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표의 제주사랑] ‘무노조 경영’ / '인간경영'

회장님.
금번 이유야 어쨌든 젊은 극소수의 망나니 같은 고려대 학생들에게 큰 곤욕을 치루어 당혹스럽겠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혹시 회장님이 그런 상황을 예기치 못하셨다면 소위 우리나라 최고의 정보통인 삼성의 정보력에 문제가 있는 것일 거구요, 이와 같은 보고가 올라왔음에도 강행했었다면 그건 회장님의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는 나라구나 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저도 이제는 40대에 접어든 한물 간 소위 386세대입니다만, 20대의 우리 젊은 지성들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회사로 발돋움하는 삼성그룹 회장님께 할 말은 하는구나 라는 사실을 확인하여 희망을 계속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동문이기에 단순히 후배를 사랑하는 철없는 선배의 마음으로 후배들의 행동을 두둔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40대도 중반에 다다른 저의 기본 입장은 아직도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세상을 그렇게 복잡하게 보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조금 단순합니다. 즉 우리네 인간들은 원래 동등한 인격체로 태어나서 살아간다. 종국에는 인생을 마감할 때 누가 잘났는지, 못났는지에 대해서는 감히 판단을 할 수 없다. 회장님이든, 영등포 역사 한 귀퉁이 쪽방집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아무개든, 역사를 공부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일단 똑같은 ‘아무개의 생애’라고 규정짓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제 후배들이 회장님께 당연히 제기할 사항을 아주 적절한 자리에서 문제제기 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그런 놈입니다. 또한 최소한 제 후배들이 청와대나 정부도 얘기하고 있지 못하는 - 소위 국민의 혈세를 받고 그 돈으로 다수 노동자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정부 업무를 꾸려간다는 노동부에서 조차 아직까지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삼성그룹이 대한민국 정부를 압도하는 거대한 권력기구임에는 틀림없구나 - 말을 거칠 것 없이 하는 망나니 같은 젊은 놈들 때문에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또 이런 놈들 때문에 우리 386들도 기성세대로 매몰 되가는 시점에 지속적인 반성을 해야 하겠구나 하는 배움을 얻습니다. 그런 점에서 40대를 훌쩍 넘긴 지금 우리는 선배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지만, 후배들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는 행복한 놈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 일등공신이며, 전 세계 IT 산업의 선두주자로 지구촌 경제의 일익을 담당하며 멋지게 살아가는 삼성그룹 회장님께 젊은이들이 감히 노조 없는 경영을 표방하는 회장님의 깊은 경영철학을 이해하지 못해 잠시 해프닝을 벌였습니다.

저는 회장님의 깊은 경영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 한 사람으로 진작에 벌어져야 할 있을 수 있는 일이 지금에 와서야 벌어진 단순한 사건으로 치부해버리려 했습니다. 그 때문에 신문에 나타난 회장님의 곤욕과 고려대생의 과잉반응(?)은 우리 역사에는 기록될 필요도 없는 아주 하찮은 일과성 해프닝으로 보아 넘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하게도 다른데서 나타났습니다. 소위 우리나라 대통령이 산다는 청와대에서조차 ‘유감’이라는 반응이 나왔고, 정부 일각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소위 정부는 일개 기업과 국민을 아우르는 시각을 객관적으로 지녀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삼성그룹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에 학생들의 간단한 항의성 시위가 있었다는 자체를 놓고 필요 이상의 과민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누구나 다 욕을 먹고 살아갑니다. 성인이 아닌 한 인간이라면 장단점이 다 있습니다. 우스개로 하는 얘기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자든 여자든 ‘허리아래의 얘기’는 사생활이고, 또 본능에 가까운 인간 자연스러운 모습이기에 더 이상 문제 삼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전적으로 옳은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삼성그룹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와 학생들의 항의는 제가 보기에는 이 이상의, 이하의 얘기도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그렇게 넘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삼성그룹 회장님의 곤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명색이 우리나라 최고의 사학이라는 고려대학교의 총장을 비롯한 교수님들이 보인 엉뚱한 제스처에 어안이 벙벙했던 것입니다. 고려대학교는 삼성보다도 더 먼저 태어났습니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나름대로 떨치기 위해 고등교육의 인재를 양성해왔던 그런 역사를 지닌 대학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 고등교육의 전당이었던 그런 고려대학교 총장과 그 보직교수들이 회장님께 죄송하다고 사과문과 보직 사퇴를 제기했다는 어이없는 보도를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조금 심하다 싶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제가 느꼈던 감정은 아직까지 우리 대한민국은 ‘식민지 근성과 군사정권 시절의 굴복’을 확실하게 청산하지 못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공부하는 보잘 것 없는 백면서생입니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별로 이룬 것도 없는 제가 감히 회장님과 총장님께 이러쿵저러쿵 가치판단을 내리는 자체가 우습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그 못난 망나니 같은 후배들의 선배로 회장님과 총장님께 한 말씀 드려야 되겠기에 감히 나섰습니다.

저의 생각은 간단합니다. 제가 회장님께 궁금하게 여겨 듣고싶은 답변 또한 단 한 가지입니다. 이런 단 한 가지의 답변을 회장님에게서 들을 수 없다면 저는 단언합니다.

“삼성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상태의 ‘무노조경영’은 ‘인간경영’이 아니다.”

도대체가 일하는 사람들의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등을 인정하지 않는 그 이유를 까놓고 듣고 싶습니다. 합당한 이유라도 있다면 제가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전 세계에서 ‘무노조경영’이라는 창의적인 경영철학 때문에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총장께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으셨는지는 몰라도 일반인의 생각에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무노조경영’
‘부친으로부터의 오너 세습과 향후 자식에게로의 오너 계승’

이상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에게 명쾌한 설명이 없는 한 삼성그룹 회장님에 대한 국민의 존경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할 말이 있다면 명쾌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기본적인 사고와 가족에의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솝우화 얘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다소 걱정될 뿐입니다.

2005. 5.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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