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돈 칼럼] 디지털 이미지로 만난 역사와 예술

사회 변혁을 놓고, 또는 문학·예술의 진로를 놓고 끝도 없는 이념 논쟁으로 사투(사상 투쟁)를 벌이며 날밤을 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가물가물한 추억의 갈피로만 회자되는 80년대의 풍경. 그런데 박경훈에겐 아직 386 운동권 세대에서 풍기는 이런 전형적인 ‘싸움꾼’의 풍모가 남아있다. 그가 속한 미술 단체의 이런저런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 선후배, 동료들과 부딪치며 소리 높여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런 모습이 여러 사람들에게 간혹 과격하게 비춰지기도 하지만, 80년대란 엄혹한 시대 상황의 한복판에서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정의로운 민주의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실천하며 체질화된 생활 스타일로 좋게 이해할 수도 있다.

4월 제주전을 시발로 광주와 부산, 청주, 인천 등 10월까지 전국을 도는 순회 개인전을 기획한 의도에도 몸에 배인 80년대 미술 운동의 향수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주로 단체전과 기획전을 무대로 작업했던 지난 10년간의 발자취를 정리하면서 이를 작가로서 새로운 자기 모색의 전기로 삼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련의 작업에서 박경훈이 천착하고 있는 주된 테마는 4·3과 미국이다. 그는 탐라미술인협회가 올해로 12회를 기록하는 4·3 미술제에 매회 참여하면서 4·3과 4·3의 참극을 배후에서 원격 조종한 미국에 주목하였다.

이번 순회전에 전시된 작품의 대다수는 1회 때부터 지금까지 4·3 미술제에 출품되었던 것들이다. 탐미협 회원들이 공유하고 있듯이 그에게 4·3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 전략에 포획된 이승만 친미반공 정권의 국가 폭력에 의해 3만 이상의 무고한 제주도 양민이 희생된 피의 학살극이며, 제주섬 공동체의 유린에 제주도민이 온 몸을 던져 저항한 ‘자주항쟁’의 역사이다.

그의 작품엔 이러한 역사 인식을 튼실한 지반으로 삼아 당대의 모순을 고발하고 증언하는 리얼리즘의 정신이 녹아들고, 그 속에 심미적 상상력이 촘촘한 그물망으로 얽혀있다.

   
연필로 그린 후 촬영한 사진을 실크 스크린으로 확대 전사한 '언어연구-빨갱이'를 보자. 당시의 기록 사진에서 차용한, 하르방과 할망, 아기를 업고 안은 아낙네, 검정 교복과 교모 차림의 천진한 표정의 초등학생, 그 또래의 무심한 단발머리 소녀 등 다섯 도상은 그 시대를 살았던 전형적인 인물이다. 이 위에 박경훈은 ‘대한민국을 위해선 제주도 전토에 휘발유를 뿌리고 거기에 불을 놓아 30만 도민을 한꺼번에 태워 없애야 한다’는 1948년 미군정 경무부장 조병옥의 ‘어록’을 붉은 글씨로 박아놓았다. 그것은 섬에서 태어났다는 죄 하나로 ‘빨갱이’의 낙인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던 순진무구한 백성들의 처절하고 서글픈 초상이다. 대학살의 불길한 전조가 된 조병옥의 이 끔직한 선동 문구는 거꾸로 국가폭력의 죄상을 고발하는 기소장이 되어 역사의 법정으로 되돌아온다.

나열된 희생자들의 사진 위에 ‘동족끼리 싸우게 하라’는 미국의 제3세계 저강도 전략의 구호와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무장대의 구호를 동시에 새겨 넣은 포토 콜라주 '저강도 전쟁-동족끼리 싸우게 하라',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4·3과 민주화 운동, 이라크전에 이르는 기록 사진 위에 각각 반도(叛徒)·불령선인(不逞鮮人)·빨갱이·테러리스트 같은 붉은 글씨를 대치시킨 '그들' 역시 한 때 불온의 대명사였던 구호를 오히려 역사적 정당성의 획득을 암시하는 기호로 전치시킴으로써 이미지(구호)의 대비가 가져오는 시각적, 인식적 반전을 강렬하게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4·3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그 배후를 환기시키고, 미국의 패권주의 이데올로기를 고발하는 작품에 단골로 대비되어 등장하는 도상은 주로 성조기와 조지 부시의 얼굴, 그리고 미국의 침략 전쟁으로 인한 약소국 민중들의 비참한 모습들이다.

횡으로 길게 늘어선 성조기 하나하나마다 전쟁의 참화로 슬픔에 잠긴 이라크인들의 모습을 합성한 '자유의 깃발'은 성조기의 띠가 마치 감옥의 쇠창살과 같은 이미지로 둔갑하여 그 너머로 투영되는 어린 아이들의 비탄과 절규가 강한 울림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미국이 높이 드는 정의와 자유의 깃발은 불의와 억압의 화살이 되어 제국주의 침략을 미화하는 역설적인 기호로 의미화 될 것이다.

세 개의 성조기 가운데에 이라크전에서 불구가 된 목발의 소년을, 좌우에 각각 연설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의 사진을 배치한 '위대한 성조기-불구동맹'은 국익으로 포장된 한미동맹도 미국의 패권이 용인되는 한 그 속에 항상 치유될 수 없는 불구의 씨앗이 잠재돼 있음을 함축적으로 전한다. 전쟁의 참화를 당한 일그러진 어린이들의 흑백 사진과 입 주위를 클로즈업한 부시의 컬러 사진을 모자이크 식으로 서로 대비시켜 합성한 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어느 나라에서든 전쟁의 가장 큰 피해는 익명의 민간인, 그 중에서도 어린이, 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그 참담한 약자의 비명 앞에 전쟁의 정당성을 갖은 수식어로 분칠하는 아메리카의 장광설은 곧 초국적 자본과 일란성 쌍생아인 제국의 폭력성을 전파하는 메가폰일 뿐이다.

여러 작품들 속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그림이 있다. 토벌대의 총격으로 후유 장애를 앓고 있는 세 사람의 몸과 얼굴 사진 위에 빨간 색깔로 ‘나도 때론 뽀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따’, 노란 색깔로 ‘Y2K’란 문자를 프린트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천 년의 역사가 저물어가던 1999년, 밀레니엄 버그를 뜻하는 ‘Y2K’가 빈번하게 메스컴에 오르내리던 그 해, 서갑숙이란 한 여자 연기자가 쓴 동명의 자전 에세이가 장안의 화제를 불러 모았던 때가 있었다. 베스트셀러란 날개를 달고 상품물신성으로 포장된 서갑숙의 포르노그라피 - 예쁜 몸의 기호와 평생을 턱이 날아가 버린 흉한 얼굴로, 살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속에서 깊은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끔직한 몸, 포스트모던한 물신의 폭력성과 국가에 의한 물리적 폭력성, 이 극단적으로 상반된 두 적나라한 이미지의 충돌이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골 때리는’ 선정성으로 관객의 시선을 불편하게 한다.

다소 무겁고 직설적인 조형 어법으로 형상화된 전작에 비해 '환생꽃-이덕구'와 '환생꽃 동백-이덕구'는 은유적인 조형 어법을 구사하여 가슴 속을 촉촉한 서정의 비장미로 젖게 한다.

한라산과 오름 어디서나 쉽게 마주치는 인동초·모시대·달귀풀·한라부추 등 제주의 야생화와 학창 시절 이덕구-그는 김달삼의 뒤를 이어 무장 유격대의 최고 지휘관이 된 인물이다-의 흑백 사진 이미지를 모자이크 식으로 조합하거나 이덕구의 흑백 사진 둘레를 선홍빛 동백꽃의 이미지와 합성시켜 젊은 나이로 비명에 스러진 전설적인 파르티잔이 제주 산야의 야생화나 동백꽃으로 거듭 아릅답게 환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민중의 세상을 열기 위해 싸웠고, 죽어서 역사의 아들로 되살아오는 한 문제의 인물에게 작가가 바치는 넋살림의 엄숙한 제의이며 헌화가이다.

4·3 수형인이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를 실크스크린으로 확대 전사한 '님-기별'은 애틋하고 눈물겹다. 누렇게 빛바랜 5전짜리 ‘해방조선’ 관제 우편엽서엔 군검열관의 도장과 단기 4282년(서기 1949년) 3월 16일자 소인이 선명히 찍혀 있다. 어느 날 산에서 또는 집에서 잡혀와 산지포 주정 공장 창고에 갇혀 있다 약식 재판을 받고, 대전과 김천 서대문 등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이감된 사람들. 엽서 위에서 이들은 얼굴 없는 영정으로 떠 있거나 희미한 실루엣으로 멀어지고 있다. 이들은 빨갱이가 되어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 56년의 세월을 견딘 한 장의 엽서만이 남아 4·3의 비극을 쓸쓸히 전하고 있다.


   
박경훈은 1995년 갤러리 제주아트 개관 기념 초대전으로 열린 '높은 오름, 너븐 드르'를 제외하면 지난 10년간 줄곧 디지털 기법에 의한 이미지 합성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것은 아마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출판 기획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일상적인 작업 환경이 주는 매체의 친숙함과 기술의 숙련도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이미지의 합성, 즉 한 화면에서 두 가지 이상의 이미지 충돌이 주는 몽타주의 시각적인 효과를 생각한 미학적 고뇌의 산물로 보인다. 몽타주는 하나와 다른 하나의 대립이 변증법적으로 지양되어 고차원의 종합에 이르는 예술 창작 과정이다.

몽타주 기법은 1925년 러시아의 영화 작가 에이젠 슈체인의 무성 영화 '전함 포쳄킨'에서 최초로 도입되었다. 이 영화에서 에이젠 슈체인은,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와 짜르 진압군의 발포로 피흘리며 스러지는 엄마의 일그러진 표정과 엄마를 놓쳐 비틀거리며 계단을 굴러 내려가는 유모차의 바퀴를 클로즈업한 쇼트를 서로 결합시켜 전제군주의 압제와 민중의 고통을 극렬하게 표출했다. 이 오데사 계단의 학살 장면을 놓고, 훗날 영화사가들은 ‘세계 영화사를 변화시킨 6분’이란 수사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몽타주는 몇 개의 시각 이미지를 잘라내어 하나의 프레임 속에 재조립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형식적 불일캄 그리고 시공간의 비연속성과 비동시성에서 이미지의 반전 효과를 이끌어낸다. 낯선 이미지의 정교한 결합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시각적, 인식적 효과는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 정신이다. 최근 사이버상에서 네티즌들이 많이 애용하는 정치 패러디물도 이러한 형식의 차원이며, 박경훈의 일관된 디지털 합성 작업도 같은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전통 사실주의 회화가 추구해왔던 ‘대상의 리얼리티’에서 ‘시각의 리얼리티’로의 미술의 방향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경훈의 작업은 컴퓨터 그래픽에 의해 합성된 디지털 이미지가 인화지나 천으로 프린트된 물질의 형태를 띠고 전시장에 걸린다는 점에서 전통 회화와 순수한 비물질적 정보로만 존재하는 본격 디지털 아트의 중간 지점에 놓여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전통 상업예술이 갖는 물신화된 아우라의 경배(‘예배적 가캄)를 벗어나 기계 복제 예술이 갖는 이점을 십분 살려 ‘전시적 가캄의 극대화를 노리면서도 순수한 정보 예술의 매체 한계를 극복하여 보다 폭넓은 소통을 꾀하고자 하는 작의에서 나온 것이리라.

역사와 예술이 디지털 이미지로 만났다. 그의 머리와 손은 디지털 이미지의 합성 작업에 익숙하지만 가슴은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감성 코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 포스트모던한 디지털 정보로 재단하기엔 4·3의 역사 인식은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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