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왜 우린 광장공원·도심공원이 없을까

           I. 주민참여형 공원관리와 주민생활용 공원조성

  제주시가 시민참여에 나섰다. 오는 5월부터 9개 공원의 관리에 시민참여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제주시가 3월 12일 밝힌 것이 그것이다. 공원관리에 시민참여를 제고하는 방안으로는 주민자치위원회, 아파트자치회, 마을회 등 지역 자생단체들과의 자매결연이 유력하다. 이렇게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쾌적한 공원환경 조성’이라는 캐치프레이즈야말로 바로 민관 합작에 의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라 생각되기에 기대가 크다.

  보통 우리에게는 공원이 매우 부족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그 이유의 하나는, 많은 경우 공원이 지역 주민의 일상생활과 동 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원이 그냥 아무 때나 마음 내키는 대로 쉽게 찾아가는 곳도 아니거니와 공원에 가서 무어 꼭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공원에 가는 것마저 큰마음 먹고 일정을 잡아야 가능하다. 그렇게 우리네의 일상적 삶은 그냥 바쁘게만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 다른 나라에 가서나 겨우 시간을 내어 공원을 찾는다. 그렇게 골라서 찾아간 다른 나라의 유명 공원을 보면, 도청이나 시청 등 공공기관 앞이나 옆에 조성된 큰 규모의 광장형 공원을 보면서 부러움과 경탄을 하곤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광장형의 대형 공원이 많지 않고 또 그나마 도심 공원이라는 것도 크지가 않다.

  최근 서울에 조성된 대표적 도심 공원으로서 시청광장과 광화문광장이 있지만, 이것 역시도 누구나 쉽게 오가는 공원이라기보다는 전시형의 눈요기로 활용되는 측면이 크다. 시민의 손때를 묻히는 공원이라기보다는 차타고 오가면서 눈으로 보고 전시용 행사 때나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 광장의 시민이용권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특유의 한국적 현상이라 하겠다. 혹자는 한국은 광장문화가 아니라 사랑방문화가 더 격에 맞는다는 말까지도 하지만, 그래도 광장형이든 돌담형이든 아니면 잔디밭형이든 혹은 규모가 작은 소공원이든 이러한 공원이 널리 주민참여 하에 운영되도록 여러 가지 지원과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청계천 광장은 돋보인다.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청계천 고가도로에 비교해 보면, 여전히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서울 도심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주에는 광장형 공원이 없다. 그래서 관덕정 부근이나 탑동 매립지 어딘가에 광장형 공원이 조성되고 이를 중심으로 제주도민과 관광객이 한 데 어울려 문득은 신명나는 시간을 즐기는 그림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미 땅 값이 너무 올라서 활용할 만큼의 재정적 여력이 없는 것이기에 시청이나 도청 주변 어디에 광장형 공원을 명소화하는 것은 어렵다. 주변의 상업지구에 둘러싸여 있는 제주시청은 물론이고 제주도청의 경우도 제주도의회와 제주도교육청 등 공공기관이 좁은 땅 위에 얼키설키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 애초의 도시계획에 광장형 공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주시민복지타운 내에 광장형 공원이 들어설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구제주대병원 주변 재개발사업을 포함하여 제주시의 도심재개발 사업을 기획할 때부터 재정적 여건상 큰 규모의 광장형은 아니라 하더라도 소규모의 주민생활형 공원을 조성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는 지역의 동선이자 편익시설의 하나로서 공원이 여기저기에 조성될 때, 그 공원은 도민의 삶 속에 자리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대형 관광단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또 하나의 숨겨진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의 다목적 활용을 기대하고 싶다. 

              II. 도두봉 공원의 속살을 찾아서

  당연히 공원은 조성 못지않게 관리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시가 신산공원, 사라봉, 삼무공원, 남조봉(민오름), 도두봉 등 9곳의 공원관리에 새로운 시각을 갖고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단독주택보다는 점점 더 아파트나 다가구주택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네 주거환경을 고려하면, 더 더욱 ‘공동의 정원’이자 ‘공동의 쉼터’인 공원의 필요성은 제언을 요하지 않는다. 필자가 자주 다니는 수목원에도 주민의 손길이 더 많이 가도록 하여, 수 만 가지 나무와 꽃만이 아니라 인근 주민의 숨결도 같이 살아 움직이는 따뜻함으로 가득 찼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이오름과 함께 다양한 식물원들이 들어서 있어서 자연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한라수목원이 앞으로는 연동 주민들의 따뜻한 손길 속에 더욱 빛나리라 기대해마지 않는다. 

  한라수목원 말고도 필자는 도두봉 공원에도 관심이 많다. 그 이유는 도두봉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용두암으로부터 도두봉까지의 해안도로를 따라 느긋하게 파도소리를 들으며 달리다가 잠시 멈춰 해발 134미터로 그다지 높지 않은 도두봉 정상에 올라가 보면, 금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저 멀리 웅장한 한라산과 함께 파도 소리가 정겨운 제주 앞바다가 다가온다. 제주와 육지를 잇는 제주공항과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의 현장인 제주시내 정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비행기 이착륙이 무어 그리 신기한 것이겠느냐마는, 그래도 발아래에서 비행기가 활주로를 따라 오르내리는 광경을 보면서 잠시 심호흡 속에 우리 마음도 어디론가의 비상을 꿈꿔보는 것은 퍽 괜찮은 소일거리이다. 특히 서울 가는 비행기가 오후 4시경일 경우 점심 먹고 나서 한 두어 시간 남은 자투리 시간 동안 마지막으로 제주의 산과 바다 그리고 시내 정경을 일별하기에는 도두봉 만한 곳이 없다.

  올 해부터 그 도두봉이 주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지만, 이미 도두봉 허리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는 별미이다. 단 20-30분만이라도 도두봉 허리를 감아 돌면서 제주에서의 시간들을 반추해 보는 것도, 꽉 짜여진 일정에 따라서만 살아가는 우리네에게는 모처럼의 여유로움이 아닐까. 언젠가 한국국제정치학회 임원들과 함께 학술세미나 끝나고 찾았던 도두봉은 그렇게 우리들 모두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의 속살로 다가왔다. 만장굴이나 성산일출봉, 산방산처럼 유명하지 않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관광지가 아니어서 도두봉은 우리들 모두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왔고, 또 기회가 되면 언제든 잠시 짬을 내어 찾아오고 싶은 제주의 비경으로 기억되었다. 인적이 없는 만큼이나 잠깐 동안 도두봉 정상을 오르내리는 우리에게는 무언의 성찰과 안식의 시간을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보았던 기사가 생각났다. <서울신문> 2월 10일자 ‘이제 알려진 곳은 싫다-제주비경 인기’ 기사가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도두봉 이외에도 산지등대, 별도봉 산책로, 애월읍 한담, 고산 영일해안, 납읍 난대림 등 ‘호젓하고 덜 알려진 곳’을 선호하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제주를 찾는 서너번째 관광객이라면 유명하지 않더라도 전에 가보지 않는 곳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런 흐름에 주목하여 제주시도 숨겨진 장소 31곳을 선정하고 지도를 제작해 관광객에게 제공한 바 있다. 여기에 선정된 비경은 한림읍 월령리 선인장 군락, 선비의 휴식처인 한림읍 명월대, 원앙의 보금자리인 조천읍 다려도, 5명의 현인을 기리는 오현단과 제주성지, 왜구의 침입을 막은 환해장성과 삼양해안도로, 조천읍 사려니 숲길, 아라동 산천단 곰솔, 오라동 방선문 계곡, 무속신앙을 간직한 구좌읍 송당 본향당 등이다. 

  이들 제주비경의 발굴은 보다 폭 넓게 제주관광의 묘미를 제공하고자 함인 동시에 이를 통해서 이른바 ‘골목상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제주의 자연생태적 비경과 함께 필자가 제주 사람이 손때가 묻어 있는 공원 조성과 주민참여형 공원관리에 새삼 주목하는 이유는, 자연생태에 이은 관광의 한 중요한 축은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제주도민들이 일상적으로 가까이 하면서 즐기고 쉬고 또 건강을 챙기는 곳으로서의 공원이 여기저기에 많이 있으면, 그만큼 관광객들도 새벽이든 저녁 시간이든 기분 내키는 대로 쉽게 오갈 수 있는 공원의 아기자자기함에 흠뻑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제주의 미래가 단순한 관광지만이 아니라 혹 여건이 되면 남은 평생을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새로이 바라보게 되는 그런 제주를 꿈꾸고 싶다. 제주에 와서 도민과 눈 마주치는 가운데 놀고 쉬고 즐기고 건강을 챙기는 관광객의 흐름을 담아내는 데 공원만큼 더 지속가능한 것이 있을까. 왜냐하면 제주의 공원이 주민생활형 공원이고 주민참여형 공원이라면 바로 그러한 주민생활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그 공원의 생명력도 그만큼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할 것이라고 파악되기 때문이다.

             III.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공원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진 게 아닌 것처럼, 관광지로서의 제주의 매력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주를 사랑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일상적 삶의 질 제고 속에서 제주의 매력이 더 한층 높아질 것이다. 도민의 일상적 삶과 동 떨어진 무슨 관광단지니 대형 테크노파크니 또는 무슨 휴양위락단지니 하는 것은 결국 제주 섬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고도일 뿐이다. 그 고도에 와서 쉬고 즐기다 가는 방식의 제주관광 만들기로는 거기에 투자한 기업에게는 큰 이익이 되고 그 주위에서 떡고물을 받아먹고 사는 도민들만 있을 뿐, 장기적으로 매력이 있고 도민의 삶 제고에 기여하는 곳으로서의 제주관광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제주관광에 대한 주민참여가 요구되고 역사문화관광이 주목받는 이유를 찾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제주시가 하나의 조그마한 출발이지만 주민참여형 공원관리에 나서는 움직임을 환영하는 이유를 갖게 된다. 동시에 앞으로 공원관리뿐만 아니라 공원 만들기의 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주민참여를 널리 확대해 나가는 광폭행정이 요구된다. 이 점에서 대정읍 상모리의 환태평양 평화소공원 조성에 민관이 협력하고 지혜를 모아나가는 일련의 주민참여형 공원조성 사업도 눈여겨 볼 일이다. 그래서 항차 도심재개발 사업에는 그 크기에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주민참여형 공원 조성을 필수적 부대사업으로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민관협력의 틀이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결과 ‘도민의, 도민에 의한, 도민을 위한 제주도정’의 민주적 이상이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공원’이라는 제주시의 주민참여형 공원관리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실현되어 나가는데 기대를 걸고 싶다. 

 

▲ 양길현 교수
  동시에 제주시가 주민참여형 공원관리를 시행하려고 한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문득 서울시가 시행하는 공원 모니터링 요원 ‘공원살피미’도 참고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부터 서울시는 공원살피미를 통해 공원화장실 개선, 공원 내 비상벨 설치, 보도블록 파손, 안내표지판 수정 등 시민의 공원 이용 만족도와 불편사항 등을 수렴해 공원 행정에 반영해 오고 있다. 공원살피미가 평소 공원을 이용하면서 느낀 공원이용의 불편 사항이라든가 공원행정에 대한 건의 등을 인터넷을 통해 제시하면 시는 공원살피미가 제시한 의견에 대한 반영여부와 결과를 이메일로 알려준다. 공원살피미의 모니터링 결과를 매월 심사해 우수의견 15%에 해당하는 인원에게 5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지급한다고 한다. 향후 마을회 등과의 ‘자매결연’을 통한 방식과 ‘공원살피미’를 통한 온라인 소통이 함께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제주형 주민참여의 공원관리 모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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