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이 만난사람] 김태환 지사 "아름다운 퇴장은 평소 지론"
"가장 역할 빵점...이젠 자원봉사하면서 가족과 지내고 싶다"

 지난 2월17일,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불출마 선언’은 그야말로 지방정가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김지사를 바라보는 스펙트럼에 따라 불출마선언 해석도 달랐지만, 그 이유가 어쨌든 현직 도지사, 그것도 ‘제왕적 도지사’란 시샘을 받았던 그의 불출마는 제주정치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후진을 위한 용퇴는 아름다운 미덕이었지만, 정치에서 이 용퇴는 흔치 않았다. 그나마 제주도의회에서 ‘의장’을 맡은 도의원이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은 게 이제는 제주도의회 관례로 된 게 그나마 ‘아름다운 질서’일 뿐이다. 자치단체장을 스스로 놓기는 김태환 지사가 처음이었다.

   

본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가’라고 하지만, 행정가나 정치가든, 아니면 둘 다를 아우르든 김 지사는 지금까지 제주 행정-정치사에 가장 오랜 흔적을 남긴 ‘장수 행정정치가’로 기록된다.  1964년 9급공무원으로 출발한 그는 40대초반(43)에 남제주군수(3년)를 시발로, 관선제주시장(3.7년)과 민선제주시장(6년), 민선 제주도지사(6년)에 이르기까지 45년을 공직에 몸담았다. 이중 관선과 민선을 포함해 시장 군수 도지사 자리에 앉은 기간만도 무려 18년7개월을 단체장 자리에 앉았다. 제주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가히 흔치 않은 기록 보유자다. 직업이 '단체장'인 그다.

제주시장 재임시절엔 현대텔콘사건, 도지사 재임시절에는 선거법 위반사건으로 중도 하차할 위기에 직면했으나 그 때마다 기가 막힌 변호사의 조력, 그 누구도 예상 못한 형사소송법개정과 40년만의 판례변경으로 그는 지옥과 천당을 오가기도 했다. ‘신(神)도 부러워할 관운’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랄까, 도지사 재임 기간 내내 제주사회는 정책 찬반 양론으로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한라산케이블카, 내국인카지노, 영리병원, 영리학교 등등…..여기에다 해군기지 문제가 겹치면서 그는 우리나라 광역자치단체장 중에서는 처음으로 ‘수치스런(?)’ 주민소환투표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민소환투표를 ‘투표 불참’이란 예상치 못한 전략으로 돌파한 그는 이 여세를 몰아, 비록 낮은 여론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3선 고지에 나설게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으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불출마’카드로 제주사회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6.2선거 4개월 앞둔 그의 불출마 선언은 지방정가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그의 불출마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불출마 선언을 한지 40여일이 흐른 지난 3월29일 <제주의소리>가 김태환 지사를 만났다. 그의 얼굴에 예전 제주시장 당시 볼 수 있었던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그는 모든 욕심을 내려 놓고 이제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아무런 욕심이 없을 것 같은 그는 남은 여생을 두 가지만은 반드시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나는 45년 공직생활 동안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부모역할, 남편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게 첫 번째 소망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도지사에 물러난 후 2012년 WCC 제주총회 자원봉사단장을 맡아 그가 유치한 총회를 뒤에서나마 성공적으로 치르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다음은 김태환 제주도지사와 인터뷰 내용.       

   

-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불출마 선언 후 도민들의 반응은 어떤지?
“그 동안 수고했다는 말들이 많다. 저에게는 대단히 위로되는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주변과 일체 상의 없이 결정 내리다 보니 부작용도 있었다. ‘섭섭하다. 지금까지 당신을 믿고 모든 열정을 받쳐왔는데, 중대한 결심할 때 도와준 가까운 분과 의논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아쉬운 말씀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부부간에 사무실에 오셔서 눈물로 이야기하는 분도 있어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대체적으로 도민들은 ‘아쉬울 때 결심을 잘한 것 같다’는 반응이다.”

- 지방선거 4개월 남겨두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유야 어쨌든 현직 도지사로서 힘든 결정인데, 불출마 배경이 아직도 궁금하다. 
“다음 선거에 나가겠다고 생각한다면 도정 소신껏 이끌어 나갈 수 없다. 선거를 의식해야 한다. 결국은 표다. 지난번에 당선되면서부터 이번 임기는 언제라도 결심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인기에 영합됨 없이, 옳은 길이라면 이 길로, 특별자치도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으로 4년을 이끌어 왔다. 앞으로도 제주도가 더 변화하고 도전해야 경쟁력이 있다.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편가르기 식으로 얼마나 제주사회가 요동쳐 왔나, 공직사회도 줄서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을 한번 끊어보자 굳은 의지를 가졌다.”

- 아무래도 가족이 제일 중요한데, 불출마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젊은 나이에 공직생활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45년간을 생활해 왔다. 우리 가족들과 일체 상의를 안 했지만, 집사람만 해도 지난번에 ‘피곤하지 않느냐’고 하더라. 결국은 ‘할만큼 하지 않았느냐’는 뜻이다. 공직생활 하는 동안 가족에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역할은 사실상 제로였다. 아침 일찍 나오고, 저녁 늦게 들어가고, 집에서 거의 밥 먹을 때도 없었다. 토요일 없이…이제는 가족과 함께 지낼 때 됐다.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 출불마 선언 기자 회견문 제목이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선택’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불출마 선언한 이후 언론인들도 저의 얼굴을 보고 ‘편안한 것 같다’고 했다. 지금도 만나는 분마다 ‘이젠 얼굴이 제 색이 돌아오는 것 같다’고 한다. 도지사 직책이 무거운 짐이다. 제 성격이 여러 사람과 어울려 다니지 못한다. 고독하게 생각하고 결심할 때도 많은 이와 상의하는 걸 못한다.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이제 해방되는 것 같다. 나도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앞으로 6월말 임기 끝나면 자유롭게 도민들과 함께 지내려고 한다.”

- 불출마 선언할 직후만 해도 ‘여론지지도’가 낮아 어쩔 수 없이 불출마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  2006년 7월1일 도지사 취임할 때부터 인기에 영합됨 없이 도민의 표를 의식하지 않고 옳은 길이라면 그 길로 가서 특별자치도 기반을 닦자는 일념을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 내 측근에도 ‘내가 다음 선거에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한마디 들어본 적 없을 거다. 언제고 나는 결심한다는 자세였기 때문에 (여론지지도가 높고 낮음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 김 지사께서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면 막후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게 아니냐는 눈길도 있다.

“자연스레 그런 여론이 돌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지사 출마라는 건 보통 결심이 아니다. 불출마를 (강택상 고계추)그 두 분에게 사전에 알릴 수도 없고, 한 적도 없다. 내가 불출마했기 때문에 두 분들도 이제 자기 인생을 도약시켜보자, 자기 꿈을 도정에 구현해 보자는 야심을 평소 갖고 있던 게 아니냐. 자연스런 출마라고 생각한다.”  

- 불출마 선언 이후 많은 분들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정에 대해 섭섭했던 부분, 오해가 있는 부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시민사회단체 간부들과도 만난 걸로 알고 있는데.
“도정을 이끌다 보면 도민들로부터 100% 찬성 받을 수 없다. 어떤 정책도 찬성 반대는 있다. 의견을 달리하는 분은 섭섭해 한다. 도정에 섭섭한 것은 결국 도지사인 저에게 섭섭한 거다. 지난 4년은 사실 앞만 보고 달려왔다. 옆을 볼 시간이, 아우를 시간이 없었다. 그게 아쉽다. 이제 옆도 보고 그 동안 섭섭해하고 못 만난 분들과 만나면서 그 분들에게 도정에 많이 참여해 달라고 당부하겠다.”

- 공직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아마 주민소환투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지난 과거 일이 됐지만, 당시 심정은 어땠나?
“그 때 많은 것을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직무 정지되고, 주민소환 돼서 강정마을에 민박도 하면서 도민들의 민심도 많이 들었다. 저 자신 뒤를 많이 돌아 봤다. 대단히 아쉽게 생각한 것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나로선 옳다고 하지만, 반대하는 분 의견도 좀 더 청취하고 많 이 토론했어야 좋았다는 아쉬움도 가졌다. 한편으로는 해군기지는 국가안보사업이다. 이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소환 받았어야 하느냐는 아쉬움도 있었다 . 결국 주민소환 이 무산됐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서로 아픔만을 가진 큰 상처다. 또 한편으론 주민소환을 하는 것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으로 정했기 때문에 도민의 당연한 권리다. 소환 받으면 적응하고 겸허히 수용하고, 저 자신도 되돌아 봐야 한다는 겸허한 자세로 지냈다." 

- 당시 상황이 섭섭도 하고, 때는 격분도 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는 당시 복잡한 심정을 내려 놓으셨는지. 
“사람이기 때문에, 어차피 감정의 동물이다. 감정이 없었다는 건 아니고, 그런 것도 있었지만, 한 40년 공직생활하면서 그런 것은 인내심으로 극복했다.”

- 해군기지 문제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최종적으로 법원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무엇보다 강정주민들의 상처 아픔을 치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불출마 한 이후에 해군기지 말고도 다른 시책과 관련해서 의견을 달리하는 분들을 만난다. 불출마 이전에 감도하고, 불출마 이후 감도가 상당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당시만 해도 도민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잇는 특단의 대책을 내 놓으라고 했는데…이번 불출마 선언을 하고 보니  불출마선언이 바로 도민 갈등해소 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임을 느꼈다. 많은 갈등이 이젠 눈 녹듯이 하나하나 녹아 내렸다. 도청 앞마당이 전에는 365일 1인 피켓시위가 벌어졌는데 불출마선언 이후엔 없다. 도민사회의 갈등이며 모든 것을 내가 짊어지고 가는구나 느꼈다. 강정마을도 언제고 대화한다. 남아 있는 임기 중 노력할거다. 내가 하는 게 책무다. 지금도 어느 정도 노력은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노력 기울여 나가겠다.” 

- 불출마 선언의 핵심은 ‘제주사회 갈등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거였다. 정책에 대한 찬반은 당연한 거지만, 갈등을 풀어 나가는 방법이나 지혜가 제주사회나 갈등의 양측이 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70년도부터 제주도정을 보면서 느끼는 게 제주는 개발과 보전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8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개발특별법이 잘 풀렸다면 제주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도민갈등 시책찬반이 지금은 상당히 완화됐다. 어떤 정책이든 빛의 그림자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림자를 어떻게 해소하고 보완하느냐가 문제다. 100% 그림자 없는 시책은 없다. 특별자치도를 왜 하나? 전국에 시행 안되는 특별한 것을 해보자는 거다. 영어교육도시 얼마나 어려웠나? 그러나 한고비 넘기니 반대의견이 없다. 투자개방형병원도 이제 고비를 넘어가고 있다. 앞으로 4~5년이 중요하다. 이 기간 동안 갈등을 잘 해소하면서 지금까지 온 길을 연속선상에서 나가면 제주도는 확실히 특별함이 있는 특별자치도로 나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제주엔 원로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또 ‘제주는 사람을 안 키운다’는 말도 한다. 원로가 없다. 사람을 안 키운다는 문제를 제주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외부에서 제주를 보는 따가운 시각을 우리들은 많이 느껴야 한다. 제주도민만 살 순 없다. 어차피 중앙의 벽을 해결 해야만 한다. 제주는 도세가 약하다. 인구 56만으로 중앙에 먹히겠느냐? 안된다. 우리 스스로 도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만 한다 인재를 키워야만 한다.  중앙부처 요직에도, 국회에도 제주인들이 많이 포진돼야 한다. 갑자기 할 수 없고 인재가 약하면 우리 우군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제주도를 도와주자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모든 게 원만하게 이뤄진다. 이번 선거에서 정말로 정책이 훌륭한 분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제주도가 앞으로 나갈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하는 분들을 선택해야 제주가 발전된다.”  

-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는데 일부 예비후보들이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공약으로 내건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번에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2005년에 도민사회에서 뜨거운 격론 끝에 도민과반수 찬성으로 혁신안이 가결돼 특별자치도가 출범했다. 지난 4년 이끌어 오면서 특별자치도 승부 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좀 더 특별자치도를 발전시켜나간다면 제주의 목표인 아시아 최고 수준의 국제자유도시에 접근할 수 있다. 4개시군을 부활하겠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도민들이 잘 선택하셔야 할 사안이다.”

- 지난 6년은 격동, 격변의 시기였다. 많은 성과들과 업적, 그리고 좌절의 경험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 “도정 참모로서, 제주시장, 남군수, 도지사를 해 오면서 느끼는 게, 지휘관은 옳은 길이라면  도민들을 설득해서 가야 한다. 너무 좌고우면 인기에 영합하면 안된다. 그러지 않으면 경쟁력에서 이기지 못한다.”

- 과거 인터뷰 자료를 뒤져보니, 2006년 1월1일 <제주의소리>와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공무원은 명예를 먹고 산다. 공직생활을 접고 떠날 때는 그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공무원으로 남고 싶다’는 말씀을 했다. 불출마선언이라는 지금 이 상황을 염두에 둔 건지, 아니면 평소 지론인지. 
“평소 생각이다. 제주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서 당시 내무부에 갔을 때, 솔직히 말하면 ‘고향 군수하면 한이 없겠다는 게 소망이었다. 그 이후엔 언제 사표 써도 좋다’는 소망을 키워왔다. 그런데 85년 40대 초반에 남군수를 했다. 온 정력 다 바쳤다. 그 때 저의 욕망은 달성됐다. 그 이후 공직생활 하면서 언제고 (그만둔다는)그런 생각을 갖고 공직생활 해 왔다.”

- 복잡하고, 힘든 문제도 많지만, 그래도 ‘제주’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섬으로 부상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앞으로의 비전이 어떤지,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 승부수가 있다. 10여년 전만해도 제주는 대한민국 자그마한 변방이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제주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고, 평화의 섬으로 선포됐다. 한아세안 정상회담을 하는 곳이다. 아직 도민들의 체감지수는 낮지만 특별자치도 희망은 분명히 갖고 계실 것이다. 어느 언론 여론조사에서 젊은층 학생 80%가 특별자치도가 희망이 있다고 답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제주도는 무한히 발전해 나갈 수 있다.”

- 퇴임 후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공직생활 해오면서 최근 느낀 것은 봉사활동 해보고 싶다. 행정부지사를 한 이후에 1년간 적십자사 지회장으로 1년간 활동 했다. 봉사활동을 퇴임한 이후에 좀 하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다. 도민과 함께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하고, 도민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고, 도민들의 눈물도 닦아 줄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해 봤으면 한다.”

- 2012년에 김 지사가 유치한 WCC총회가 열린다. 혹 김 지사께서 자원봉사 단장으로 총회를 이끌 생각은 없는지.
“좋은 생각이다. 제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2012년 WCC 총회는 환경올림픽으로 180개국에 참여자만 1만여명이다. 지금부터 대비를 하고 있지만, 게을리 하지 않아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다. 도민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 친환경적인 생활습성과 국제적 마인드를 도민들이 가져야 한다. 제주에 오시는 1만여명이 제주를 샅샅이 살피고 돌아갈 때 제주홍보대사가 된다.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 64년 9급공무원으로 출발해 관선 남군수,제주시장, 민선제주시장, 제주도지사에 이르기까지 행정부지사를 퇴임하고 대한적십자사 제주지사회장을 맡은 1년을 제외하곤 45년 동안 공직에 몸담았다. 이제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고 있는데 도민들에게 마지막 인사 부탁드린다.
“그동안 제가 한평생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특히 지난 6년 도지사 생활 하는 동안 도민사랑 너무 받았다. 제게 사랑 베풀고, 도정에도 적극적으로 성원을 보내주신 도민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남아 잇는 기간 동안 흔들림 없이 도정 이끌겠다. 당면사안인 4단계 제도개선, 일자리 창출, 한중일 정상회담도 성공적으로 이끌도록 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끝까지 제주도정에 성원 보내주기를 이자리 빌어 간곡히 부탁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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