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스님의 편지] 너무나 많은 것들이 이 봄을 나누고 있습니다

산방산의 봄 ⓒ제주의소리

안개가 자욱하고 돌풍이 붑니다.
어제와 바람의 방향도 바뀌었고
어떤 분은 고사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하고
어느 마을에선 마을 굿도 하였다고 합니다.
흐린 하늘 넘어선 밤에는 보름달도 뜹니다.
모두 오는 것을 맞이하러 분주합니다.
참 기쁜 일이고 함께 충만한 기운을 나눌 때입니다.

억새 ⓒ제주의소리

이렇게 우리들 가슴이 흥분과 긴장되어 있을 때
쓸쓸한 뒷모습으로 떠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옴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를 비워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비를 맞는 억새를 봅니다.
애써 태연한 모습에서 처연함이 느껴집니다.
땅 깊숙한 바닥에서부터
하늘 가없는 데까지 느껴지는 생명의 생동은
저 의연한 마무리, 떠날 때를 알고
표표히 이별을 고하는 삶의 철학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별 없는 옴은 갈등과 번민을 낳습니다.
저 억새에게서 오는 생명을 위해
혹독한 겨울을 버텨준 희생과 떠남을 아는 지혜를 배웁니다.
참으로 감사한 자연의 선물입니다.
 

▲ 오성스님 ⓒ제주의소리 / 캐리커쳐=김경수 화백
들녘을 바라보며 들뜸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천천히 눈을 감고 깨여있는 마음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의 은혜로움에 감사해야 합니다.
바람이 내 몸에 와서 지나갑니다.
햇살이 온 몸을 따사롭게 합니다.
싱그런 풀과 꽃의 향기가 코를 간질입니다.
새들이 노래하고 가끔은 멀리서 자동차 소리도 추임을 넣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나와 함께
이 봄을 나누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저 억새의 선물을 고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글.사진=오성스님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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