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민주-생태-복지가 어우러진 제주

 이웃 일본은 언제부터인가 2% 부족이다. 한 때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경제적 선두주자로서의 위상이 크게 떨어져 있다. 정경분리와 주식회사 일본을 기치로 하여 세계를 호령할 듯 하던 일본이 언제부터인가 안스러울 정도로 여전히 무언가의 모색 중에 있다. 일본경제의 어려움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되어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일중, 일한, 일북 관계를 포함한 21세기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일본의 대처에서 왠지 과거에 집착하는 옹졸함이 크게 깔려있어 돌파구가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토야마 총리를 수반으로 하여 쇄신을 의도했던 일본의 민주당 정부는 미일관계를 적절히 조율하지 못하는 외교적 미숙과 경제적 돌파에서의 지지부진으로 물러나고, 대신 간 나오토 신임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6월 8일 정식 출범했다. 간 내각은 자신의 정부운영 방침을 ‘제3의 길’이라고 밝히면서, 예를 들면 의료 노인요양 등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정부 지출을 크게 늘려 내수를 부양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어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여기서 주창되는 일본판 제3의 길이란, 공공사업을 중심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제1의 길'이나 과도한 시장주의로 흘러간 '제2의 길'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성과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안정적인 내수를 창출해 부가 순환하는 경제’라는 모토는 무언가의 도전인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이제 한 보름 지나면 우근민 도정이 정식 출범한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간 내각의 ‘제3의 길’ 천명이 남의 일이 아닌 듯 관심이 많이 간다. 이는 우 도정의 철학과 캐치프레이즈가 어떻게 도민의 마음을 담아낼 것인지의 관심에 다름 아니다. 제주판 ‘제3의 길’은 없는 것인지, 있다면 그것은 어떤 비전과 방책일 것인지? 우 당선인의 경제 공약을 보면, 우선 수출 1조원이 눈에 띤다. 한강의 기적이 수출에 있었다면, 한라산의 기적도 수출로부터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쉽다. 그리고 수출은 단순히 소득증대뿐만 아니라 고용창출도 동반할 것이기에 퍽 유용해 보인다. 

  문제는 무엇을 수출할 것인가이다. 제주의 무엇을 세계로 판다는 것인가? 사람, 자연, 상품, 문화, 삶의 방식, 아이디어 등등. 그러나 무언가 미진하다. 누가 이것을 산다는 말인가. 제주의 무엇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대단한 도전이다. 그동안 이른바 국제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제주 밖에서 제주 안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여 살아온 도민들에게 이제는 밖으로 눈을 돌리라는 것이기에 그렇다. 밖에서 제주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자본에 기대어 온 기존의 방식 말고 또 하나의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역시 제3의 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중앙정부와 잘 사귀어서 행-재정적 지원을 받아 이를 공공사업에 투자하는 이른바 제1의 길은 지난 특별자치도 실험을 통해 얼마나 허망한 것임을 통감한 바 있다. 중앙정부의 지원에는 공짜가 없기에 간혹은 자존심도 상하고 또 괜스레 도민의 중앙의존적 심리만 키운 것 같아 장기적으로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전략이다. 그렇다고 국제자유도시의 기치가 크게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제주지사를 포함 온 도민이 세일즈맨이 되어 외자유치에 나섰지만, 이것도 고작해야 때때마다 MOU 체결을 했다는 소식 이외의 손에 잡히는 결실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제3의 길 찾기가 요구된다는 게, 새 출발하는 우근민 도정에 대한 주문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제3의 길을 찾는다고 기존의 제1의 길과 제2의 길을 폐기하라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중앙정부와의 제휴와 외자유치에 이어 주민역량 강화를 통한 성장을 새로운 비전이자 지침으로 적극 내세우는 건 어떤가의 제안일 뿐이다. 그것은 도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으로는 제주의 비교우위를 찾는 것에서부터 제주도민이 주인이 되어 이끌어 나가는 제주형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 등 이것저것 찾아보면 전혀 없는 건 아닐 것이라는 내부로부터의 용솟음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 내부의 무엇이 강점이고 부족한 것인지에 대한 솔직한 평가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렵다. 제주 내부의 무엇을 외부로 수출할 것인지의 모색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분히 시작할 가치는 있어 보인다. 그 작은 시작으로서 그냥 쉽게 삼다수와 감귤로부터 광어, 흑돼지 그리고 고사리 등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친환경 일차산업 상품을 수출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감귤 관련 음료상품이라든가 해저 심층수 관련 건강식품 등도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불안하다. 시도는 해 보아야 하겠지만, 도민의 적극적 참여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보다 차분한 준비와 꾸준한 도전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정치학자의 짧은 생각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수출 1조원 못지않게 복지 강화에 기초하여 성장을 추동해 나가는 전략은 어떤지의 문제 제기를 하고 싶다. 제주도민의 역량을 최대한 한 데 모아나가는 내적 창발성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줄이는 만큼이나 커지는 게 아닐는지. 2010년 현재 제주도민을 포함 한국 국민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압박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데에도 어느 날 실직하면 혹은 퇴직하면 어떻게 살까의 두려움은 모든 국민들에게 일상사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어쩌면 인권탄압이라는 정치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1970-80년대 한국사회의 큰 활력은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이후 우리는 특히 1990년대 말 IMF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노후 불안과 실직 불안 그리고 취업 불안이라는 3대 불안 앞에서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바로 여기서 대한민국이 그리고 제주도정이 할 일은 자명하다. 그것은 국민과 도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오늘날의 불안은 지난 20세기 동안 혹 북한으로부터 침공을 우려하던 불안보다도 훨씬 크고 일상적인 불안이다. 한국의 정치와 제주도정에 대한 풀뿌리 국민의 기대는 바로 이러한 불안을 덜어주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그것은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이 얼마이고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세계 몇위이고에 있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감히 다른 것 다 관두고 미래에 대한 일상적 불안을 줄이는 방편으로 세계 복지비 지출 몇위에 도전하는 대한민국이고 제주 도정이 되었으면 바람을 전하고 싶다.

  이렇게 복지비 지출 1-2위의 제주도정을 꿈꾸면서 이왕 나선 김에 우근민 제주도정에 대한 바람 몇 가지로 ‘없는 듯 존재하는 제주도정’의 허허실실을 그려 보고자 하다. 즉, 밖으로 나가는 것이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든 도민의 내적 역량과 도전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도정, 이른바 도민을 앞세우고 도 행정은 뒤로 빠지는 도정, 언론 기사와 사진에서 지사와 행정은 보이지 않고 그 대신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도민을 크게 나오도록 하는 도정, 진정으로 마지막 임기의 지사이기에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어 표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도정, 도청 집무실이 아니라 마치 선거운동을 할 때처럼 현장에서 도민의 손을 잡고 귀 기울이는 도정, 등등.

  당연히 제주형 제3의 길은 돈 버는 데에 급급해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도민을 신나게 하는 것일 게다. 사람은 신 나면 돈을 조금 덜 주어도 열심히 일한다. 혹 일이 잘 되어 보너스를 챙겨주면 그것이야말로 금상첨화이겠지만. 하여 마지막 임기의 지사에게 주어진 책무는 단순하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자신을 버리는 것. 유세 때 도민 앞에 큰 절을 했던 마음으로 매사에 도민 옆에서 두 손 잡고 심부름할 자세로 기다리는 것. 그러니 뒷전에서 설거지 하느라 제주의 밥상에는 지사의 명패가 없다. 흥겹고 흡족하게 살아가는 도민들을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마지막 봉사를 다 하는 제주도지사. 제주도민의 크고 작은 역량이 신명나게 펼쳐지는 민주-생태-복지사회의 제주. 혹 제주형 제3의 길이란 이러한 것들을 모아나가는 창발성에 있는 것은 아닐까.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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