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18)

어릴적 박주가리는 들판의 풀밭이나 담을 휘감고 자라던 흔한 덩굴식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남들이 그런 것처럼 어른이 되면서 그런 자잘한 것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금 그 어린 시절에 흔하게 보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조금씩 알아갈 무렵에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참을 찾아야만 보이는 식물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도시 개발과 화학비료의 남용 등으로 점점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곳, 먼 곳에서만 그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생활은 편리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름 없는 꽃은 하나도 없다. 단지 그 이름을 모르는 꽃이 있을 뿐이다.'

한 동안 꽃들의 이름을 몰라 속을 태울 때 뇌리를 맴돌던 말입니다. '그냥 꽃이라고만 불러도 되겠지' 하다가도 '아니, 그들의 이름이 있는데 불러줘야지' 합니다. 그러면 또 왜 그리 비슷한 꽃들에 종류가 많은지 꽃 이름을 알아 가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꽃과 조우를 했을 때 '누구야'하고 불러주면 저도 기분이 좋고, 꽃도 좋아합니다.

박주가리는 꼭 만나고 싶었던 꽃 중 하나입니다.

박주가리의 덩굴을 자르면 하얀 젖 같은 유액(乳液)이 나옵니다. 이렇게 줄기나 덩굴을 자르면 하얀 유액이 나오는 것들을 볼 때마다 어머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애야, 하얀 액이 나오는 것은 몸에 엄청 좋은 것이다. 씀바귀도 그렇고, 멱쇠채도 그렇고, 박주가리, 민들레, 상추도 그렇지."

저는 쓴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쓴 맛 뒤에 오는 단맛을 참 좋아하거든요.

그러면 박주가리도 먹었냐구요? 물론입니다.

식물에서 나오는 하얀 유액의 맛은 씁쓰름합니다. 그러나 박주가리의 유액에는 독성분이 있다니 너무 많이 맛보면 안되겠죠? 그러면 뭘 먹었냐구요? 박주가리의 열매입니다.

열매가 푸르스름할 때 박주가리 열매의 껍질을 까면 하얀 속살이 나옵니다. 그것을 먹는 것이죠. 무미건조한 맛이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참으로 아삭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을 때면 더 물기가 많으니 아삭한 맛이 좋았고 조금이라도 익으면 텁텁하고 맛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잠시 기다리죠. 완전히 익어 열매가 벌어지면 살며시 땁니다. 민들레 씨앗을 닮은 박주가리의 씨앗을 입으로 불어 하늘로 날리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던 박주가리 씨앗의 비행은 어린 시절의 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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