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김태환 지사와 제주대 교수

                I. 인간은 정치적 동물

  정치에 대한 논평만큼 어려운 게 없다. 정치논평에는 불가피하게 평자의 가치관과 선호가 스며들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논평은 그냥 단순히 재미있게 읽히기만 하는 게 아니어서 때로는 정치적 함의를 띠기도 한다. 왜냐하면 정치에 대한 쓰기와 읽기 그리고 이야기 나누기라는 게 알게 모르게 특정의 정치적 편향과 선호를 담는 가치개입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의 정치논평에는 언제든 곧 바로 그와 반대되는 논평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만큼 개방성이 그 요체가 된다.

  이번 6·2 제주지사 선거처럼 선거구도가 몇 번 바뀌고 지지도가 요동을 치는 선거도 드물다. 그래서일까 정치논평의 미세한 파급영향마저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신경질 부리는 것을 자주 접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그렇게 아옹다옹 싸울 것도 없는 것이거늘, 현장에 얽매어 있는 후보 캠프 사람들에게는 그 하나하나의 미세한 파도가 혹 쓰나미처럼 커지게 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혹은 기대하면서 선거운동 기간을 불꽃처럼 보내곤 한다.

  정치학을 공부한 지도 한 30년이 지나고 있다. 서당개 3년이라고 하는데, 30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고도 정치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누가 정치 혹은 선거에 대해 물으면 선문답이나 해야 되니, ‘정치학을 공부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의 회의가 드는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작년부터 <제주의소리>에 칼럼을 쓰게 되면서는, 조금이라도 현장감 있는 시사적 정치평론을 제공하고자 나름대로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정치학을 공부하다는 걸 실용적 관점에서 제시해 본다면, 그것은 무슨 정치적 진리를 찾아내서 세상을 환히 밝히는 데 있기 보다는 잠시 시간을 내어 우리의 정치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 글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먹고 살기 바뿐 가운데서도 잠시 짬을 내어 우리네 정치를, 특히 6·2 제주지사 선거라는 역동적 정치과정을 짚어보는 것도 퍽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혼을 내는 것처럼 정치라는 게 불신과 냉소의 대상인 관계로, 스스로를 백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능하면 정치로부터 멀리 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누구든 이런 저런 이유로 특정의 선거에 개입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심인 것을 보면, 정치에는 그렇게 막무가내로 거부하고 멀리하지 못할 어떤 유인과 매력이 있기는 있나 보다. 필자가 매주 논평식의 글을 <제주의소리>에 올리는 것도 바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대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장송 연설 가운데 널리 회자되는 명언을 음미해 보게 된다. “아테네에서 각 개인은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국가의 일에도 관심을 가집니다.....우리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자기 일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아테네에서 전혀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도시 공동생활에의 참여를 시민적 덕성의 하나로 파악했던 고대 아테네의 고전적 민주주의 정신을 이보다 더 간명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6·2 제주지방선거를 지켜보면서 제주특별자치의 의미는 바로 고대 아테네의 시민들처럼 제주도민들도 제주 공동생활에 대해 능동적 관심과 적극적 참여를 표출하는 데 있음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6·2 제주지사 선거가 이제 10일도 남지 않은 가운데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강상주 후보와 현명관 후보는 결국 예상대로 현명관 후보로 단일화를 이루어냈다. 현명관 후보의 지적처럼, 강-현의 “뿌리는 원래 하나, 바로 한나라당”이기에 강-현의 단일화는 자연스런 수순이기도 하다. 최소 10%를 앞서는 우근민의 선두를 어떻게든 쫓아가려면, 어쩌면 강-현의 단일화는 필연이기도 하다. 강-현의 단일화가 앞으로 돈뭉치 파동 전과 같은 효과를 낼 지 아니면 우근민의 선두 앞에서 멈추는 것으로 끝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고-우-현 3자 대결을 예상하여 실시한 5월 23일의 제주 언론 4사의 여론조사에서는 우근민이 여전히 선두를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래도 제주지사 선거의 막바지 역동성은 여전히 신만이 아는 것으로 남아있다.

              II. 아름다운 퇴장을 위하여
  
 5월 21일 김태환 지사는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공무원의 복무기강을 점검하면서, 다시 한 번 “임박한 6·2선거에 확고한 정치적 중립자세를 견지하고 선거개입 행위에 대해서는 직위고하를 막론하게 엄벌에 처하겠다”면서 선거개입 금지를 엄명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당연한 것인데도 틈만 나면 엄명하는 걸 보면, 공무원의 선거 줄서기 행태는 예나 제나 다름없는 모양이다. 하기사 남모르게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해 온 정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김 지사이기에 더욱 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더 신경이 많이 가는 건 자연스런 것일 게다. 더욱이 공무원의 남모를 줄서기가 혹 자신이 싫어하는 후보에게 쏠린다면, 그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기회 있을 때마다 공직자의 선거중립을 외치는 김태환 지사의 기사를 볼 때마다, 그러한 김 지사의 다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제주지사 불출마 선언 이후에도 김태환 지사의 행보가 한나라당의 현명관 예비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지사 퇴임 이후 집권여당에 기대어 또 한 자리 얻어내려고 하는 건 아닌지의 의혹마저 들 정도이다. 왜냐하면 2006년 제주지사 선거에서 한나라당으로부터 팽 당하고도 어렵사리 무소속으로 당선된 배경에는 당시 열린우리당 지지자의 일부 내지는 호남표의 전략적 투표가 크게 한 몫 한 것을 되돌아본다면, 김 지사가 특별히 한나라당에 우호적일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김 지사 입장에서는 시-군을 없애면서 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키는 데 앞장선 당사자이기 때문에 기초자치단체를 회복하려는 어떤 언명이나 시도에도 기분이 좋을 수가 없을 것임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제주특별자치도의 출범이 열린우리당의 참여정부 하에서 추진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별자치도에 대한 김 지사의 애정도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 함께 가야 보다 합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다.

  원래 행정의 달인일 뿐 정당정치에는 체질이 맞지 않은 김 지사이기에, 한나라당 후보라기보다는 현행 특별자치도의 행정구조를 유지하는 데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를 하는 현명관 후보에게 더 호의를 보일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과연 김 지사의 경우 아름다운 퇴장이 가능할까 의문마저 든다. 자신의 임기 내의 치적에 연연하는 한, 아름다운 퇴장은 매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특별자치라는 게 목표가 아니라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면, 더욱 더 그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특별자치를 통해서 지향하는 바가 도민의 삶의 질 제고라면, 김 지사가 마지막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놓아서는 안 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도민의 아픔과 슬픔을 덜어주는 데 남은 힘을 다 쏟는 일이다. 시와 군을 회복하든 말든 혹은 어떤 식으로 재구성하든 그것은 다음 도정 책임자에게 맡기면 된다. 아름다운 퇴장은 수단이 아니라 목표에 혹은 기본에 충실하는 가운데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수단과 관련해서는 백가쟁명이 판치는 게 선거이기 때문에, 선거과정에 대해 선문답식이라고 하더라도 무언의 찬반 발언을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퇴장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퇴장을 기치로 내건 김 지사의 지사 불출마 선언이 자꾸 퇴색되는 데 대해 아쉬움이 크다. 이런 아쉬움은 문득 ‘아름다운 퇴장은 아무나 하나’의 의문마저 든다. 왜냐하면 김 지사가 아름다운 퇴장을 할 만한 지사였다면, 그렇게 4년 내내 해군기지 문제로 강정마을 주민들을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무어 그리 지사를 천년만년 한다고 혹은 역사에 평가받을 만한 일을 한다고, 그냥 밀어붙이기로 4년 내내 제주사회를 평화의 섬이 아니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갔을까.

  부지런하기로는 이명박 대통령 못지않았던 김 지사를 4년 내내 지켜보면서, 이명박-김태환과 같은 지도자의 남다른 부지런함이 과연 국민과 도민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오히려 남다른 체력과 고집으로 말로만 소통과 국민통합(혹은 주민통합)을 외칠 뿐, 이명박-김태환 모두 4대강과 해군기지 프로젝트를 통해 건설업자의 배불리기에만 매진하는 인상을 받을 뿐이다.

  그래도 이제 남은 1달여 동안만이라도 그동안 마음 아프게 했던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남제주군수-제주시장-제주도지사로 이어지는 불굴의 최장수 연속 자치단체장의 기록을 마무리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괜스레 선거판에 대해 선문답 식의 발언을 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기보다는, 고 노무현대통령의 봉하마을에는 못 미치더라도 퇴임 후 도민봉사를 위한 기획에 더 많이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

  더욱이 이제 얼마 없어 지사 자리에서 내려오는 날 이후 그 허전함이 클 것이기에, 더욱 더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는 게 좋을 듯싶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도민이 다수가 찬성을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회복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특별자치를 통해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앞당기려는 그 동안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존중을 받으려면, 그것은 특별자치의 재구성-재조정 필요성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애초에 특별자치도 구상이 김지사의 창의에 의한 것도 아닌 것인 만큼이나 늦더라도 제주형 풀뿌리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는 것도 고려할 만큼의 여유를 보이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신문 기사를 대강 훑어보았지만,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김 지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 때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모셨던 대통령이었는데. 김 지사 스스로가 자랑스러워마지 않은 특별자치도 출범과 세계평화의 섬 지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대통령이 아닌가. 6·2 지방선거에서 공무원의 엄정 중립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을 모셔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에 충실하고자 하기 위해서, 또는 고 노무현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남모를 힐책이 지금까지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기 때문일까. 이래저래 아쉽고 허전한 일요일 밤이다.

                  III. 검증되지 않은 경제도지사 가설

  2010년 5월 20일 대학 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 제주지사 선거과정에서 발생하였다. 제주대 교수 38명이 현명관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이 그것이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정치에 크게 관여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제주사회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걱정에 뜻을 모으게 됐다”는 취지에서 보면, 이들 교수의 기자회견은 나름대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선택이었다. 교수이기 이전에 제주특별자치도민으로서 제주도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혹은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대 아테네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제주에서 전혀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명관 후보에 대한 교수들의 이번의 기자회견 1주일 전인 5월 13일에 이미 고희범은 제주 지식인 사회를 향해 나서주기를 요청한 바 있다. 성희롱 전력의 우근민의 민주당 복당 파문, 현명관 후보 친동생의 ‘돈뭉치’ 선거판, 여당 공천경쟁에서 탈락한 강상주의 탈당 무소속 출마선언 등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이번 선거가 제주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선거인만큼 부도덕과 부패로 얼룩진 지금의 제주도지사 선거가 원칙과 상식 하에서 치러질 수 있게 책임 있는 지식인들이 함께 나서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 것이 그것이다. 고희범의 요청에 따른 지식인 사회의 화답은 엉뚱하게도 현명관 후보를 지지하는 제주대 교수들의 기자회견으로 나타난 것을 보면, 이는 돈뭉치 사건 이후 현명관 후보 캠프의 안절부절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정치학자로서 38명의 제주대 교수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 표명에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몇 가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선거 과정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교수들의 기자회견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낯설다고 멀리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사회의 유일한 씽크탱크인 제주대 교수들이 선거 때마다 특정 후보 또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에 나서게 되면, 선거 이후 교수들의 역량을 활용하여 제주사회를 발전시키는 게 제한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의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교수들의 기자회견 소식을 들으면서 민망한 기분을 갖게 되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무엇보다도 마치 경제 살리기의 메시아를 꿈꾸는 듯한 기자회견이기에, 더욱 더 교수들의 집단행동이 도민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의 걱정이 앞섰다. 제주사회에서 교수들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을 고려할 때, 선거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수들의 기자회견은 특정 후보의 세과시 수단을 넘어서는 어떤 가치지향의 행위여야 하지 않을까 아쉬움이 컸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사족으로 이번 교수들의 기자회견 가운데 필자가 동감하기 어려운 논점이 하나 있기에 이에 대해서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기자회견에서 강조되고 있는 바와 같이, 정말 ‘삼성CEO 경력=경제도지사’ 가설은 타당한 것일까 의문이 그것이다. 현명관 경제도지사 주장은 각자 개인적 기대일 수는 있지만, 교수들의 집단적 의사표명으로 내세우기에는 검증이 안 된 주장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경제도지사란 구호를 내세우는 건 선거운동으로는 유용한 것일 수 있지만, 지식인이 집단으로 기자회견할 만한 사안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양길현 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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