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12) 약수를 품고 있는 고기잡이 터 - 이호동 모살원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모살원 ⓒ김순이

제주도에 관광지 바람이 일면서 한없이 길게 펼쳐진 모래밭은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의 해안마을에서 모래밭은 불모지요, 바다의 사막에 불과했다. 제주의 아이들은 수영을 모래밭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용암바위가 얼기설기한 바위와 바위틈에서 배웠다. 얼마나 멀리, 빠르게 헤엄쳐 나가느냐보다는 잠수하여 얼마나 많은 해산물을 채취하느냐가 중요하였다.

그러나 이런 모래밭에도 봄여름이면 파도를 타고 멸치 떼의 풍요가 왔다. 달빛이 교교한 밤에 멸치 떼가 물결에 은빛 그림자를 묵직하게 드리우며 들어오면 육감이 뛰어난 어부들은 마을에 비상을 건다. 이윽고 새벽 썰물을 타고 빠져나가려는 멸치 떼를 그물로 후려잡는 작업이 멸치후리는 민요와 더불어 구성지게 벌어진다. 마을의 어린아이까지도 손에 잡히는 대로 그릇을 들고 뛰어나가는 발자국소리로 마을 구석구석은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모살원이 있는 이호동(梨湖洞)도 그런 멸치 떼의 풍요를 노래하던 마을이었다. 원이란 해안 조간대에 일정하게 돌담을 쌓아두고 밀물 따라 몰려든 고기를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 안에 가둬서 쉽게 잡을 수 있게 한 장치이다. 이는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원담을 마련해 놓고 함께 보수하며 관리해온 어촌생업문화유산이다. 특히 어선이 없거나 홀로된 여성 혼자 사는 집도 함께 참여하여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잡히는 어종은 주로 멸치였고, 농어 구릿 숭어 볼락 등이 원안에 몰려드는 경우도 있었다.

모살원은 이호해수욕장 동쪽에 있다. 총길이가 약 450m로 제주 해안에 있는 원 중에서 가장 큰 원에 해당한다. 이호동에는 3개의 원이 있었는데 모두 멸실되고 이것만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2005년 이호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원래의 모습대로 복구하였으며 지금은 명물이 되어 있다.

원의 관리는 일년에 두서너 번 원담을 보수한다. 멸치가 들지 않는 이른 봄과 늦가을에는 반드시 하며 특별히 태풍이 휩쓸고 간 후에도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여성들도 참여하여 함께 하였다. 집안에 남성이 없는 집일 수록 원에서 잡은 생선으로 제숙거리(祭需用品)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담 안에는 약수로 소문난 문수물이 있다. 원형 시멘트 물통은 용출량이 풍부하여 항상 넘친다. 이호동 모래는 짙은 회색인데 모래찜질이 유명하다. 한여름 뙤약볕에 달구어진 모래로 찜질한 후 이 이 문수물에서 몸을 헹구면 오래된 피부병이 낫는다고 알려져 있다. 옛사람들의 지혜가 살아 증거하는 그런 곳이다. / 김순이 문화재청 문화재담당관

*찾아가는 길 : 이호동→이호해수욕장→동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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