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투리가 유쾌한 제주인들의 모습 그린 장편영화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목에 감은 깁스와 목발이 안쓰럽게 보인다. 어느 슬레이트 지붕 집에 도착한 그는 샤시문을 힘겹게 드르륵 연다. 방안의 시계는 8시 46분 47초에 멈춰있다. 비가 그치고 화창한 봄날 그 남자는 땅과 하늘이 맞닿은 들판을 걸어 이미 이장된 묘 앞에서 오열한다. 산담(제주에서 묘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돌로 쌓은 담) 주변으로 흰빛, 보랏빛 무꽃이 만발하다. 한참을 오열하던 그 남자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온다. 그리고 던져지는 한마디 “여기서 뭐햄시냐?”. 그의 귀향은 비로소 정착된다.

  영화 ‘어이그, 저 귓것’은 제주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저예산 독립영화다. 그러나 굳이 ‘저예산 독립영화’임을 강조할 필요없이 ‘돈’이 없어도 잘 만들어진 영화다. ‘귓것’이라면 귀신을 얘기하는 거지만, 필자는 이제껏 ‘귓것’의 의미를 좀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동물에게 주는 먹이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귓것’ 즉 ‘귀신에게 던져줘도 안 먹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적 동네 어른에게 ‘귓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나에게 해 준 대답이었다. 귀신도 외면할 한심한 사람을 두고 그렇게 말한 것이겠거니 생각한 것이 이제껏 믿게 되었다.

▲ 오멸 감독 <어이그 저 귓것> ⓒ제주의소리

생각해보면 ‘귓것’은 진짜 한심하다기 보다 고집대로 해도 밉지 않고 그냥 어이없이 인정해주게 되는 그런 동네 ‘노는 삼촌’들을 보며 한 말이었을 게다. 의미야 어찌되었든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풍겨오는 재기발랄함이 돋보인다. 영화는 제주도 애월읍 유수암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유수암리는 제주도의 독특한 마을구조를 잘 보존 개발한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관계를 맺고 벌어지는 일상생활이 유수암리의 토속적인 풍광과 어울려 더욱 맛을 더한다. 

   ‘어이그, 저 귓것’은 참 유쾌한 영화다. 유쾌함을 만들어내는 첫 번째 요소는 캐릭터의 재발견이다. 타향살이에 지쳐 귀향한 용필은 가수다. 나름 싱어송라이터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딱히 출세했다고 내세울 것도 없고 대접받지도 못하는 한심한 신세다. 용필에게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매달리는 뽕똘은 어린 딸을 둔 가장이지만 매번 아내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철없이 구는 사내다. 뽕똘을 추종하는 댄서김은 별로 잘못한 것 없어도 주눅들어 괜히 시선을 피하고 마는 소심한 남자다. 그래도 춤에 대한 그 안쓰러운 열정은 절대 주눅들지 않는다.

한편, 술 취하면 아무데서나 널부러져 잠들고 챙겨주는 가족 한 사람없이 살지만 동네 사람들이 ‘삼촌’하고 부르면 나서서 멋들어지게 노래 한 곡 뽑아낼 줄 아는 ‘귓것하르방’도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철없는 삼촌’들을 모두 아우르며 욕해대고 달래고 하소연도 들어주는 유수암 ‘점빵할망’이 있다. 시도때도 없이 점빵을 찾아와 외상을 해대는 한심한 사내들 틈에서 걸죽한 점빵할망의 욕 세례에서 제주 사투리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 오멸 감독 <어이그 저 귓것> ⓒ제주의소리

영화에서 이들 캐릭터들은 일방적으로 또는 서로에게 “으이그, 저 귀것”이라고 얘기한다. 애매하게 안쓰러우면서도 스스로는 거칠 것 없이 뻔뻔하고 당당한 이들을 표현하기에 ‘귓것’이라는 말보다 적합한 것이 있을까싶다. 영화는 등장인물의 과거와 미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만을 담담하게 보여 줄 뿐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평가받는 멋진 인생의 기준에는 절대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음지로 파고들어 숨지도 않는다. 생각하고 느낀대로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는 이전까지 보여졌던 소외받고 스스로 이타적인 자학 백수캐릭터와는 다른 선상에서 인물들을 파악하고 있다. 스스로 만족하고 즐기며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영화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유쾌함을 만들어내는 두 번째 요소는 카메라 속의 제주도 그 자체다. 이 영화의 촬영지인 제주도 애월읍 유수암리의 잘 정비된 올레길을 비롯하여  무꽃이 만발한 들판, 바다와 어우러진 보리밭과 아기자기한 돌담들, 팽나무를 끼고 쉬어가는 쉼팡, 제주하면 생각나는 현무암을 무색케 하는 희고 커다란 바윗돌이 볼만한 계곡 등 제주사람들도 제대로 눈여겨보지 않았을법한 멋들어진 제주의 모습이 섬세하게 담겨있다. 특히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주광촬영으로 자연 그대로의 제주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오멸 감독은 제주도를 단순히 섬이 아닌 살아있는 유기체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긴, 흙 한 줌 없이 단순히 집 돌담에만 엉겨 붙어 살아가는 팽나무가 수두룩한 올레길이 제주에는 많다. 제주에서는 보고자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한라산은 더 높아 보이고, 돌담과 바람은 쉼 없이 멋진 영감을 제공한다.

  영화의 유쾌함을 더해주는 마지막 요소는 배우와 노래들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의 출발은 ‘저예산’이다. 따라서 배우와 감독, 스텝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아마 가장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배우들의 기량은 전문배우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다. 그도그럴것이 다년간 제주도 문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 예술가들이 그 주를 이루고 있다. 전체 스토리라인을 아우르는 감정선도 섬세할뿐더러 인물들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노랫소리도 구성지게 소화해낸다. 잔잔한 포크송부터 제주만의 지역색을 드러내는 민요까지 장르의 경계 없이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각각의 퍼즐이 맞춰져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듯이 배우들의 진정한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 오멸 감독 <어이그 저 귓것> ⓒ제주의소리

  ‘어이그, 저 귓것’은 순수하게 제주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몇 안되는 장편영화이며, 전적으로 제주도의 인적, 자연적 인프라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로컬리티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용필역의 양정원은 실제 사투리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다. 귓것하르방 역의 문석범 또한 ‘민요패 소리왓’에서 제주민요를 연구하고 부르는 노래꾼이다. 점빵할망으로 분한 오영순은 ‘우리문화 연구소 제주 꽃놀래’ 소장이자 제주 본풀이에 등장하는 삼승할망을 소재로 1인극을 창작하고 공연한 예술인이다. 이외에도 영화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이미 제주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예술가들이다.

오멸감독 역시 독립영화 감독, ‘머리에 꽃을’ 축제 기획 등 여러 가지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을 통한 사람들과의 소통에 노력하고 있다. 문화예술판에서 별별일 다 겪은 그들이 보여주는 캐릭터라서 그럴까? 영화 속 용필과 뽕똘, 댄서김이 밥보다 노래, 춤에 목매며 ‘귓것’소리를 듣는 게 젊은 예술가들이 평생(?) 고민하게 되는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는 절대 무겁지가 않다. 장면과 장면 사이 호탕하게 웃게 만드는 골계미가 숨어 있다.   

‘어이그, 저 귓것’은 쉼표같은 영화다. 매번 부딪치는 상황에 스트레스 받아가며 위장병 끌어안고 견디는 것으로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면 영화가 보여주는 느리고 호쾌한 웃음속으로 잠시 빠져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들의 ‘노는 삼촌’들, 그들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영화평론가 이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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