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사랑의 사진·편지공모전 수상작

아비새의 삶

  새 둥지에  새 한 마리가  네 마리나 되는 아기 새들을 품고 처절하게 울어대던 그 꿈!

  너무 애절하게 울어대던 그 새의  몸짓을 잊을 수가 없어 무작정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찾아보았지만 도시 해석 불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짙은 영상으로 내 해마에 자리 잡게 되었고 문득문득 되살아났지요.

 형부!

아기 새를 품고 울어대던 그 새를 지금까지 어미 새라 생각해 왔는데 십 칠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새는 어미 새가 아니라 아비 새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로 형부였지요. 이가 없는 부리만 가진 새!  그 삶이 새의 삶이 아니라 형부의 삶이였습니다.

 가뭄과 폭염으로 메말라 가던  1994년 8월 여름!

 감귤 농장에서  농약을 치던 중  출산을 예감한  언니는 약치는 형부를 놔두고 혼자 병원을 찾아갔지요. 딸만 내리 셋을 낳고 뒤늦게  넷째의  출산을 준비했던  언니는 여유 있게 옆에만 있어주면 된다며 전화를 했고 저는 그런 언니를 믿고  별 두려움 없이 산부인과를 찾았습니다. 신음소리 한 번 안내고 참아내던 그 독한 언니는 아무 말도 없이 황망하게 떠나버렸습니다. 그 죽음의 모습은 생명탄생과 함께 찾아올 것이라고는 형부나 저 또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왜 하필 내가 함께 했는지 나보다 경험이 많은 그 누군가였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하는 자괴감으로 마음병을 키웠습니다.

  그 무심한 언니를 참 바보 같고 독한 언니라고 미워했습니다. 처음부터 언니 곁을 지켜주지 못한  형부가 더 바보 같고 더 독한 사람이라고 더욱  더  미워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 땐 형부의 고통이 어떤 것일지 생각하지도 상상할 수 도 없었습니다. 언니와 맺어진 모든 가족들에겐 그렇게 서로를 보듬어줄 여력이 없었습니다. 가족들 가슴 가슴에 그어진 상처를 스스로 달래고 위로하고 참아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묵시되었습니다.

  흔한 말로 산사람은 산다며,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며, 현실에 순응하며 살았습니다. 가장 큰 짐을 지게 된 형부는 링거를 맞으며 언니의 장례를 치뤘지요. 처음 언니가 비어있는 집은 엉망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지만 형부는 예전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농장을 돌며 손을 보고 약을 치고, 닭과 개를 키우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세우고 하루도 빠짐 없이 일을 했고 일에 지쳐 들어와  딸들을 보살폈습니다. 아무리 형부의 어머니가 챙겼다 하지만 변함없는 커다란 나무와 같은 형부가 있었기에 지금의 조카들이 잘 자라났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서른 일곱의 형부가 지금은 쉰 넷!!

  그 젊은 나이에 한번 쯤 아니 백번 쯤 짐을 내리고 싶었을 텐데......

먼저 간 언니는 형부가 언니와 함께 했던 추억만으로도 묵묵히 견디고, 자신의 일을 해내고, 부모의 역할을 할 거라는 믿음을 가졌나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으로  하늘 어딘가에서 지켜주고 있었는가 봅니다.

  엊저녁에 둘째  현숙이가 다녀갔습니다.

  조카 기억속에 있을 엄마의 모습을 이모의 입을 통해 엄마를 만나게 하려고 합니다. 형부도 여력이 된다면 언니의  모습들을 자근자근은 아니더라도 뭉텅뭉텅 떼어내어 말해주세요. 세밀하지 못한 부분은 될 수 있는 한 제가 표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마음속에 있을 그 언니를 그리면서요.

  그 바보 같고 독한 언니가 아니라 월급타서 막내 동생  멋진 청바지를 선물하던  자상한 그 언니를, 자취생활 할 때 아기 업고 김치통 들고  학교까지 동생을 챙기려고 온 그 못 말리는  언니를, 지금 살아있다면 가장 큰 내 삶의 멘토가 되어줄 그 언니를 추억속에서 꺼내어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세월이 약인가 봅니다.

  처음처럼 그 모습 그대로 버팀목이 되어준 아빠가 있어서 너희들이 있는거라며,  마음속에 상처 하나씩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며 다 자란 조카들과 자꾸자꾸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려 합니다. 이제 그 언니를  대신해서 조카들과 삶을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예전에  꾸었던 그 꿈을 꺼내봅니다. 그 꿈을 이제는 제대로 풀 수 있을 듯합니다. 울어대는, 찾아대는, 짝을 잃은 새의 절규가 아니라 걱정 말라고, 나는 약하지 않다고, 강하게 혼자서도 잘 키워낼 수 있다고, 잘 살수 있다는 다짐을 담아낸 꿈이었다는 것으로 설명하려합니다. 이가 없는 새의 삶처럼 사별의 아픔으로 이를 다 잃어버린 형부의 모습에서 아비 새의 터질 것 같이 울어대던 그 모습은 그 둥지를 지켜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할 것이라는 형부의 삶이었다는 것을......
 
  형부!

  낡은 라디오를 통해 추모의 사이렌이 울렸겠지요.

  오늘 천안함사고로 인해 죽은 장병들의 장례일입니다. 많은 가족들이 형부와 같은 절망과  원망, 비통함으로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그 남겨진 가족들의 절절한 사연들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 중 너무 어린 자녀들을 남기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영혼들의 숨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그분들의 영혼을 하늘에 있을  언니가 가장 잘 안아줄 수 있겠지요. 또한 그 가족들이 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더욱 건강한 가족둥지를 지킬 수 있도록 더욱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쁘게 휘적대며 농장을 누비는 형부의 모습을 언제라도 찾아가면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매일 농장에 출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50여명을 거느리는 사장이여서 그렇다는 너스레가 그냥 좋습니다. 밥 열심히 챙겨주는 사장님께 충성하는 잡종 개들이 농장을 지키고  암탉들이 토종알로 답하는 그 곳에서 늘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먼 훗날에도 오랫동안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자신을 바보라고 했지만 굳이 빌어 쓴다면  형부의 삶 또한 바보 같습니다. 아비 새의 다짐을  지키려했던, 자신의 둥지를 지키기 위해 아비의 삶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던  형부가 있기에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한다는 조카들의 말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하늘에 있는 언니를 대신해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막내 처제 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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