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6코스 해안도로, "차에서 내리라" 말하다
올레 16코스 해안도로, "차에서 내리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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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6코스 '고내포구~광령1리'…개장행사 1000명 참석 성황

제주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인 해안도로. 제주공항에서 렌트카를 넘겨받은 관광객이라면 가장 먼저 해안도로를 통과하며 제주를 만끽하리라. 하지만 자동차를 이용해 빠르게 지나가는 해안도로 여행에선 놓치는 게 많다. 해안 절벽과 도로 사이에 자리한 작은 숲과 매화 나무 그리고 아기자기한 포구가 그렇다.

26일 개장한 제주올레 16코스의 절반은 제주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다. 바다를 지나온 바람이 바로 왼쪽 옆구리를 밀어댄다. 고내 포구에서 시작해 신엄 포구에 당도하기 까지, 해안 올레는 나란히 자리한 해안도로를 비웃으며 빼어난 풍광을 선사한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바람을 안고 출발한 해안가 올레는 제주 지형의 성긴 모습 그대로다. 고개의 정점에서 바라본 시야의 절반은 바다와 해안가 마을로 양분된다. 그리고 중간에는 제주도 까만돌이 경계를 이루는데 사진찍기 좋은 황금비율을 이룬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해안도로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져서인지 곳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다. 열심히 앞만 보며 걷던 사람들이 잠시 바다를 향해 있는 벤치에 앉는다. 이번엔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모자를 꽉 붙든다.

고개 하나를 넘으면 꼬불꼬불 길이 이어지다 다시 고개를 넘는다. 새로운 고개 하나를 통과하면 다음 고개까지는 시야를 막는 게 없다. 이쪽 고개에서 저쪽 고개를 넘는 올레꾼 무리들이 보이는데 개미같은 사람들의 행렬이 재미있다.

작은 자동차 점포들이 눈길을 끌었다. 커피와 와플, 오뎅 같은 것들을 파는데 따뜻한 음료가 인기였다. “나는 올레꾼인데요. 와플이 아주 맛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올레꾼’이었다.

중간 중간 물통과 연대가 눈길을 끌었다. 둘 다 제주 돌로 쌓아 올려졌으니 기능이 하나는 물, 하나는 불로 사용되던 곳이다. 옛 아낙들이 빨래하던 물통은 시멘트로 메워져 있어 이젠 쓰레기만이 뒹굴고 있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동안 신엄 포구에 닿았다. 여기서 부터는 90도로 꺾어 한라산 방면을 향한다. 바람에 휘청이던 발길도 마을 올레로 접어들며 가벼워진다.

동서로 걷던 올레꾼들의 길이 남북으로 바뀌면 조심해야 할 것이 도로다. 이번 올레코스에서는 약 3번의 건널목을 건너야 했는데 모두 속력을 줄이지 않는 곳이라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첫 번째 건널목을 지나면 수산봉을 끼고 도는 코스가 시작된다. 수산봉은 ‘물메 오름’이란 더 예쁜 이름이 있다. 산 정상에 자연연못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못이 메워져 있다. 오름 중턱에는 원천사(법화종)가 있고 남동쪽으로는 수산저수지가 있다. 올레꾼들은 바로 이 저수지를 오른편에 두고 저수지 흙담을 따라 지나간다. 왼편으로는 일주도로 위로 차들이 속력을 내며 달리고 있고 더 멀리로는 마을이, 또 더 멀리로는 어김없이 바다가 펼쳐져 있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한참을 걷자 '제주도 구경도 식후경' 생각이 간절하다. 허기지다 느끼며 물메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반가운 국수 매대들. 수산리 부녀회가 1000명분의 국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멸치국수 4000원, 막걸리 2000원. 커피는 공짜. 작은 학교 앞 운동장에 깔린 인조잔디 위에서 멸치국수 한그릇 먹고 있으려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운다. 배가 두둑해지자 원기 회복했다며 곧바로 속력을 내는 것은 금물이다. “밥 먹고 나서 천천히 걸어야지 기운난다고 급히 걸으면 배앓이 합니다.” 한 올레꾼이 말한다.

두 번째 건널목까지 통과하면 드디어 ‘역사 올레’로 접어든다. 항파두리다. 4미터 가까이 쌓아올린 복원된 토성으로 남아있다. 항몽유적지에는 두 가지 상반된 역사적 진술이 뒤따른다. 하나는 730여년 전 몽고의 침략에 끝까지 저항한 삼별초가 최후를 맞은 격전지로써 '민족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성지라는 해석이다. 반면 제주인들에게는 삼별초 역시 하나의 침탈을 일삼은 ‘외세’일 뿐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제주에서 전투가 벌어졌지만 당시 토성을 쌓는데 제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해 삼별초에 대한 제주민의 인심이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의견도 이어진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항파두성을 둘러싼 곰솔 숲길을 통과해 항몽유적지 입구에 다다르자 올레꾼들은 맞은편 공터에 자리를 잡고 쉰다. 공터에 심어져 있는 귤나무는 따주는 사람 없어 힘없이 과실을 툭툭 흘리고 있다. 올레꾼들이 이를 거둬 먹는다.

다시 길을 나선다. 곧 목적지인 광령으로 접어든다. 다소 협소한 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감귤 밭 사이로 난 길, 광령천길을 돌아 광령 마을에 접어들면 가장 먼저 마을 개가 요란히 맞는다. 낯선 올레꾼들의 발소리에 앙칼지게 짓어댄다. 그 소리가 마을을 통과하는 내내 이집에서 저집으로 이어진다. 소란스레 마을을 통과하면 광령초등학교를 끼고 돌아 광령 마을을 통과하는 도로에 접한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이 아직은 희기 보다는 붉다. 꽃술이 꽃잎보다 크다.

광령1리 주민센터에 당도하자 약 17km의 16코스를 마무리 했다. 광령리 마을금고에서 나와 직접 달인 유자차라며 떡과 함께 내준다. 오후 3시. 꼬박 5시간이 넘게 걸렸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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