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미의 제주여행(16)] 서귀포 칠십리 해안

▲ ⓒ양영태
우리는 흔히 '서귀포' 하면 '서귀포칠십리'를 떠 올린다.
서귀포칠십리(西歸浦七十里)가 국내에 널리 알려진 직접적인 동기는 1938년대에 '조명암'에 의해 노랫말이 지어졌고, '박시춘'이 작곡하여, '남인수'가 노래한 '서귀포칠십리'가 불려지면서 부터라고 한다.
당시 일제치하에 억눌려 살았던 국민들에게 끝없는 향수와 애틋한 그리움을 이끌어 내면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서귀포칠십리의 사실 기록은 1423년(세종 5년) 안무사 정간(鄭幹)에 의해 정의현청(고성)이 현재의 표선면 성읍마을로 옮겨지면서 70리의 거리적 개념이 싹트게 되었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에 의해 발간된 '탐라지'에 의하면, '서귀포는 정의현청에서부터 서쪽 70리에 있다'고 전하고 있다.
서귀포칠십리가 처음에는 정의현청이 있었던 현재의 성읍마을에서 서귀포구까지 거리를 알려주는 개념이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서귀포칠십리가 단순한 '거리개념'이 아니라, 서귀포의 아름다움과 신비경을 대변하는 고유명사로 자리잡혀 왔다.

서귀포칠십리 앞 해안을 바다에서 둘러 보자.
그 곳은 육지에서 바다를 보는 풍광 못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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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항은 해안절벽의 웅장함과 파란 물결 위에 두둥실 떠있는 섬들의 수려함으로 빼어난 미항(美港)의 하나이다.
지금도 미항으로 더욱 개발하기 위한 노력들이 한창이지만, 미항은 항구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항구를 둘러싸고 있는 도시 또한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것이다.

서귀포항에 들어 서면, 어선과 화물선의 부산함, 해안선과 섬 주위를 유람하는 유람선의 경쾌한 뱃고동, 해저의 신비를 찾아 나서는 잠수함과 스쿠버들의 활기찬 모습이 함께 어우러진, 자연과 인간의 하모니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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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냥 잡담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유람선선착장에서 남서쪽 새섬으로 뻗은 방파제가 시작되는 절벽밑에는 집채만한 큰 바위덩어리들이 해안 일대에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곳이 천연기념물 제95호로 지정된 서귀포층의 패류화석지대로서, 중생대말의 백악기에 바다속에 있던 해양생물들이 묻힌 퇴적암이 융기하여 단애를 형성하였으며,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패류화석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곳에서는 패류화석 이외에 산호화석, 어류등뼈, 연체동물, 저서성(底棲性) 및 부유성 유공충(有孔蟲)등의 크고 작은 동물화석들이 새로이 발견되고 있다.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어 좋고, 아이들과 같이 있다면 좋은 공부방이 될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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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바로 앞에는 섬이 하나 있다.
해송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이 섬의 이름은 '새섬'이다.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봉우리가 깎여 이곳으로 날아와 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 섬은, 선착장에서 이어진 방파제를 따라 썰물 때에는 건너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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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을 떠난 유람선은 서귀포항과 새섬 방파제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뱃머리를 동쪽으로 향했고, 서서히 해안의 절경을 보여 주기 시작한다.
소남머리 절벽을 지나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눈부심은 폭포였다.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인 정방폭포는 높이 23m, 폭 8m, 깊이 5m에 이른다.
웅장한 폭포음과 쏟아지는 물줄기에 햇빛이 반사되면, 일곱색깔의 무지개가 푸른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신비의 황홀경을 연출한다.
예로부터 이곳을 정방하폭(正房夏瀑)이라 하여 영주십경의 하나로 삼았다.
해변을 끼고 높이 치솟은 절벽에는 노송이 바다로 나뭇가지를 드리워 넘어질 듯 서있으며 각종 수목이 울창하다.
정방하폭이라 함은 여름의 정방폭포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리라.
전설에 의하면 2000년전 중국 진나라 시황제 때 사자인 서불이 시황제의 명을 받아, 영주산(한라산)에 있다는 불로초를 캐기 위하여 동남 동녀 500쌍을 거느리고 찾아 왔다가 돌아가면서 정방폭포의 암벽에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으로 서불과지(徐市過之)라 새기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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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의 반짝임이 채 가시기 전에 우리는 다시 해안절벽을 만난다.
화산폭발에 의한 용암이 해안까지 흘러 내려와 식은 화산암으로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는 거문여해안이다.
거문여해안은 정방폭포가 가까이 있고 소정방폭포와도 연결되어 있는 천혜의 해안경승지이다.
각종 나무와 새소리, 갯내음이 어우러진 이 일대는 연인들의 산책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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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경승지의 매력에 빠져 설레이던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섬을 만난다.
바다 가운데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위에 짙푸른 난대림으로 덮여 있는 섶섬은 서귀포 해안의 또 다른 풍광을 가지고 있는 섬이다.
섶섬은 전체가 상록수림으로 덮여 있는 자연식물원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천연기념물 파초일엽의 자생지로 알려져 있다.
섶섬은 파초일엽의 본종이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의 한계선으로서 식물지리학상 중요한 지점으로 보존되고 있다.

"옛날 이 섬에는 용이 되려고 꿈을 꾸는 큰 뱀이 살고 있었다.
그 뱀은 항상 용이 되고 싶어 매달 정월 초하룻날과 여드렛날이면 용왕에게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용왕이 나타나 "섶섬과 지귀섬 사이에 숨겨둔 구슬을 찾아내면 용이 되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뱀은 용왕의 말대로 숨겨둔 구슬을 찾으려고 두 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무려 100년 동안이나 고생하였으나 구슬은 찾지도 못하고 원통한 나머지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비가 내리려고 하면 섶섬에는 늘 짙은 안개가 끼곤 하였는데, 죽은 뱀의 혼이 안개가 되어 섶섬 산마루에 서리는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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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섬을 지나 서쪽으로 향하면 서귀포 주변에 있는 5개의 무인도 중 하나인 문섬을 만난다.
서귀포항에서 1.25㎞ 정도 떨어져 있는 이 섬은 천연기념물 제4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섬은 해발 73m의 무인도로, 수중에는 난류가 흐르고 있어 사시사철 아열대성 어류들이 서식하며 각종 희귀 산호들이 자라고 있어 국내 최고의 수중생태계의 보고이다.
섬에는 거목의 담팔수나무 등 상록난대림이 울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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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섬을 지나면 만나는 또 하나의 무인도 범섬도 천연기념물 제421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거문도와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물푸레나무과의 박달목서가 자생하고 있는 이 섬은 수직으로 된 주상절리가 잘 발달된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무인도로 섬 주위에는 해식동굴들이 있다.
해발 87m 인 범섬은 몽고지배 10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 범섬 '큰항문이도' 해식동굴.ⓒ양영태

문섬과 범섬은 제주도의 기반 암석인 현무암이 아닌 조면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주상절리와 해식동굴이 발달된 아름다운 섬이다.
또한 제주에만 자생하는 큰보리장나무 군락과 흑비둘기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 범섬 '콧구멍' 해식동굴.ⓒ양영태

옛날 어느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는데 그만 실수하여 활집으로 옥황상제의 배를 건드렸다.
크게 노한 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집어 던졌는데, 그것이 흩어져서 서귀포 앞 바다에 문섬과 범섬이 되었고,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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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둘러 본 유람선은 다시 육지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육지를 바라 보면 멀리서 보기에도 커다란 오름이 눈에 들어 온다.
고근산이다.
봉우리에 원형분화구를 갖고 있는 오름으로, 정상에 서면 멀리 마라도에서부터 지귀도까지 제주바다와 서귀포의 풍광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특히 밤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서귀포칠십리 야경을 보려면 고근산이 적지이다.
이 오름은 전설상의 거신(巨神)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정상부를 베개 삼고, 고근산 굼부리(분화구)에는 궁둥이를 얹어 앞바다 범섬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서 물장구를 쳤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석으로 사람들이 부쩍 늘면서 새로운 운동휴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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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작업을 하던 해녀들이 반기는 서귀포 해변은 낚시천국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연중무휴로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다.
바다낚시터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안 전역이 낚시터이며 철따라 잡을 수 있는 어종도 다양하다.
갯바위 낚시와 배낚시를 주로 즐길 수 있고, 잡히는 고기는 주로 돌돔, 참돔, 자바리, 벵어돔(흑돔), 감성돔 등이다.
낚시의 적기는 5월부터 11월 사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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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봉은 시민공원이자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이며, 서귀포를 지키는 수문장이다.
정상에 세워진 팔각정인 남성정에 오르면 서귀포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범섬, 문섬, 새섬, 섶섬 그리고 서쪽으로는 마라도와 가파도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밤에 손을 뻗으면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에 닿는다는 전설이 어려 있는 이 오름은 사람의 수명과 관련된 별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불로장생의 상징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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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봉과 외돌개 사이에는 40여m의 깎아지른 수직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곳은 걸어서 갈 수 없는 급경사의 수직단애로 곳곳에 해식동굴이 많이 발달되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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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돌리면 오랜 세월을 바람과 파도에 씻기면서도 버티고 서 있는 외돌개를 만난다.
둘레 약 10m, 높이 20m의 기암으로 장군석'이라 부르기도 하는 외돌개는 바닷가에서 해파의 차별침식에 의해 여러개의 해식동굴이 주변에 형성됨에 따라 고립되어 홀로 남아 있는 갯바위 기둥이다.
고려말 최영장군이 서귀포 앞바다 범섬에서 원나라의 잔류세력을 토벌할 때 외돌개를 장대한 장수로 변장시킴으로써 범섬에 숨어 있던 적군이 이를 보고 겁에 질려 모두 자결했다는 전설에서 장군석 이라고도 한다.
주위에는 선녀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고 바다에는 범섬, 새섬 등의 아름다운 섬들이 자리잡고 있다.
장군석에 얽힌 전설 외에도 노부부에 대한 전설도 있다.
옛날 서귀포에 어느 노부부가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어느 날 멀리 고기를 잡으러 나가게 되었다.
걱정이 된 할머니는 매일같이 외돌개가 있는 자리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숨을 거뒀고, 할머니는 오래도록 기다리다가 그 자리에서 돌이 되었다고 한다.
후에 외돌개가 된 할머니 곁으로 할아버지의 시신이 돌아와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한데 엉켜 큰바위가 되었다고 하여, 후세인들은 노부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가슴에 묻고 오랜 세월 기려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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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 동쪽으로 이어진 해안절벽에는 '황우지해안 열두굴'이라는 굴이 보인다.
이 굴은 제2차 세계대전시 일본군이 미군의 공격을 대비해 어뢰정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군사방어용 인공굴이다. 굴은 모두 12개이다.

서귀포항을 떠난 배는 앞바다를 한바퀴 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짧은 시간 안에 해안절벽과 섬속의 섬, 바다와 한라산, 오름과 동굴 등 뛰어난 해안경관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 그 어디 있으랴.
이처럼 서귀포앞 해안은 한번쯤은 꼭 둘러볼 만한 경승지이다.

※ 양영태님은 '오름오름회' 총무, 'KUSA동우회 오름기행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양영태님의 개인 홈페이지  '오름나들이(ormstory.com) 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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