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교과서 왜곡 등 최근 일본이 보여주는 역사적 방동에 대해 제주민족작가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경훈 시인이 보내 온 시입니다.

 

       그래,  나 친일파다

                                                                             김경훈

                                   

그래, 나 친일파다
친일 청산을 한다면 우선 나부터 숙청해라

요즘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김행대 김민수 김석범 조동현 고정자 양영희 시게오 요시자와 무라카미 나오코 오광우 김양숙 다카무라 료헤이 김창생 김민주... 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친일이라면 그래, 나 친일파다

일본은 있다느니, 일본은 없다느니
일본의 두 얼굴, 한 손엔 국화 한 손엔 칼이라느니
그런 말을 하지 말자
칼을 든 일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나 친일파다

극일이라느니
항일이라느니
배일이라느니
그런 말도 쓰지 말자
그래, 나 친일파다

이완용과 송병준이 나라를 팔고 박정희 김종필 나라를 말아서 다시 팔고 한승조와 지만원이 나라를 말아서 등치려고 환장해도
그래, 나 친일파다

정신대할머니들을 삼키고 그 눈물과 한숨과 징용의 노역과 징병의 생명을 다 삼키고서도 부끄러워할 줄 몰라도, 후안무치의 찬란한 제국의 부활을 꿈 꿔도
그래, 나 친일파다

땅을 넘보고
역사를 넘보는 건
내 몸을 넘보고
내 마음을 넘보는 것
내가 갈보가 아닌 이상
그러면 순순히 다리를 벌리겠느냐
그래, 나 친일파다

그래, 나 친일파다
친일의 이름으로, 너의 목을 베기 위해 너와 친해지마
비수를 숨긴 채 겉으로 웃는 너를 닮으마
너의 땅에 살고 있는 내 나라 동포들을 위해
그래, 내가 친일파가 되어 주마
너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주마

그래, 나 친일파다
극일이라느니
항일이라느니
배일이라느니
그런 말을 쓰지 말자

다만,
일장기를 말소하듯이
지상에서 가장 과격한 말인
씨를 아주 말리자고
멸종이라고 쓰자

그래, 나 친일파다
친일의 이름으로
나카사키 히로시마 그 원폭의 위력을 돌려주마
아예 한 5천년 정도는 회생할 수 없도록
아예 바다로 가라앉아서 물밑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나의 친일을 돌려주마

그래, 나 친일파다
너의 죽음을 재촉치 않으려건
나를 먼저 청산하라

김경훈
1962년 제주 출생. 1992년『통일문학통일예술』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운동부족』,『고운 아이 다 죽고』,『한라산의 겨울』. 희곡집『살짜기 옵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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