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연이은 좌절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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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제주의소리

미국의 건보개혁이 모든 사람이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는 상태, 즉 국민개보험(國民皆保險; Universal Healthcare)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면 지난주 서명 공포된 미국의 의료보험 관련법은 하나의 큰 성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법은 선택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을 존중하는 미국의 전통과 국가의 기능을 강조하는 유럽적(?) 가치 사이의 충돌을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전국민의 보험가입을 의무화하는 초강수를 두면서도 정작 보험시장은 몇 가지 규제를 신설했을 뿐 원칙적으로 민간에 맡기고 있다. 보험이 없는 자에게는 벌금을 물리지만 소득에 비해 보험금 지출이 부담이 되는 계층에게는 정부가 현금으로 보조를 한다. 그러면서도 보험시장은 국영화하지 않겠다는 것이 소위 오바마 케어의 골격이다.

미국 통계청의 2007년 자료에 의하면 인구의 15.3%에 해당하는 4600만 명의 무보험자 가운데 3분의 1은 가구당 연간 소득이 5만 불을 넘는 중산층이었다. 미국의 의료보험료가 턱없이 비싸다는 사실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가입은 의무, 보험은 민영

병이 나면 그 때 가서 자기 비용으로 고치겠다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한다면 건강보험 없이 무방비로 사는 인구가 많음을 수치로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국민 건강을 국방이나 교육과 같이 국가가 일정 부분 나설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필요한 행보를 취해야 한다.

영국의 ‘국민건강서비스’, 캐나다와 호주의 ‘메디케어’ 등의 경우는 건강보험을 위한 재원을 전 국민으로부터 세금 형태로 정부가 직접 받는다. 또한 건강보험금의 지급, 즉 의료서비스에 대한 비용의 지급도 정부가 한다.

이런 제도를 단일지급창구 시스템(Single-payer System) 또는, 세금으로 재원이 조달된다 하여 ‘공적자금에 의한 건강보험’(publicly funded healthcare)이라고 부른다. 이 제도 하에서는 돈줄을 쥐고 있는 단일지급창구가 의료기관의 비용청구를 감독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미국에도 이런 제도가 있긴 하다. 65세 이상의 노인을 위한 메디케어(Medicare)는 제한된 대상에 관한 한 전형적인 단일지급창구 시스템이다. 이 제도를 전 연령층으로 확대하자는 ‘메디케어 개선 및 확대시행을 위한 법안’이 2003년 이래 의회에 계류 중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보험시장에서의 반대 때문이다. 자칫하면 존재 자체가 부정되거나 기껏해야 치과나 안과, 또는 고가의 처방약 등을 커버하는 보조적 보험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한 보험 회사들의 로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판도에서 오바마가 택했던 길은 국영보험회사를 설립해 기존의 사설 보험회사들과 경쟁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가 직접 했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국영보험사에 대한 정부의 보조는 일체 없도록 약속한다, 이들의 경쟁력은 임원보수를 포함한 일반관리비의 절감에 있다. 국영보험을 선택할 권리, ‘퍼블릭 옵션’(Public Option)을 소비자에게 주자는 것뿐이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사설보험회사들이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친절한 서비스를 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는 이 대안마저 포기해야 했다.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막을 수 있는 의석 60개를 확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야당의원들의 서슬로 보아 도저히 상원통과를 기대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가 찾아낸 최후의 방법은 작년에 상원을 통과한 ‘상원 버전’ 그대로를 하원에서 통과시키자는 것이었고 이것이 관철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퍼블릭 옵션’ 조항이 없다.

오바마의 개혁은 국민개보험은 달성했으나 필요한 제도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제도를 바꾸었으면 나머지 문제는 시장에서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을 이제는 수많은 규제를 신설해야 했다. 사설보험회사가 보험거절을 못하게 금지하고 일반관리비 및 이윤의 합계가 보험료 수납액의 20%를 넘지 못하게 하는 등이다. 규제한다고 제대로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오바마 연이은 좌절 가능성

전면적·일회적 개혁도 있고 부분적·점진적 개혁도 있다. 국영 보험회사가 사설 보험회사를 일거에 대체하는 것은 전자의 방법이고, ‘퍼블릭 옵션’을 도입해 국영과 민영이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것은 후자의 방법이다.

그러나 오바마 개혁은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의료비용을 효과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그의 개혁은 ‘점진적으로’ 좌절되는 비운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그 경우 대통령의 리더십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며 다른 어떠한 개혁도 함께 어려워질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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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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