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20) 와흘리 와흘본향당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와흘본향당 신과세굿 ⓒ김순이

제주에는 아직도 신앙인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은 당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곳은 와흘본향당일 것이다.

제주의 신당에는 그 당의 내력담(來歷談)이라 할 수 있는 ‘본풀이’가 딸려 있는데 와흘본향당의 스토리는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가 있다.

이 당의 주신은 제주도의 무조(巫祖)라 할 수 있는 송당 금백주 여신의 열한 번째 아들이다. 그는 한라산에서 사냥이나 즐기며 살아가는 신이었고 원래 이곳에 좌정해 있던 신은 서정승따님아기였다. 여신은 아기 셋을 데리고 혼자 살면서 마을을 보살펴주고 있었다. 그러다 이 마을 외다리 할아버지가 중매를 놓아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 첫눈에 반하여 함께 살게 되었다.

여신은 임신을 하였고 평소에 먹지도 않았던 돼지고기가 뜬금없이 먹고 싶어졌다. 고기를 구할 수 없자 할 수 없이 돼지털을 몇 가닥 뽑아서 불에 그슬려 그 냄새를 맡음으로써 식욕을 달랬다. 그런데 외출했던 남편은 돌아와 집안에 더러운 냄새가 진동한다면서 역정을 낸다.

“임신하더니 느닷없이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서 그만…….”
“에잇, 더러운 식성을 가진 당신과 함께 상을 받을 수가 없소!”

이 장면에서 우리는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옛 말을 떠올리게 된다. 원래의 집주인을 느닷없이 식성을 트집 잡아 내쫓고 자기가 주인 행세를 하는 뻔뻔함이니. 그는 호시탐탐 여신의 약점을 잡을 기회를 기다려왔다고 보아야 한다. 그 식성도 따지자면 자신의 아기를 임신하였기에 생긴 일시적인 것인데도 말이다.

이 신화에서 우리는 조선시대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우던 남성상을 보게 된다. 능력은 별로 없으면서 큰소리로 여성을 윽박지르고 무시하면서도 어른으로 군림하여 대접받기를 바라던 그 허세. 그렇게 해서 남신은 제단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서 마을굿 때는 상이란 상은 모두 받아 잡수신다.

연하의 남편에게 쫓겨난 여신은 제단에서 아예 떨어진 동쪽 구석에 쪽방을 차리고 살고 있다. 총각인데다 호걸의 기상을 가진 미남자였기에 그런 구박을 하리라곤 전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당의 중심에 서있는 팽나무의 굵은 가지는 모두 여신이 있는 곳으로 뻗어있다. 이른바 생기복덕(生氣福德)의 기(氣)가 전부 여신이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남신이 있는 곳은 나뭇가지도 가늘고 썰렁한 분위기다.

실제로 신앙민들도 제단에는 마을에서 공식으로 당굿을 할 때만 제물을 차려간다. 그러나 여신에게는 답답하거나 하소연하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가 촛불을 켜놓고 마주한다. 마음으로부터 승복하는 신, 그 권능과 영험을 인정받고 있는 팽나무 신전의 진짜 주인은 서정승따님아기인 것이다. / 김순이

*찾아가는 길 : 와흘리→교통대 사거리→북쪽도로로 와흘리→동쪽 2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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