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제주의소리
지난 금요일 영국과 독일의 주식은 3% 이상 하락했고 프랑스에서는 4.6% 급락했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한 투자자문사는 주식시장 일일 변동폭을 지진에 비유하여 미국발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8년 10월의 지진 강도가 리히터 스케일 ‘10’이었다면 지난 한달 동안의 이것은 ‘3.5’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리스 재정위기로 비롯된 유럽의 금융 및 자본시장의 교란이 좀체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와중에 무언가 사태가 좀더 나빠지는 쪽으로 베팅을 하여 돈을 벌고 있는 시장이 있다.

이달 초 그리스의 폭력 시위가 있은 직후 그리스 국채의 신용부도스왑(Credit Default Swap, 약칭 ‘CDS’)의 가격은 938 베이시스 포인트(bp)였다. 금년 초에 280bp였던 것이 3배 이상 올랐다. CDS 투자자는 이것을 오른 가격에 되팔 수도 있고 더 큰 기회를 기다리며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더 큰 기회란 그리스 정부가 채무불이행 상태가 될 때를 말한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국채의 액면 금액을 전부 받아 낼 수 있다. 그 대신 부도난 국채 실물을 반납하던가 실물이 없으면 해당국채의 잔존가치만큼을 공제한다. 대부분은 실물이 없는 CDS였으므로 현금을 주고 받아 정산한다.

망하기를 바라는 큰 손들

CDS를 280bp의 가격으로 구입했다는 뜻은 매년 원금의 2.8%를 스왑 상대방에게 현금으로 지불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해당 채권의 채무불이행은 빠를수록 좋고 잔존가치가 적을수록 좋다. 실제로 최근의 사례를 보면 2005년 델타 항공과 노스웨스트 항공의 잔존가치는 원금의 20%, 2008년 10월 리먼 브러더스의 경우는 8.6%에 불과 했다.

그리스의 앞날은 매우 불안하다. 지난 주말 9천5백억 유로에 달하는 시장안정기금이 승인된 이후 시장이 다소 안정되는 듯했으나 전문가들의 중론은 디폴트 가능성이 상당히 있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무엇보다 IMF와 약속한 조건의 달성이 힘들어 보인다.

유럽 전체로 번지고 있는 시장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덩치만 큰 안정기금을 급조했다는 인상이 짙다. 그리스 국채의 규모는 미화로 4268억불, 이의 이자비용만 해도 연간 170억불이다. 이는 그리스 연간 GDP의 약 4%에 해당한다. 현재 GDP의 13%가 넘는 재정적자를 2014년에 3% 이하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은 신빙성이 없다. 기금의 집행은 조건이행을 전제로 한다. 그 운영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그리스를 포함한 몇 나라들의 EU 탈퇴설도 나오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빌헬름 한텔 교수는 최근의 파이낸셜 타임즈 기고에서 회원국 전체를 구덩이로 몰고 가는 구제금융 해법은 EU의 장래를 위해서나 수혜국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실었다. 만일 그리스가 EU에서 떨어져 나와 대외채무의 디폴트를 선언한다면 당장은 큰 혼란이 있겠지만 그리스는 유로화가 아닌 자국통화의 평가절하를 할 수가 있다. 한동안 고물가, 고금리의 고통을 거치면서 언젠가는 산업경쟁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줄거리다.

CDS 투자가들의 입장에서는 대박 터지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살벌한 상품이지만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에 진행중인 금융규제 개혁의 내용에는 CDS 규제가 누락될 것 같다.

독일의 연방금융감독청이나 미국의 재무성, 그리고 전세계 헤지 펀드의 80% 이상이 영업을 벌이고 있는 런던은 CDS를 비난하기는커녕 그 순기능을 대변하기까지 한다. 즉 CDS 시장에서의 투기꾼들은 시장의 유동성을 키우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위험을 헤지 하려는 순수한 목적의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CDS의 가격 변동은 해당 채권의 부도 위험을 시장에 알려주는 조기경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폴트 시나리오도 유력

1974년 민정이양 이후 그리스의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양당은 서로 경쟁적으로 재정을 풀어 서민들의 불만을 달래왔던 것이 사실이다. 은퇴한 공무원은 월급의 90%를 계속 수령한다. 탈세와 부패가 만연했지만 EU 가입의 덕으로 낮은 금리로 차입이 가능했다. 작년 10월에 물러난 중도 우파 정권은 재정적자 통계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거리로 뛰어나온 그리스 젊은 세대의 외침은 ‘우리는 이 빚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의 원로 작곡가 ‘미키스 데오도라키스’는 갑작스런 그리스의 재정 몰락을 자본주의의 검은 세력의 음모라고 비난하고 나서고 있어 민심이 흉흉하다. 남의 불행에 돈을 거는 투기꾼들이 큰 돈을 버는 그런 날이 실제로 올지도 모른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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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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