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유권자의 냉정하고 합당한 선택을...

 필자는 진보신당의 심상정을 좋아한다. 심의 날카로운 정견이 마음에 들고, 심의 따듯한 약자 사랑에 생각이 많이 간다.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심상정의 강한 이미지는 기실 심의 남다른 사명감의 외형적 표징일 게다. 오히려 심의 내부에는 눈물과 헌신이 듬뿍 숨어 있으리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또한 필자가 심상정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심이 세인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몇 안 되는 여성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제주에도 심상정 같은 강단 있으면서 따뜻한 여성정치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심상정은 노회찬과 함께 진보신당을 이끌어 가고 있는 대표 선수다. 정당이 이렇게 소수 엘리트 중심으로 운영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심의 정치적 행보가 한국정치의 미래를 밝히는 데 기여하리라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심상정의 잠재력에 비해 진보신당의 기반이 약한 탓인지, 6·2 경기지사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유력 후보가 되기에는 역부족인 채 심의 정치행보는 잠시 멈추고 말았다. 일요일(30일) 지지자들의 완강한 반대와 당내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기도 지사 후보직을 사퇴해 버린 것이다. 경기지사 선거운동을 하면서 심이 느꼈던 이런 저런 고충이 그대로 전해 온다.   

  필자 역시도 마음 한편으로는 심상정을 지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시점에서는 사퇴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정치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심이 후보를 사퇴하니, 영 마음이 안 좋다. 자신의 꿈을 ‘눈물을 머금고 잠시 접어’ 두겠다면서 후보를 사퇴하기가 실상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능력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하면서 사퇴하는 심의 용기야말로 기실은 심이 능력 있는 정치인임을 반증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는 건 필자만의 편향일까. 

  당연히 후보를 사퇴했다고 하여 심상정의 꿈이 취소된 건 아니다. 심의 말대로 잠시 접었을 뿐이다. "교육과 복지가 강한 경기도를 만들어 복지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겠다‘는 심의 꿈은 여전히 살아있고, 앞으로도 더욱 힘차게 추진하리라 믿어 마지않는다. 이보전진을 일보후퇴라는 게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과 아쉬움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심상정의 후보 사퇴가 심의 바람대로 향후 ‘진보정치를 더 크고, 강하게 벼리어’ 나가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해 마지않는다. 

  교육과 복지가 강한 경기도. 교육과 복지가 강한 제주. 그래서 교육과 복지가 강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심상정과 필자의 바람은 여전히 주변적이다. 대한민국과 제주도의 많은 유권자들은 여전히 성장을 갈구하고 경제에 너무 치우쳐 있다. 경제란 게 끝이 없는 탐욕의 영역의 것임을 되돌아 볼 때도 되었건만. 후보나 유권자 모두 경제 살리기에 미쳐 있다. 잘 산다는 게 단순하게 소득이라든가 관광객 수, 유치된 외자액수 등과 같은 수치로 환산되는 게 아님은 이미 상식인 데도 그렇다. 

  경제는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환경도 있고 문화도 있고 도덕도 존재하는 게 우리네 삶일진대, 언제면 우리네 삶의 다면적이고 복잡다단한 총체성을 되살릴 수 있을는지. 더욱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게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간혹 작은 것이 아름답고 또 느린 것도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제주가 무엇을 할 것인지의 어려운 미래 과제에 매달리곤 한다. 그러나 선거공약에서 자주 내세우는 것처럼 모든 가치와 덕성마저도 종국에는 다 돈벌이로 환원시키려는 사고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선거를 아무리 자주 치른다 해도 제주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유권자들의 깨어있음이 요구되는 이유는 후보들의 사탕발림에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책선거를 한다고 하면서 내세우는 후보자들 모두가 다 툭하면 수조원대 규모의 경제 살리기가 아니면 아예 말도 못 꺼내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수치의 인플레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형 경제 살리기의 합당한 비전으로는 표가 안 될 만큼 우리의 허망이 덩달아 커 버린 것일까. 아니면 정치인의 후려치기에 그만 잠시 녹아나 버린 것일까. 오히려 작은 수치를 더 좋아하고, 제가 그렇게 잘 남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후보에게 더 믿음이 가야, 그게 정상이 아닐까.

  투표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올 들어서는 반은 미친 듯 혹은 반은 기대를 갖고 지내온 6·2 지방선거도 어느새 막바지에 달했다. 이제 2-3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더욱 냉정해야 될 사람은 유권자일 것이다. 선거 막바지 시점에서 후보자들에게 냉정과 합당을 요구하는 건 무리이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미친 듯 지내는 후보들 사이에서 그래도 냉정을 찾은 몇 안 되는 후보자가 바로 심상정이기에 다시 한 번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후보자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더 더욱 유권자의 냉정과 합당함이 빛을 발하는 건 이제부터일 게다. 제주지방선거에서 유권자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냉정과 합당함의 진수는 바로 유권자의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자기 판단으로부터 올 것이다. 이는 유권자의 집단적 지혜가 소수의 후보자나 전문가들보다 더 유용하고 합리적이라는 통계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선거민주주의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건 바로 유권자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라고 한다면, 이는 곧 유권자의 복지를 위해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닐까.

  복지. 이것이야말로 필자가 좋아하는 심상정의 구호이지만, 제주선거에서도 복지야말로 그 핵심이 아닐까. 어떻게 경제를 살릴까의 논쟁보다는 어떻게 하면 유권자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애를 쓸 것인가의 백가쟁명과 수치 경쟁이 더 유권자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제주를 만드는 데 복지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특히 제주의 경우는 일방적인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민주적 자치라든가 생명존중의 자연친화 그리고 다문화적 평화 등과 같은 제반 가치들이 도민들의 삶 속에 녹아내리는 그런 미래를 꿈꾸고 다듬어가는 데서 유권자의 ‘깨어있음’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렇게 필자가 ‘누가 더 경제 살리기에 명수일까’의 논쟁에서 한걸음 비켜서 있고자 하는 이유는, 경제 살리기라는 게 제주도정의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화 시대에 경제 살리기를 지방정부가 마치 구원투수처럼 할 수 있다는 주창은 하나의 선거용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로부터 오는 예기치 않은 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제주도 내 기업과 관광업 관련 자영업자들 그리고 농축수산 등 일차산업의 움직임들이 모여 총체적으로 진행되는 게 경제 살리기이기 때문에, 이를 어느 특정 개인에게 기대하는  건 매우 위험한 사고이다. 메시아나 영웅을 찾으려는 게 선거가 아니다. 그저 우리들 가운데 대표를 맡아 성실하게 도민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후보면 족하다. 

  도민의 요구에서 진수는 복지가 아닐까. 그게 무상급식이면 좋고, 저렴한 의료와 양질의 교육 서비스이면 금상첨화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도민의 자치권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한테 맡기면 잘 살게 해 주겠다는 감언이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에게도 전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그냥 맡겨서는 안 된다. 유권자의 참여와 하의상달이 제약을 받는 만큼이나 단체장은 독단과 자기 마음대로에 치우치기가 쉽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어떻게 해서 복지와 잘 살기에 도움이 되는 지와 관련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이를 옹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복지야말로 도민 요구의 정수이다. 유권자들이 얼마나 깨어있는가를 판별하는 하나의 척도가 바로 복지 수준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더욱이 지방자치에서 복지는 제주도정이 마음을 먹으면 이전보다 더 많은 복지를 도민에게 갖다 줄 수 있다. 복지 친화적 도정일 때 비로소 약자들이 과거보다 나은 삶을 꾸려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받는 게 가능하다. 그래서 복지와 교육에 초점을 두었던 심상정의 꿈이 제주를 포함하여 여전히 다른 지역에도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남은 이틀의 시간은 약자를 위한 복지 지향적 제주도정 운용과 관련하여 그 밑그림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지고 이에 대한 공론화가 이번 6·2 제주지방선거에서 막바지 쟁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길현(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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