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기억해야 할 것은 의로운 사람들의 행적과 동기

최근, 조성중인 4.3평화공원이 4.3 정신을 형상화시키는데 실패하고 방문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접근했다는 지적과 함께 4.3평화공원 조성에 대한 전면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교대 최호근 교수께서 "제주4.3평화공원, 무엇을 어떻게 기념해야 할까?"라는 주제의 글을 제주의소리에 보내왔다. 최 교수의 글은 4.3공원 조성 재검토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합리적 핵심을 제기하고 있는 시의적절한 글이라 판단하여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최 교수는 고려대 사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한 후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막스베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2년부터 지금까지 부산교육대학교 초등교육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교수는 귀국 후,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데,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에 관한 다수의 논문 발표했다). 옥고를 보내주신 최 교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편집자]

이제는 제주 4·3평화공원의 건립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공원 건립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은 이 공원을 통해 무엇이 기념되고, 무엇이 기억되며, 무엇이 학습되기를 기대하고 있을까? 과도한 진압, 참혹한 희생, 그로 인해 남은 깊은 상처,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에 대한 염원. 그분들은 아마도 방문객들이 이런 것들을 경험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충분한 준비가 이루어져 있을까? 또 이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배치와 전시계획은 충분하게 검토된 상태에 있을까?

제주 4·3평화공원이 설립취지에 맞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4·3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와 제주 밖의 지역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방문했을 때, 그 이름에 걸맞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1945년 이후 가해자의 나라 독일, 희생자의 나라 이스라엘, 방관자의 나라 미국에서 유대인 학살이 어떻게 기억되고 교육되어 왔는지를 비교해본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수많은 학살 기념관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소개하면서, 이런 잘못을 우리가 범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왼쪽)과 화장장.ⓒ최호근
많은 사람들은 살아있는 역사교육 현장의 대명사로 아우슈비츠를 일컫는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는 적어도 평화교육의 장으로는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 그럴까?

먼저 유대인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지금도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를 방문한다. 이스라엘 교육부는 오래 전부터 '산자의 행진'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국비를 지원해서 매년 많은 수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동유럽의 학살현장들을 방문하도록 해왔다.

▲ 유대인 학생들이 흐느끼는 모습.ⓒ최호근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학생들은 가스실과 화장장에서 비통한 눈물을 쏟는다.

다음 행선지는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게토 봉기 기념비다. 그곳에서 인솔교사는 유대인 전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싸우다가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생생하게 설명한다.

▲ 이스라엘국기를 몸에 감고 학살의 길을 걷는 유대인 학생.ⓒ최호근
그 설명을 듣는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또 한 차례의 눈물을 쏟는다. 이제 흘리는 눈물은 아우슈비츠에서처럼 비통함의 표현이 아니라, 끝없는 적개심과 조국애의 표현이다. 모든 학생들은 부둥켜안고 울다가, 교사의 선창에 따라 다윗왕의 별이 그려진 하늘색의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힘차게 부른다.

이 과정을 통해 단순한 여행객으로 이스라엘을 출발했던 학생들은 용사가 되어 귀환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과잉진압과 학살이다. 이스라엘의 아우슈비츠 교육은 평화를 심어주는가? 정 반대다.

독일인들은 어떨까? 불행하게도, 아우슈비츠나 독일 내의 다른 기념관들을 방문하는 독일 방문객 가운데 다수는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인다.

▲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게토 봉기 기념비.ⓒ최호근
첫 번째 사람들은 어린 유대인 희생자들의 사진과 유품을 보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는 잠시 후 도덕적으로 정화되었다는 뿌듯한 느낌을 가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념관을 나선다.

그러나 이들은 한 가지 점에서 중요한 착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희생자와 동일시했을 뿐, 가해자와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낀 것이다. 유대인들이 보면, 기가 막힌 일이다.

더 심한 것은 둘째 부류의 사람들이다. 대개 단체로 기념관을 찾는 학생들은 바쁜 걸음으로 기념관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한두 마디씩 떠들어댄다. “별거 없는데?” “아, 짜증나. 홀로코스트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이제 4·3은 지나갔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4·3은 후세대에게, 타 지역 사람들에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어야 할까?

학살의 엄청난 규모로 기억되어야 할까? 유대인 학살 600만이나 스탈린 학살 2500만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4·3은 ‘사소한 일’처럼 보이기 쉽다. 그것은 4·3이 너무 작기 때문이 아니라, 4·3보다 엄청난 학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3은 끔찍함의 대명사로 기억되어야 할까? 르완다 키갈리와 중국 남경의 만행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4·3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4·3은 학살의 은하계에 떠있는 작은 소행성일 뿐이다. 이제 10년, 20년의 세월이 흘러 가해자와 생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을 때, 4·3은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까? 어떻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보편적 사건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반인도와 비인도가 판치던 그 시절에 양심의 소리에 따라 인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4·3의 학살이 인권의 보장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끔찍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다면, 그 끔찍한 시절에 이웃들의 목숨을 구했던 선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평화를 꿈꾸는 우리에게 온전한 정면교사(正面敎師)가 될 수 있다.

문형순 서장, 김익렬 연대장, 김성홍 구장, 장성순 경사, 강계봉 순경, 조남수 목사, 김남원 민보단장, 그리고 신례2리 주민들. 이들은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사람의 노릇을 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평화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의로운 사람들이다.

학살의 전당들 가운데 모범답안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에서 배우자. 우리가 마지막까지 기억해야 할 것은 의로운 사람들의 행적과 동기이다. 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고 적절하게 마련될 때, 가해자는 이 기억의 터에 서서 그때 그곳에서 이들처럼 행동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할 것이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그때, 그곳에 이런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던 것을 안타까워할 것이다. 후세대는 어떤 일이 자신에게 닥치더라도, 이들처럼 판단하고 행동하겠다고 결심하게 되리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났던 제주의 의로운 사람들이야말로 희망의 빛줄기가 되어 고난당한 세대와 후세대, 제주와 육지, 제주와 세계를 이어주는 가교가 될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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