머들'은 제주어로 '자갈' 또는 작은 돌을 말한다.

▲ 갈대화석.ⓒ양영태

등머흘에 내려 서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보면 색깔이나 모양이 전혀 다른 돌들을 볼 수 있다.
표면을 자세히 보면 지푸라기들이 묻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이것이 갈대화석이라고 한다.

▲ 고인돌.ⓒ양영태

등머흘에서 벗어나 해안도로를 따라 톨까니로 가다 보면 길 한 가운데 고인돌이 있다.

▲ 광대코지.ⓒ양영태

우도의 지형을 '소가 누어 있는 형국'이라 한다.
이는 섬의 대부분이 평야로 형성되어 있는데 동쪽만이 높은 오름인 '쇠머리오름'이 있어 그렇다.
'쇠머리오름'은 섬 전체를 누운소(臥牛)로 볼 때 소의 머리요, 소의 얼굴로 볼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즉, 소 얼굴의 뼈가 툭 튀어 나온 부분을 '광대뼈'라 해서 '광대코지'로 명명되었다.
'광대코지' 밑에 '코꼬망(콧구멍)'이 있다.
광대코지 밑에는 '톨까니'가 있다. '촐까니'라고도 한다. '촐'은 마소에게 먹이는 '건초'의 제주어이다.
우도에서는 '구시(가마)', '구유'를 '까니'라 불렀다고 한다. 즉, '촐까니'는 소의 여물통이다.
성산읍 오조리에 있는 식산봉을 '촐눌'이라고 보고, 촐눌과 소 사이에 '촐까니(여물통)'가 있는 것이다.
먹돌해안을 이루고 있다
'코꼬망'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물위에 반사되어 암벽 천정에 둥그런 달이 뜬다.
이를 '달이 그려진 안쪽'이라 해서 '달 그린안'이라 한다. 우도8경중의 하나인 주간명월(晝間明月)이다.
11월20일을 전후한 시기의 오전 10시에서 11시경에 가장 아름다운 주간명월을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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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까니를 나와 오름을 오른다.

▲ 망동산.ⓒ양영태

쇠머리오름으로 통하는 도로를 따라 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 옆에는 화구구가 하나 있다.
이를 망동산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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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의 능선에 접어 들면 천진동 너머로 지미봉이 눈에 들어 온다.
맑은 하늘을 황사가 잔뜩 가로 막고 있다.

▲ 쇠머리오름.ⓒ양영태

섬의 정상(섬머리)이다. 해발 132.5미터이고 등대와 삼각점이 있다.
남면과 남동면은 100여미터에 가까운 단애를 이루어 절경을 자아내고, 북사면은 분화구가 넓게 이어져 완만하고 길게 꼬리를 내려 바다에 잠긴다. 그곳이 전흘동 '세비코지'이다.
쇠머리오름은 섬머리에서 시작하여 전흘동 바다끝에서 끝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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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의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는 고무발판으로 만든 산책로가 개설되어 있다.
그러나 정상을 지나 반대쪽 능선으로 내려 가려면 발길을 돌려야 한다.
정상에 있는 전경초소가 길을 막고 서 있기 때문이다.

▲ 담수급수시설 고장시 사용할 물을 저장하고 있는 저수지의 풍경.ⓒ양영태

우도는 섬으로 물이 귀하여 마을마다 연못을 만들고 집마다 저장시설을 갖추었으나 2000년 담수화 시설이 완공되면서 식수난이 해소되었다.

▲ 우도등대.ⓒ양영태

우도 등대는 제주도 최초의 등대이다.
우도 부근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해 1906년에 설치하여 97년간 운영하여 오다 노후로 2003년 11월에 폐지될 때까지 뱃길을 밝혀주던 곳이다.
지금은 원형대로 보존하고 옆에 새로운 등대를 만들었다.

▲ 우도등대박물관.ⓒ양영태

우도등대로 오르는 오름자락에는 우리나라와 세계의 주요등대 모형등을 전시한 등대공원이 있다.

▲ 지두청사(地頭靑莎).ⓒ양영태

우도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하는 것을 일컫는데 우도의 가장 높은 쇠머리오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우도 전체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황홀한 초록빛 물결이 바다에 맞닿아 있음을 본다.

▲ 산책로.ⓒ양영태

우도 등대에서 검멀래해안으로 내려가는 산책로가 만들어 짐에 따라 우도여행의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 검멀래해안.ⓒ양영태

쇠머리오름을 내려서면 검은색의 모래로 이루어진 모래사장을 만난다.
이 곳은 모래사장 뿐만 아니라 높이 20여m, 폭 30여m의 우도봉 기암절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차곡차곡 석편을 쌓아 올린듯 가지런하게 단층을 이루고 있는 석벽이 직각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 풍파에 깍이어서 단층의 사이마다 깊은 주름살이 형성되어 있는 이곳이 후해석벽(後海石壁)이다.

▲ 선돌.ⓒ양영태

우도봉 아래 70미터 정도의 거대한 돌이 돌출되어 있다. 이 돌을 '선돌'이라 한다.

▲ 검은 코꼬망.ⓒ양영태

'검멀래' 모래사장 끄트머리 절벽 아래 소의 콧구멍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수중동굴이 있다.
커 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이 굴은 썰물이 되어서야 입구를 통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우도8경 중 하나인 동안경굴(東岸鯨窟)이라 한다.

▲ 돌담과 밭.ⓒ양영태

우도해안가의 돌담은 거친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고 해풍을 막아 농작물을 자라게 한다.
우도의 동쪽 해안은 해안선을 따라 바람을 막아 주는 돌담이 3m 높이로 길게 만들어져 있다.
동쪽 바다에서 불어 오는 샛바람을 막아주는 이 돌담들에 의지해 겨울에는 주로 마늘을, 여름에는 주로 땅콩을 재배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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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도가 떨어진 밭을 가능한 한 비옥ㅎ게 만드는 방법은 밭을 쉬게하는 것이다.
밭을 쉬게 하는 일을 '쉬돌림'이라 한다.
제주도 농업 환경의 열악함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써 밭을 쉬게 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서건 거의 필수적이었다.
밭을 쉬게 하는 동안 밭 안으로 마소를 몰아넣어 오줌과 똥을 받는다.
이는 땅의 기운을 높여 비옥하게 만들려는 지혜의 소산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 일을 '바령'이라 하고, 그 밭을 '바령팟'이라 한다.
-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고광민 지음 )에서

물론 지금처럼 화학비료가 넘쳐나는 시대의 얘기는 아니다.

※ 양영태님은 '오름오름회' 총무, 'KUSA동우회 오름기행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양영태님의 개인 홈페이지  '오름나들이(ormstory.com) 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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