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17)

꽃임에도 불구하고 꽃처럼 생기지 않은 꽃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한 송이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꽃들이 모여 한 송이를 이루는데도 그저 바라보는 이들이 꽃처럼 보아주지도 않을 때는 속이 상하기도 하겠지요.

오이풀꽃입니다.
오이풀꽃은 어찌보면 꽃에 대한 추억보다는 이파리에 대한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꽃입니다.

이파리를 뜯어서 손바닥에 탁탁치면서 이런 주문을 외웠습니다.

"오이냄새 나라, 오이 냄새나라....."

정말 그렇게 서너 번 손바닥에 탁탁 치다보면 오이냄새가 났습니다. 그래서 오이풀이구나 했는데...글쎄 오이뿐만 아니라 참외, 수박, 심지어는 복숭아까지 다 되는 것입니다.

어린시절 참 신기한 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을 이제 불혹의 나이를 지나서 다시 만나 그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오이풀꽃은 이른 새벽에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일출을 배경으로 오이꽃을 바라보다 보면 이슬을 머금은 거미줄이 오이풀꽃을 의지해서 집을 지은 흔적, 오간 흔적들이 보이거든요.

오이풀이 거미줄 덕분에 균형을 잡고 선 것인지, 아니면 오이풀덕분에 거미줄이 지탱을 하는 것인지 모호한 순간입니다.
그래요.
자연은 이렇게 누가 돕고 도움을 받는지 그 구분이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궂이 누가 도움을 준다고 우기지도 않습니다. 조금만 좋은 일하면 생색을 내려는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오이풀꽃은 단단하고 또 가을이 깊어갈 수록 붉어집니다.

마치 단풍이 들듯 붉어지다 겨울이 오면 이내 인사도 나누지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얼굴에 붉은 빛을 머금는다는 것, 그것은 부끄러움이겠지요.
그런데 어쩌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끄러움을 모르고 후안무치로 살아가는 것이 사람들아닌가요? 의당 나쁜 짓을 하고도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인데 오이풀꽃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마음 속에 담아둔 순수함이 올라오나 봅니다.

간혹 자연을 보면서 사람들의 삶과 비교해 보면 결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지 못하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은 일부고, 정말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 많을거야하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얼마전에 끝난 교육감 선거.
사실 그 이전부터 다 알고 있었던 사실 아닌지요? 다 쉬쉬하고 지나갔던 문제들인데 불거진 것이죠. 좋은게 좋은 거라고 뭍어두었던 것이 곪아터진 종기에서 근이 빠지듯 나온 것이니 이제 희망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반장선거 때부터 돈쓰는 선거에 익숙해 있는 우리네 받고 주는 문화가 이번 4.15에서는 없었으면 좋게습니다.

오이풀꽃.
억새풀밭에서는 그 억새보다 조금 높게, 그래서 자기의 얼굴을 햇살에 내어놓을 만큼 자랍니다. 그리고 그보다 낮은 풀밭에서는 다른 풀들보다 조금 높게 자란답니다.

그 마음씀씀이도 예쁜 꽃이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예쁜, 그런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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