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레인보우] 新시장 이야기 (1) 매월 둘째 토요일 - 제주MBC, ‘착한장터’

'시장들'이 있다. 동네 깊숙이 침투한 대형마트, 편의점들 사이에 '이 시장'은 출몰한다. 주로 주말에만 한나절간 나타났다 사라진다. 사람들은 보통 1000원, 2000원을 꺼내든다. 종종 1만원짜리도 보이지만 대신 받아가는 물건 갯수가 상당하다. 바로, 벼룩시장이다. 하지만 '벼룩시장'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조금씩 다 다르다. 제주의 벼룩시장이 '벼룩'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프랑스나 서울의 홍대앞 놀이터 벼룩시장만큼 활성화된 것은 아니다.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벼룩시장들이 가진 문화적, 공동체적 가치는 아주 오래된 것들이다.

[문화레인보우]는 작은 기획으로 제주의 벼룩시장 네 곳을 소개한다. (1)제주MBC의 '착한장터' (2)소피의 벼룩시장 (3)시청 문화벼룩시장 / 편집자주

“(머리)핀은 쓰던거라 100원이고요, 형광펜은 두 개 500원에 드릴게요”

소녀들이 깔아놓은 돗자리에는 머리핀 대여섯 점과 형광펜, 색연필 그리고 책 몇 권이 곱게 놓여 있다. 손님들의 편의를 위한 가격표도 붙어있다. 손님은 대부분 어른들. 경기 위축으로 지갑 열기를 꺼려하던 어른들도 여기서만은 행복한 표정으로 지갑을 열었다. 장사가 잘 되느냐는 질문에 “5만원 넘게 팔았어요”란다. 이건 소꿉놀이가 아니다.

흔히 재활용보다 더 좋은 게 재사용이라고 말한다. 가공단계가 생략되기 때문이다. 재사용보다 더 높은 단계가 바로 '벼룩시장'이다. 재사용은 다시 사용하는 것이지만 벼룩시장은 더 나은 사용처를 찾아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싸들고 온 물건은 5만원 ‘값어치’ 이상의 ‘가치’를 발했다.

▲ '착한장터'를 찾은 한 어르신과 흥정중인 소녀 플리머들. 아이들은 진지한데 어른들은 '놀이'처럼 즐겁기만 하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지난 13일 제주시 노형 근린공원에서 제주MBC가 주최한 ‘착한장터’의 풍경이다.

착한장터에서는 재활용품, 친환경 제품, 예술인들의 수작업품, 공정무역 제품, 지역생산 제품 등을 판다. 물품들은 아토피 비누, 무농약 제주지역 생산 채소, 공정무역 커피, 예술가들이 만든 뱃지, 지갑 등이다. ‘환경, 착한경제’의 가치에 부합하는 물건들이다.

누군가 ‘착한’이라는 수식어를 두고 “착한 사람들이 파는 곳이에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착한장터’는 벼룩시장에 ‘착한경제’라는 개념을 더한 것. ‘착한경제’는 양극화, 빈곤 등 자본주의의 폐해를 완화할 수 있는 경제구조가 있지 않을까하는 데서 출발한다. 쉽게 이것은 지역생산 제품을 지역주민들이 우선순위로 구매하고, 공정무역 제품을 선호하는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다.

‘착한장터’에는 서귀포시에서 원정 온 이들도 있었다. 매달 첫째주이면 이중섭 미술관 앞에서 ‘예술 벼룩시장’을 열고 있는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뱃지 수십여개가 진열돼 있다. 대부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들이었다.

어떤 곳은 신발 네 켤레를 내놓고 새주인을 찾고 있었다. 디자인은 마음에 드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아 아쉬운 하소연도 나온다. 마치 신데렐라의 구두같다. 벼룩시장에서는 물건과 주인이 서로 ‘알아봐야 한다’. 돈으로는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가격들이지만 여기서는 돈이 판매 변수가 되지 않는다. 나한테 필요하고 또 나한테 맞아야 한다. 아이들은 진지한데 어른들은 즐거운 ‘놀이’ 중이었다.

노형동 근린공원에서는 여러번 같은 컨셉의 벼룩시장이 열린 바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적이 있고, 작년에도 지역 자활센터와 사회적기업등이 모여 벼룩시장을 열었다. 아파트 밀집 지역이고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라 ‘벼룩시장’에 대한 호응도 높았다. 2008년부터는 마침 한살림 제주지점이 바로 맞은 편에 문을 열었다. 노형동 주부모임의 호응도 컸다.

계속해서 상설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가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주최가 계속해서 바뀌었다.

▲ 파장 즈음한 풍경. '착한장터'는 공원 공간 활용법의 '좋은예'를 보여주고 있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그러던 것이 올해 제주MBC가 ‘착한 경제’를 모토로 올해 사업을 진행하면서 매달 둘째주 토요일 상설화하기로 했다. 제주MBC는 착한 장터를 주관한 ‘착한경제위원회’도 열었다. ‘착한경제위원회’는 제주지역자활센터협회, 급식연대, 아이쿱제주생협, 한살림제주, 제주친환경농업단체연합회, 아름다운가게 제주, 제주대안연구공동체 등 10여개 단체가 참여해 지역언론을 활용, ‘착한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모였다.

'착한장터' 기획자인 송원일 제주MBC 보도팀장은 다소 신랄한 비판 의식에서 관심을 갖게 된 듯 했다. “제주지역 경제에 대한 제주도의 정책이나 도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외부자본을 유치해 대규모 관광개발을 하면 일자리가 늘고 지역경제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것을 보면 마이너스에요. 실업문제가 나아진 것도 아니고 지역경제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는 현실적 지표는 없지 않냐는 거죠." 그는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모두 도움되는 경제, 지역 창출된 부가 지역 내에서 순환되는 그런 경제구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 ‘착한경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벼룩’이란 이름은 온갖 잡동사니들을 가지고 나오다보니 벼룩도 덩달아 붙어 있어서라고 한다. 프랑스와 독일의 벼룩시장은 관광객들에게도 명물로 소문 나 있다. 워낙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여있어 ‘만물상’을 방불케 한다. 물건 구경, 사람 구경에 유명 관광지가 된 예다.

‘착한장터’가 아직 만물상이 되려면 좀 더 많은 입소문과 참여가 필요할 듯하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장터 당일 교환하거나 팔고 싶은 물건을 싸들고 공원으로 나오면 된다. 별도의 참가비나 신청 절차는 없다.

제주MBC가 사전에 대대적인 홍보를 펴지는 않는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 장터의 생명이기 때문일 터. 시민들이 알아서 찾아와 장을 벌이고 즐거움을 찾다보면 어느새 주최는 필요없어지고 시장의 주인이 시민들이 될 지도 모르겠다.

4시경. 파장 즈음. 노형 인근에 산다는 김정애 씨는 아이들 옷가지와 아토피 비누를 한아름 들고 있었다. “아이들 아토피에는 오히려 쓰던 옷이 좋다고 해요. 세상에 이게 몇 천원밖에 안해요. 기분이 너무 좋네요.” 김 씨는 정말 행복하게 웃었다.

돈 걱정 없는 ‘이상한(?)’ 시장이었다.

일시 : 매달 둘째주 토요일 오후 1시~4시
장소 : 노형 현대아파트-롯데마트-우편집중국 중간지점에 있는 ‘노형 근린공원’


'RAINBOW'는 다양성과 소수자 등을 상징합니다. [문화레인보우]는 '다양성'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다양하게 빛을 발하는 문화 공간, 사람, 예술이 우리 사회를 더 활기차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제보 받습니다. 연락주시면 적극 참고합니다. 트위터ID : @miri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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