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14) 가부장제의 반역자 - 조천리김시숙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김시숙 묘비 김은희

김시숙(金時淑)은 1880년 음력 2월 24일 신좌면 조천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며, 여성운동가이다. 두 번의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숙부 김문주를 찾아가 물으니, "책 속에 세계가 있고 글 속에 개화 문명이 있다."라고 했다.이 말을 들은 김시숙은 40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매진하게 된다. 1919년 3월 만세운동 때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걸 보고 더욱 공부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

조천리 마을사람에게 김시숙에 대해 묻자, ‘아~ 야학하던 사람~’, ‘막 나이 먹어서 공부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김시숙이 공부를 한다는 것은 항일운동의 시작을 의미했다. 자연히 최정숙, 강평국과 같은 신식여성들과 만나게 되고, 마침내 1925년 이들과 함께 제주여자청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특히 조천리에 여성야학을 개설하여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내용을 가르쳐서 조천주재소에 검거되고 요시찰인으로 낙인이 찍힌다.

김시숙은 조천 김해김씨 자손으로 김시용, 김운배, 김문준 등 독립운동가 집안의 출신이다. 김시숙은 1927년 일본에서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교포 여성들이 더한 착취를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김시숙은 재일여공보호회를 조직하여 이들을 보호하고, 노동소비조합의 회장이 되어 여공들의 복지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무정부주의 운동가 고순흠이 조직한 신진회에 가입하여 여성부의 책임자를 맡아 몸을 사리지 않고 활동한다.

그러다 결국 과로로 쓰러져 1933년 7월 15일 오사카의 적십자병원에서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시숙의 장례식 때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각 여성 김시숙 호상부인회>를 조직하여 일본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제주로 운구하기 전에 성대한 고별식을 가졌다.

그녀의 비에는 죽암 고순흠이 직접 비문을 썼다. 김시숙의 비석에는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빼곡히 비문이 새겨져 있다. 자세히 살피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다.

재래의 불합리한 도덕과 윤리는 특히 여자의 개성과 인권을 무시했다. 그 결과 약자는 거기에 순종하였으니 강자는 반역케 되었다. 반역자는 왈 탕녀, 순종자는 왈 烈婦란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史實에서는 순정의 愛도 진정한 貞操도 발견할 수 없다. 남성이 그것이 없는 이상 여성에게만 그 존재가 설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모순된 사회에 있어 진정한 열부라면 충실한 반역자 무리일 것이며 동시에 비참한 시대적 희생 계급이다. 이 계급의 1인인 김시숙 씨는 고종 17년 경진 2월 24일 조천 閥門海 金종가 출생으로 眉長俊隆하고 大人남자와 같은 개성의 소지자이다.

어찌 夫權전제주의의 맹목적 현모양처주의에 肯從할 수 있었으리오. 결국 결혼 생활은 실패하고 40세에 궐기하여 初學을 略修한 후 부인 黎明및 幼年 교육을 개척하고 渡日하여 工女勞動消組의 창업과 守成운동에 몰두하다가 시기가 不遇인지 그 사업도 모두 소멸되고 자신도 54세 되던 癸酉7월 15일 대판 적십자병원에서 주인 없는 송장을 이루고 말았다. 그래서 기구한 처지가 같은 여성들끼리 護喪부인회를 조직하여 返柩하고 黃鷄山아래 累塚가운데 비석까지 세우게 되었다. 명왈‘철저한 시대적 희생자며 충실한 여명 운동가여! 님의 몸은 비록 구학(溝壑)의 진흙이 되었으나 님의 피와 땀은 광명의 천지에 만인의 생명으로 나타날 날이 있으리라’韓亡後 27년 병자 7월 15일 세움. 고순흠 근지
- 『20세기 제주인명사전』(김찬흡, 2000)

김시숙 묘는 조천공동묘지 내 김해김씨 묘역 첫줄 가운데 안장되어 있다. 보호수인 소나무를 기준으로 하면 찾기 쉽다. 당시 비석도 그대로이다. 이곳 묘역에는 김문준의 묘도 있었으나 2005년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되었고, 그의 비석은 조천항일기념관 야외 공원으로 옮겨졌다. / 김은희

* 찾아가는 길 : 조천리 우회도로→양천동→양천상동→김씨 공동묘지 내→가운데 소나무 있는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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