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승자와 패자 모두를 위한 변

    선거에서 공동 우승은 없다. 승자와 패자만 있는 것이어서 선거운동은 본질적으로 과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간혹 과잉과 천박함에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서 선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선거의 부정적 측면은 안고갈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사가 그럴진대 선거에 대해서만 마냥 좋지 않은 눈초리를 보낼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따듯하게 보듬자.

  선거가 끝나면 세상이 승자 위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는 먼저 패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듯싶다. 더욱이 제주지사 선거의 경우 패자에 대한 지지도 승자 못지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겸허함이 요구된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는 하겠지만, 눈만 뜨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패자의 아쉬움에도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패자에게도 설 자리를 주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선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오늘의 승자가 내일에는 패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이래서는 안 되는 데 하고 우려하고 걱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선거의 유용성은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선거 이전에 잠복해 있는 갈등을 공식화하여 좀 더 밝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기회일 수가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듯이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선거를 하지 않으면 그냥 잊고 넘어가기가 쉽다. 수면 밑에 잠재되어 있던 국민들의 불만이 이렇게 선거를 통해서 표출되지 않는다면, 아마 한국사회는 어느 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폭력적 분노로 폭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 선거의 유용성은 제언을 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는 주기적으로 그리고 다층적으로 하는 게 좋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지방선거, 그리고 지방선거의 경우도 도지사, 시장, 도의원 등 다양한 선거를 하는 게 더 유용하다. 다양한 선거를 통해, 힘없는 서민들이지만 그 하나하나의 표가 모여서 강을 이루고 태산을 옮길 수도 있음을 확인하는 그 짜릿함도 민주주의에서가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맛이다. 정치엘리트들의 독선과 무시를 견제하고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보장하는 기반이 아닐까. 6월 2일 자정을 넘기고 새벽이 되어도 잠이 오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대한민국 국민들의 위대함에 흥분되어서 일 것이었다. 일련의 여론조사를 우습게 만드는 민초들의 바보 같은 행진 속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지방선거의 혼탁함 혹은 이상함에만 신경 쓰지 말고 곰곰이 이번 선거의 쟁점을 반추해 보면, 필자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데에서 찾고 싶다. 왜냐하면 4년 전 갑자기 들이닥친 특별자치가 제왕적 도지사만 낳는 것을 보면서, 김태환 도정 방식의 특별자치를 그대로 고수하겠다고 나선 현명관 후보와 기초자치단체의 부활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방식을 수정하겠다고 나선 우근민 후보를 선택할 것이냐의 양자택일의 선거가 이번 제주지사 선거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양자택일에서 경제살리기의 구호도 큰 것이어서 지난 4년의 도정을 계승․발전시키겠다는 현명관도 40.6%의 많은 지지표를 얻었지만, 결국은 제왕적 방식의 특별자치를 반대하는 60%의 반 김태환도정 표 가운데 41.4%의 지지를 얻은 우근민 후보가 당선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직은 선거 결과를 둘러싼 분석과 논의가 한창인지라 지난 선거운동 과정을 돌아볼수록 패자에게는 더욱 아쉬움만 남을 것이다. 그러한 아쉬움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준비 부족이 아닐까. 제주지사가 얼마나 중요한 리더십의 자리인데 아무나 쉽게 대강 뛰어들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제주지사 선거는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이 점에서 앞으로 혹 제주지사의 꿈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미리 미리 준비하시길 이번 선거는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그 준비란 도민의 불만이 무엇이고 바람이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챙겨가는 도민과의 대화이자 만남일 것이다. 아픔과 슬픔을 같이하려는 마음 전달과 함께 풀뿌리 도민 가슴에 숨겨져 있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차분한 준비가 그것이다. 당연히 미리 사전준비를 착실히 하는 건 도민에 대한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선거라는 게 승자에게 4년간 제주의 미래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경합을 벌인 것이기 때문에, 이제 남은 4년은 승자를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 세인의 관심은 누가 이기고 지는 선거과정이 아니라 승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서 또 어떤 내용의 미래 비전을 추진해 나갈 지에로 쏠리게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패자 못지않게 승자에게도 시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승리에 따른 환희의 시간은 짧고, 오히려 승자에게 쏠리는 관심과 요구가 큰 만큼이나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가 여간 쉽지 않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면 하나같이 승자와 패자가 손을 잡고 화합하길 요구한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승자와 패자라는 게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승자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것임을 역사책 조금만 들춰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승자와 패자 모두가 다 불쌍하고 외로운 존재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쩌면 승자와 패자 모두가 정치에 나서고 선거에 뛰어든 하나의 이유가 혹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홀로는 외롭기에 타인에 관계하고 세상에 관여하고 또 이른바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정치와 선거에 나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정치는 인간 존재의 본질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말이야 맞는 것이지만, 승자와 패자의 화합을 촉구하는 제3자의 조언은 실현가능성이 매우 적다. 왜냐하면 화합하라는 건, 싸워보지 않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거나 아니면 인간사에 존재하는 균열을 아무렇게나 잠재우려는 이데올로기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거 기간 동안 어떤 때는 가슴조이며 또 어떤 때는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서 선거에 임해 온 선거캠프 사람들에게 마냥 화합하라고 쉽게 주문만 하기가 어려울 만큼, 관계 당사자들 감정의 폭이 깊고 넓은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그렇다고 목숨만 안 걸었지 죽자 살자로 총동원된 선거였다고 하더라도 제3의 관전자들은 화해를 촉구할 수 있음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패자에게 승자가 손을 내민다고 금방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게 더 인간사의 본질임을 상기시키고자 할 뿐이다. 승자도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승자도 마음의 상처를 깊게 입었기에 이를 치유할 시간이 요구된다. 패자도 눈 뜨면 생각나는 아쉬움과 회한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데, 어떻게 덥석 손을 잡을 수 있겠는가. 승자도 패자도 서로 화해의 손길을 나누기에는 그에 따른 시간이 요구된다. 그러니 오히려 제3의 관전자들로서는 마치 화해만이 살 길인 것처럼 마냥 촉구하기보다는 그냥 가만히 놓아두는 게 더 상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혹 승자에게 촉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패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패자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존중이 아닐까. 그것은 패자에게 말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40%의 지지표를 준 도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승자가 패자를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의 의미가 혹 선거가 끝났으니 모두가 하나가 되자는 별 소용없는 주문은 아닐 것이다. 또한 승자에게로 모여 하나가 되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다름은 없애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오히려 승자와 패자는 그 각각의 다름을 지켜나가면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나아갈 때 제주의 미래가 더 크고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제주의 미래를 위해서 승자와 패자에게 요구되는 건 실현되기가 어려운 화합이 아니라 실현가능한 것으로서 견제와 균형일 것이다. 패자의 견제가 승자의 오만을 막아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게 좋다는 것이 바로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이제 제3의 관전자들이 할 일은 더 선명하다. 이명박 정부와 김태환 도정의 독선을 막으려 했던 만큼이나 혹 앞으로 우근민 도정이 독주를 하려고 하면 이를 막아낼 수 있도록 패자의 견제력을 요구하는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네의 일상적 삶에서는 인간을 믿고 신뢰해야 하겠지만, 권력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믿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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