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칼럼] 특별자치도 추진을 위한 전략적 판단 필요

계층구조 개편 논쟁이 불붙고 있다. 이른 바 제주형 자치모형 선택을 위한 계층구조 개편 읍면동 설명회가 시작된 가운데 시민사회단체의 설명회 중단 요구가 계속 제기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도내 4개 시장·군수 및 시·군의회가 이른 바 ‘혁신안’ 중심의 개편 논의의 중단을 요구하고 나서 파란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제주도는 설명회의 강행은 물론 오는 8일 계층구조 개편을 위한 임시반상회를 개최할 것을 선언했고, 급기야는 전국공무원 노조 제주지역본부가 반상회 불참과 홍보자료 배표를 거부하고 나섰다. 2년에 걸친 계층구조 개편 논란이 사실상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이미 일각에서는 계층구조 개편은 물론 특별자치도 또한 '물건너 갔다'는 냉소조차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계층구조의 합리적 개편의 필요성에 반대하는 식자층이나 도민들은 별로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일까?

# 논란의 핵심은 ‘행정계층’이 아닌 ‘자치계층’ 구조 축소

논란의 핵심은 ‘행정계층’이 아닌 ‘자치계층’ 구조의 축소와 관련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른바 ‘혁신안’은 3개의 행정계층구조는 존치시키되, 기존의 4개 시군을 2개시로 통합하고, 그 대신 시장·군수 및 기초의회 의원 직선제를 폐지하고 시장·군수를 임명제로 바꾸는, 즉 자치계층을 1단계로 축소시키는 안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직접적 이해당사자라 할 수 있는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장 자기 자리가 없어지는데 어떡하랴. 이런 현실적 이해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4개 시군이 통합되면서 그동안 국가로부터 지원받아온 교부세 등 의존재원이 축소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사실 계층구조 개편 논란은 시군의회가 자초한 바 크다. 의장단 선거시기마다 터지는 감투싸움, 집행부를 상대로 한 오만한 태도, 집행부에 대한 감시 견제 기능 소홀 등 그 동안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기초의회 무용론’까지 제기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초의회와 시·군의 자치권을 없애는 당위성으로 비약되는 것까지 용인할 수는 없는 문제다. 만일 그렇다면 도의원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도 없애라는 논거로 비약할 수도 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광역의회나 국회 또한 문제를 갖고 있기는 매한가지가 아닌가. 어쩌면 그 책임은 이런 의회를 만든 우리 유권자와 도민들에게 있다는 점에서, 그들을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제 얼굴에 침뱉기 식’이라는 자책에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다.

# ‘효율성’ 때문에 ‘자치권’을 없애는 것은 어불성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시장·군수의 직선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로 전환하면서 자치권을 없애는 문제다. 그 명분으로 ‘효율성’을 들고 있다. 그것도 핵심적인 이유는 ‘국제자유도시의 효율적 추진’이다.

여기서 국제자유도시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현행 기초자치단체가 어떻게 걸림돌이 돼 왔는지 세세한 설명은 없다(물어보자. 외자 유치 실적 부진이 현행 기초자치단체 때문인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른 바 점진적 대안을 통해 해결 가능한 문제임에도 무조건 없애는 것이 좋다는 주장으로 비약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효율성' 때문에 '민주성'을 포기하자는 논거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올해는 자치단체장 선거가 부활된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해다. 10년 만에 제주는 전국 최초로 기초자치단체의 자치권을 폐지하는 반분권적, 반민주적 대안을 이른바 ‘혁신안’으로 포장하며 도민들에게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4개 시·군으로 나뉘어 있음으로 해서 비효율적·비생산적 사례가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4개 시군이 경쟁적으로 시책을 추진하면서 자극을 받고 전체 제주도 차원에서는 중앙지원을 많이 받는 긍정적 효과도 분명히 있다.

자치시대 시민들의 ‘참여’는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참여와 행정에의 견제 수단은 ‘선거를 통한’ 참여와 심판이 일차적이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함에도 주민들의 직접 참정권을 없앤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기초자치단체 중심으로 가능한 권한을 이양하려는 참여정부의 지방분권로드맵과도 어긋나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사족이지만 임명된 시장은 '전국시장.군수협의회'에도 끼지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 같은' 어중간한 처지에 놓여 있게 될 가능성도 있다.

# 현실적 우려와 전략적 판단

필자는 행정계층 구조개편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몇 가지 현실적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첫째는 계층구조 개편 논의를 특별자치도와 연동시켜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계층구조 개편 문제는 대단히 예민한 문제이므로 이를 중심으로 추진하다가 만일 실패했을 경우, ‘제주도민들은 혁신 의지가 없다’는 식으로 매도당할 가능성과 함께 '특별자치'라는 모처럼 찾아온 당근조차 씹어보지도 못한 채 좌초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최근 노대통령은 특별자치도와 관련 이렇게 지지부진할 거면 중단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최근 경향신문은 1면 박스기사에 제주도 지역의 계층구조 논란을 대문짝하게 싣고 말았다.

제주도나 행정개혁위로서는 그동안 수차례의 용역과 회의결과를 통해 내린 최적안으로 이른바 혁신안을 선정했으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현실적 판단'이다.

거꾸로 물어보자. 도민투표를 강행하여 이른 바 혁신안을 관철시킬 자신이 있는가? 설사 투표에 참여한 도민들 중 과반수이상이 혁신안에 찬성했다 하더라도, 시·군별로 나누어 볼 때 정작 1개의 시군이라도 반대의견이 높으면 어떡할 것인가? 또한 하나의 시군의회라도 반대의사를 접지 않을 경우 어떡할 것인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 아닐 수 없다. 어느 하나라도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혁신적 안은 광역시(廣域市)-대동(大洞)제

냉정히 말해 진정으로 계층구조의 혁신적 개편을 추진하려면, 현직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마음을 비우고 힘을 합쳐야 한다. 깨놓고 말해 차기 선거에 ‘불출마 선언’이라도 하면서 이를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도민들도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주문이라고 보여진다.

둘째로, 이른바 혁신안을 운운하려면 자치계층을 축소시키는 반 민주적 대안 보다는 오히려 한나라당 허태열의원이 발의한, 시군을 없애는 대신 도를 폐지하고 '광역시-대동제' 시스템으로 바꾸는 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허태열의원은 도를 폐지해 행정계층을 1단계 감축하고,인구 30만에서 100만명을 기준으로 전국을 70개의 시.군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난 2월 제기한 바 있다)

사실 이 안이야 말로 현재의 참여정부가 가장 바라는 혁신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지역감정의 타파가 우선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도(道)체제를 철폐하고 전국을 수십 개의 ‘시(市)’로 쪼개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럴 경우, 사실상 제주도는 특별도(시)로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16분의 1' 지분에서 '70분의 1' 지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또한 읍면동의 자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등도 이를 선뜻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 현실적 대안 : 과도적 대안으로 자치권 인정 2개 통합시 추진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장치만 주어질 수 있다면, 이러한 통합시- 제한된 자치권을 갖는 광역 읍면동 체제로의 변화가 가장 혁신적 안이 될 수 있고 이른바 지방분권의 선도지역으로서 정부로부터 특별한 지원을 얻을 수 있는 명분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 자체의 현실적 어려움 때문인데, 현재로서는 특별자치도 추진을 위한 명분을 얻기 위한 ‘과도적 단계’의 설정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이다(굳이 필요하다면).

즉 장기적으로는 자치계층을 유지하고 행정계층은 2단계로 축소시키는 혁신적 안을 목표로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특별자치도를 추진하기 위한 중간단계로 산남·산북 2개 통합시로의 추진을 전술적으로 선택하는 방안이다.

물론 시장 및 기초의회의 유지와 직선제 등 자치계층은 온존시켜야 한다. 이럴 경우 행개위에서 제안한 이른 바 혁신안의 명분도 부분적으로 살리고, 현재의 시장군수 및 기초의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당면한 특별자치도를 추진하는 명분을 얻을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동시에, 이른바 점진적 안이 갖고 있는 합리적 핵심을 수용하여, 광역화 시켜야 할 분야는 도(道)로 집중시키는 합의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도시계획의 광역수립과 관련 도와 4개 시군이 합의한 것을 보면 그리 난망한 일 만도 아니라고 보여진다.

# 지사·시장·군수 만나 담판 지어야

필자가 보기에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제주도와 시·군이 쥐고 있다. 이 문제로 인해 더 이상의 혼란과 갈등이 도민사회에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도지사와 4개 시장군수는 시급히 만나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절충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그 이후 기초의회를 대상으로 한 설득작업에 공동으로 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접점은 앞서 말한 대로 "자치권이 인정되는 2개의 통합시와 광역적 기능의 통합"등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물론 다른 대안도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는 전문가가 아닌 필자 개인의 특별자치도를 고려한 현실적 차원의 하나의 제안일 뿐이다).

도민설명회와 주민투표는 그 다음 순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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